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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는 어떻게 경제력의 표상이 됐을까
‘아파트’는 어떻게 경제력의 표상이 됐을까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0.02.22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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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거의 미시사』전남일·양세화·홍형옥 지음 | 돌베개 | 2009 | 431쪽

 

『한국 주거의 미시사』전남일·양세화·홍형옥 지음 | 돌베개 | 2009 | 431쪽

2008년 18대 총선을 읽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부동산 투표’다. ‘뉴타운’으로 대표되는, 부동산 개발에 대한 기대 심리는 특히 수도권 30∼40대의 마음을 움직였다. 18대 총선만이 아니다. 『부동산 계급사회』(후마니타스, 2008)를 쓴 손낙구가 2004년 17대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를 분석한 결과도 비슷하다(『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 후마니타스, 2010). 집 가진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일수록, 그 중에서도 집을 두 채 이상 소유한 사람이 많은 동네일수록 한나라당을 많이 찍었다. 반면 무주택자가 많이 사는 동네일수록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많이 찍었다.요컨대 거주방식, 집이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 주거의 미시사』는 한국사회에서 종종 경제적 능력과 동일어로 간주되는 주거문화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책이다. 전남일(가톨릭대 소비자주거학과)·양세화(울산대 주거환경학과)·홍형옥(경희대 주거환경학과), 세 명의 연구자는 지난 2003년 ‘한국 근현대 주거의 역사’ 시리즈를 기획했고, 2008년 『한국 주거의 사회사』를 내놓았다. 첫 번째 책이 사회적 관계망이라는 큰 틀에서 주거문화를 조망했다면 두 번째인 이 책에서는 그 안에서 거주하는 사람과 그들의 생활에 초점을 맞췄다. 마지막 세 번째 책에서는 ‘공간사’를 다룰 예정이다.

제목은 ‘미시사’이지만 이 책은 일종의 ‘주거생활사’다. 가족관계, 주거에 대한 욕구(이사와 개조), 일상생활, 기기와 설비 등 4개의 분야로 나눠 주거생활의 변천사를 미시사적 관점에서 살핀다. 역사 서술 방식에서 ‘미시사’는 보통사람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 책 역시 부엌의 가전제품, 화장실 등 생활 주변의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다뤘다. 이광수의 소설 등 당시 주거생활을 묘사한 문학작품과 신문·잡지의 기사, 외국인이 남긴 기록, 사진과 평면도, 광고, 회화, 인터뷰(구술) 등 다양한 자료를 동원했다.

그렇다고 단순히 주거공간과 일상생활이 변해온 모습을 역사적으로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경제개발 시대를 거치며 주거를 통해 개인의 물질적 욕망을 실현해 왔다. 한국인에게 주거는 경제력의 표현이었고 동시에 재산을 증식하는 수단이자 욕구였다. 책은 오늘날의 주거문화가 정착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고 이러한 변화 과정을 이끌어온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를 함께 진단하고자 했다.

근현대 주거의 미시사를 통해 저자들은 우리 주거발달의 가장 큰 특징이자 문제점으로 지나친 ‘기술·설비 중심주의’를 지적한다. 주거의 질적 향상이 곧 주거 설비와 기능의 향상에 직결돼 있다고 믿은 결과 한국의 주거는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살기 위한 기계’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외형적 질은 향상됐으나 전통적인 공간 정서를 순식간에 잃었다. 주거를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파악하는 저자들은 이 또한 사회적 필요와 함께 근대적 삶과 생활수준 향상이라는 열망을 가진 거주자들의 요구가 작용한 것으로 본다. 그러면서도 주거문화에서 잃어버린 가치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 시대의 보편적인 삶을 대표할 수 있는 보통사람들의 주거생활을 들여다보는 데 눈높이를 맞췄다”는 저자들의 설명에도 주거를 통해 경제적 욕구를 실현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주거 발달사’가 도드라져 보이는 면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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