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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웹 2.0 시대의 교양
[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웹 2.0 시대의 교양
  • 이봉재 서평위원/서울산업대·과학철학
  • 승인 2009.12.1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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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대학교수들로부터 취업교육이 대학을 위협한다는 경고가 드물지 않다. 일전 모 일간지의 칼럼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실려있었다.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평생 2~3개의 직장을 옮겨야 한다는 누군가의 지적에 어떤 교수가 “그러니 그 비싼 등록금을 4년간이나 내면서 겨우 첫취업 준비만 시켜도 되는거요?”라고 반문했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얼마나 맞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과연 첫 번째 직장을 위한 준비는 두 번째 직장 구할 때는 거의 무용할 것인가. 첫 번째 직장에 집중하지 않고 서너개의 직장을 겨냥하는 방식이 있는가. 나아가서 취업준비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올바른 대학교육과는 조화될 수 없는 것인가 등의 물음이 곧바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올해 모 대기업의 공과계열 면접시험 자료를 검토해본 적이 있다. 특히 토론면접과정에서 제시된 주제들이 흥미로웠다. ‘심야 학원교육 금지조례에 대해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환자의 개인 질병내역을 보험사에 공개해도 좋은가’등.

나는 이 주제들을 보고 대단히 놀랐다. 우리가 취업과 기업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가 자문하게 됐다. 위의 토론주제들이 무조건 시사적 상식 만으로 답할 그런 문제가 아님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교육의 정의, 필요한 교육, 학생 잠재력 등에 대한 나름의 의견을 가져야 하는 문제였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더욱 궁금해졌다. 그 기업에 합격한 우리대학 공대생들은 어느 수준으로 이 주제들을 토론했을까. 어떤 수준으로 했든지 간에 그 학생들의 토론능력은 어디서 어떻게 길러졌을까. 대학강의에서 도움을 받았을까. 받았다면 1학년 기본교육인가, 3, 4학년 교육인가. 혹은 학생들끼리 만든 취업준비 동아리가 가장 효과적이었는가. 이런 취업을 제대로 준비시키려면 교양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가. 이런 주제들에 대해서 수준있는 답변을 할 줄 모른다면, 도대체 제대로 배웠다고 할 수 있을까 등.

이런 물음들 앞에서 나는 ‘웹 2.0’의 시대를 맞아 교양지식의 정의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오마에 겐이치를 떠올리게 된다. 『지식의 쇠퇴』(2009, 말글빛냄 출간) 라는 책을 통해 오마에는 역사와 문화, 예술에 대한 지식으로서의 교양, 고전의 독서를 중심으로 하는 교양은 더 이상 충분한 것이 아니라고 강력한 톤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날로 강화되는 국제화의 흐름이다.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사건들이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지금 시점에서 국지적 문화전통에 대한 이해는 충분히 의미있는 교양지식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마에가 접하는 견실한 CEO들 대부분은 이미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있다고, 더 이상 문화나 예술에 대한 한담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알려주기도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인터넷 환경이다. 정보의 데이터베이스가 가득 쌓여있는 인터넷을 두고 우리는 더 이상 지식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구글을 통해 단시간에 검색할 수 있는 고전적인 지식보다 현대의 세계를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식만 가득 채운 교양인보다 주어진 문제를 풀어가는 능력, 그리고 그 능력을 지식이 아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지 여부, 결국 이것이 세계 어디에 내놔도 인정받을 수 있는 인간의 척도이다.”

오마에는 분명 경영컨설턴트로서의 특별한 경험에 의거해서 말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교양이 전통적 의미의 교양지식과 무관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점 교양지식 또는 능력이란 어떤 역사적 지식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는 일과 관련해서 역사에 유사한 사례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이며, 방대한 정보망을 이용해서 그에 대한 대답을 찾아낼 수 있는 실천력이라는 제언은 간과되기 어렵다.

방법론상, 내용상 대학의 교양교육이 오마에의 방식으로 우리 시대를 담아내기 시작한다면, 우리 대학생들은 다음의 물음들에 대해서 훨씬 멋지게 답할 수 있지 않을까: ‘북한의 기아 또는 플루확산에 대해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아프간 파병은 우리에게 어떤 문제인가?’ 등. 만약 그렇다면 취업시험과 대학교육의 거리는 생각보다 훨씬 좁혀진다. 좋은 대학교육이 좋은 취업준비가 되는, 선순환도 가능할 수 있다.

이봉재 서평위원/서울산업대·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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