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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의 중심, 공자를 고쳐 읽다
중국 역사의 중심, 공자를 고쳐 읽다
  • 이재하 경성대·중문학
  • 승인 2009.12.15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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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을 마치고_ 『수사고신록』(최술 지음, 이재하 외 옮김, 한길사)·『수사고신여록』(최술 지음, 이재하 옮김, 한길사)

중국 역사상 공자만큼 왜곡된 인물도 없다. 때로는 지나친 존경으로 왜곡됐고, 때로는 현학적인 악취미에 빠져 왜곡됐고, 때로는 자신의 잘못을 엄폐하기 위해 공자의 행적을 날조하기도 했다. 선의든 악의든 萬世師表인 공자의 왜곡을 넘어 중국 고대사에 대한 날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司馬遷의 『史記』·『孔子世家』도 믿을 수 없단 말인가. 한마디로 그렇다. 이런 마당에 기타 『孔子家語』나 『韓詩外傳』·『莊子』·『列子』·『韓非子』·『孔叢子』·『說苑』 등에 실린 공자와 그 제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그대로 믿을 수 있겠는가.

이런 면에서 『論語』도 혐의를 벗어날 수는 없다. 오늘날의 『논어』는 공자 문인의 원본이 아니며, 漢나라 때 『魯논어』와 『齊논어』가 뭉뚱그려졌기에 그렇다. 더욱이 지금의 『논어』는 張禹가 엮은 것이다. 西漢 말 成帝의 스승으로 승상을 지낸 장우라는 인간은 사치와 재물에 대한 집착의 화신이었다. 그는 王莽에게 빌붙어서 부귀나 보전하려다가 끝내 왕망의 찬탈을 조성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논어』의 여러 판본을 제멋대로 취사선택해 엮었으니, 그 가운데 자신의 처신을 은폐하기 위한 장치도 없지 않았으리라.

청나라 고증학자 崔述(호는 東壁, 1740∼1816)은 왜곡으로 덧칠해진 공자를 안타까워했다. 그는 공자의 진면목을 찾으려면 전적의 선후와 진위를 명확하게 판단해야 하며, 僞學과 邪說로 얼룩진 공자에 대한 誣告를 도려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는 經史書에 필생의 정력을 쏟은 나머지 先秦史 고증의 획기적인 저술인 『考信錄』 36권 등 총 34종 88권을 남겼다. ‘고신록’이란 철저한 고증을 거쳐 믿을 수 있는 것만 기록한다는 의미이며, 최술만의 독특한 고증학적 방법은 중국의 역사학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단계로 발전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특히 『고신록』의 일부인 『洙泗考信錄』과 『수사고신여록』은 공자와 그 제자들의 행적에 덧씌워진 신화와 왜곡을 걷어내고 원형을 복원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불후의 명저로 꼽힌다.

최술은 이 두 책에서 공자나 그 제자들에 대해 왜곡됐거나 허황된 이야기를 240여 개의 변증을 통해 논리적으로 분석한다. 공자의 부모에 얽힌 , 맹의자와 남궁경숙이 열일곱 공자에게 배웠다는 이야기, 공산불요가 공자를 불렀다는 이야기, 위나라 진나라 채나라 등을 떠돌 때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詩』·『書』의 편집 및 『春秋』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도출한다.

합리와 상식 추구한 최술의 집념
최술은 통탄했다. “『사기』·『공자세가』나 『공자가어』의 내용은 『장자』나 『열자』에서 따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 이야기가 『장자』나 『열자』에 들어 있을 때에는 그나마 한두 사람이라도 이단으로 여겨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공자세가』나 『공자가어』에 들어 있으면, 비록 이름난 학자라도 믿어버리고 만다. 아, 슬프도다. 겉으론 그들을 이단이라 물리치지만 속내로는 그들의 허튼소리를 따르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자가 결코 적지 않음이여!”

최술은 공자 왜곡의 결정판으로 『공자가어』를 꼽는다. 『공자가어』를 뜯어보면 공자와 그 제자들이 마치 시정잡배만도 못한 집단처럼 묘사됐다. 『설원』이나 『한시외전』도 曾子와 閔子騫의 효성을 돋보이게 할 요량으로 얼마나 어설픈 이야기를 지어냈던가. 때로는 몽둥이찜질에 갈대솜이 등장하기도 한다. 일견 재미있고 그럴싸하지만 이야말로 날조를 넘어 가정파괴범 수준이다.

『고신록』은 출간 당시 기존의 학설과 통념을 부정한 파격적인 주장으로 철저히 외면당했다. 하지만 최술 사후 87년이 지난 1903년 일본에서 『최동벽선생유서』가 출판됨으로써 사학계에 충격파를 던졌으며, 다시 중국으로 역수입돼 1920년대 古史辨派를 형성하는 등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때문에 중국 新史學의 개척자인 양계초는 ‘고대사 연구의 표준’, 신문화운동의 중심인 호적은 ‘중국 역사학의 새로운 출발점’이라 극찬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고신록』은 물론이고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수사고신록』조차 현대어 역주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점이 의아스럽기만 하다.

나는 7년 전 심한 골절상을 입었다. 몇몇 교수님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작업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같이 책이나 읽자는 것이었다. 기뻤다. 자연스럽게 『수사고신록』과 『수사고신여록』부터 읽었다. 날이 갈수록 퍼즐을 맞추듯 공자의 진면목이 되살아났다. 힘을 합쳐 역주작업을 마치자 성취감도 들었지만 개운치 않았다. 자신할 수 없는 구석이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顧吉頁剛 편정본 『최동벽유서』의 원문이 잘못된 게 분명한데도 확인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 두 해가 흐른 2007년 봄, 일본사학회에서 1903년에 출판한 『최동벽선생유서』 초판본과 최술 사후 100주년 기념으로 다시 찍은 『최동벽유서』를 일본 고서점에서 구할 수 있었다. 마침내 고힐강 편정본의 오류를 확인했고, 미진한 구석을 나름대로 보완할 수 있었다.

『고신록』의 수난과 역주작업
번역은 저자의 의중을 옮기는 작업이다. 직역과 의역 모두 장단점이 있다. 따라서 번역의 正道는 직역과 의역의 적절한 조화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현대 한국인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말로 옮기되 최술의 호흡을 최대한 살리려 노력했지만, 성공여부는 의문이다. 훌륭한 고전이 지성의 지평을 넓히는데 여전히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가독성이 생명일 터이다.

최술도 허점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현대어로 최술의 엄정한 논증을 읽다보면 인간 공자에 대한 이해와 거기서 비롯한 중국 문화, 나아가 우리 전통의 일부인 유교 문화에 대해 되돌아볼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중국의 도전이 화두로 떠오른 이 시점에 공자를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이재하 경성대·중문학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저서로 『인간조조』(2권)가 있으며, 『수사고신여록』등의 역서를 출간했다. 현재 대한중국학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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