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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구실] 너무도 독했던 중국 술을 마시고
[나의 연구실] 너무도 독했던 중국 술을 마시고
  • 최찬수 대전대·응용화학
  • 승인 2009.12.21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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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나는 연변과기대의 어느 국제 심포지엄에 발표자로 참석했다. 그 대학의 부총장과 환경응용화학과는 중국 특유의 대접이 그야말로 융숭했다. 우리의 방문 목적은 그들과 교환교류를 통해서 똑똑한 대학원생을 몇 명을 찾아오는 것이었다.

부총장에게 잘 보여야 일이 잘 될 성싶어 50도가 넘는 술을 권하는 대로 마시다 그만 정신을 놓고 말았다. 그 다음날 몸이 여간 복께는 게 아니어서 교내의 중국 의무실에서 약을 타먹는 신세였으나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성사돼 연구교환 프로그램에 사인을 하게 됐다. 실로 목숨을 내놓은 작전이 이런 것인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KIST에서 에너지 변환연구를 시작했다. 청운의 꿈을 가지고 미국 유학으로 광전기화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늦깎이 교수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말 지역대학의 실상을 전혀 모르고, 열심히만 하면 학생들도 연구프로그램에 들어와서 신나게 연구를 해 SCI급 논문도 많이 쓸 수 있으리라 꿈꿨다. 그러나 BK21을 비롯, 그나마 교과부 연구지원이 부지불식간에 사라지는가 싶더니 얼마 후엔 NURI를 한다고 야단법석이었다. 여기에도 보기 좋게 물을 먹은 우리 과는 정원 수도 턱없이 잘려 과의 존폐가 달린 고통을 겪고야 말았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고 어차피 줄어든 정원 수로 깎아 먹은 실적 점수라도 만회할 겸 연구 쪽으로 과감히 눈을 돌렸다. 그런데 사랑해마지 않는 ‘좀 쓸 만한’ 대학원 예비생들이 전부 서울로 내빼고 있던 게 아닌가. 최근들어 환경공학과의 수처리 실험실과 학제 간 공동운영으로 먹거리를 좀 찾게 돼 향후 수억원의 연구비를 확보하게 되었는데도 말이다.

당찬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원을 찾아서 중국을 갔던 것이고 내 세미나를 본 똑똑한 학생들 여럿이 Cui Laos와 연구하겠다고 다행히도 몰려왔다. 문제는 이들이 영어를 간신히 할 정도고 중국어는 내가 못하니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데 있다. 급하게 과제를 신청하고 보고서를 쓸 때 도움을 신속하게 받지 못한다는 흠이 있다. 체재비를 보장해줘야 하는 경제적 부담도 있다. 그래도 몇 학기를 같이 지내면 한국어도 상당한 실력이 되고 연구 기자재 사용법이나 기초적인 부분부터 차근차근 이해시키면 데이터는 잘 만들어 낸다. 무엇보다 일단 원하는 자료가 ‘시원하게’ 나오니 살 것 같다.

여러 크고 작은 시련과 대학원생 유치의 국제적 기회를 통해서 나의 연구실은 서서히 경쟁력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 요즈음은 연구가 여간 즐겁지 않다. 또한 공동연구실인 수 처리 실험실에서는 응용성을 찾아주기 때문에 더 연구의 범위를 확대할 수 있어서 서로 좋다.


그러나 국제 학생들이 있는 연구실에서는 한국 학생들만 있는 연구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 우리 교수들은 다 학생이기 때문에 동등한 권리와 기회와 책임을 주려고 하는데 학생들은 그게 아닌 것 같고 국제 학생들과 협력 연구가 잘 안되고 따로 도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룹 미팅이나 강의를 할 때 이중 언어를 써야 해 시간이 걸리는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에 한 배를 탔기 때문에 젊은 과학 기술자들에게 좋은 경험이 된다고 생각한다.

 

최찬수 대전대·응용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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