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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 기존 학설은?
첨성대, 기존 학설은?
  • 우주영 기자
  • 승인 2010.01.18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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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에 알려진 대로 첨성대는 천문관측대란 설이 지배적이었다. ‘瞻星臺’즉 ‘별을 쳐다보는 대’라는 이름이 주요한 근거로 작용했다. 이는 1904년 대한제국 시절 일본의 동양건축사학자 세키노 다다시가 첨성대를 천문관측소일 것이라며 학문의 영역에 끌어들인 이래 가장 주요한 학설이었다. 문헌에 남은 기록도 첨성대 건립 후 거의 650년이 지난 뒤 편찬된 『삼국유사』에서 “선덕여왕 때에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 “내물마립간의 능이 占星臺”란 것이 전부이다 보니 첨성대의 실체에 대한 논란은 분분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1964년 과학사학자 전상운이 첨성대가 그림자로 절기와 시간을 관측하기 위한 규표(24절기를 측정하기 위한 기구)라는 설을 제기하며 천문대설의 기반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1973년 이용범에 의해 제기된 수미산설은 첨성대이 모양이 불교에서 말하는 상상의 영산인 수미산과 유사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용범은 첨성대가 출입구가 불편해 천문대로서는 사용할 수 없는 구조라 봤다. 이 때문에 첨성대는 당시 크게 융성했던 불교의 우주관을 상징하는 일종의 종교적인 제단이라 주장했으나 거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주비산경설은 1984년 김용운에 의해 제기됐다. 첨성대가 「주비산경」의 천문 및 수학상의 원리를 반영하기 위해 세워진 상징적인 탑이란 것이다. 이는 천문대설의 혹독한 비판을 받았으나 첨성대 축조에 쓰인 돌의 숫자, 단의 숫자에 관한 해석은 오히려 천문대설을 보강하는데 활용되기도 했다.

  우물설은 1998년 조경학자 조세환과 이어 2000년 고대사학자 김기흥에 의해 제기돼 첨성대 연구에 돌파구를 열었다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별과 우물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증명하지 못하는 등 첨성대에 대한 많은 의문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태였다.

우주영 기자 realcosm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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