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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철회 방안 고민 … “학회 현실 맞지 않다” 신중론도
자진철회 방안 고민 … “학회 현실 맞지 않다” 신중론도
  • 박수선 기자
  • 승인 2009.12.07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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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편집위원장에게 들어 본 논문 중복게재 쟁점

소급 적용이 어렵다면 유예기간을 두고 논문철회를 받는 것도 학계에서 제기된 연구윤리 제고 방안이다. 실제 대한내분비학회와 대한내과학회는 공개적으로 논문철회 신청을 받기도 했다. 다른 학문분야로 이어질 지 기대를 모았던 논문 자진 철회는 더 이상 다른 분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류춘호 경영과학학회 편집위원장(홍익대)은 “가만히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는데 스스로 철회한다고 공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자진 철회 가간을 정한다면 회원들에게 충분히 공지하고, 고민할 수 있도록 1년 정도의 시간은 줘야한다”고 말했다. 문승현 한국막학회 편집위원장(광주과학기술원)은 “이미 발표해 이용되고 있는 논문을 철회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면서 “자신의 실적에서 삭제하는 정도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일러스트 : 이재열


하지만 민감한 문제인 만큼 중복게재 한 논문을 연구자 스스로 철회 할 수 있는 유예기간을 주자는 방안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백종섭 한국행정학회 윤리위원장(대전대)은 “여러 차례 중복게재 규정을 만들려고 했지만 합의가 쉽지 않았다”면서 “논문을 자진철회 할 수 있는 기간을 주는 것이 예전의 잘못된 관행을 털어내고 연구자 스스로도 심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재 수위는 의도성·중복 정도 따져야
중복게재로 판정이 났을 경우 어떻게 제재해야 할까. 논문 중복게재의 경우 표절 보다 더 조심스럽다. 연구자가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중복 정도에 따라 제재 수위가 달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윤상철 비판사회학회 편집위원장(한신대)은 “중복게재는 표절과 달리 의도성 없이 이뤄질 수 있다”면서 “해당 기관이 충분한 소명기회를 거쳐 판단하고 의도성이 없거나 중복 정도가 경미할 경우에는 연구자가 자진철회 하도록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도성이 명백한 경우에는 표절과 동일하게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심재진 한국청정기술학회 편집위원장(영남대)은 “자기 논문의 일부 중복게재는 표절과는 다른 관점에서 봐야한다”면서 “그러나 완전한 중복게재는 표절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표절과 비교해 적정한 제재수위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표절과 비슷한 수준에서 재재하거나 표절보다는 낮은 수준에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이렇게 모든 사안에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것은 연구자나 학회, 학문분야별로 중복게재를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 중복게재 판정 기준은 연구자 마다 다를 수 있다. 의도성이 없는 중복게재는 문제가 없다는 의견부터 몇 문단이 겹치면 중복게재라고 보는 쪽도 있다. 박우수 한국영어영문학회 편집위원장(한국외대)은 “중복게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면서 “한 개의 논문을 10개의 논문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태영 편집위원장은 “비등재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을 수정해 등재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은 중복게재로 보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회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중복게재 규정과 기준을 만드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에서 마련한 지침을 그대로 따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에서 마련한 중복게재 판정 기준은 학회 현실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술대회 발표논문 중복게재 금지 지나치다”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는 학술적인 저작물 4개 가운데 2곳 이상에 출처 표시 없이 그대로 게재하면 중복 게재로 봤다. △국내 학술회의 발표 논문 △국내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해외 학술회의 발표 논문 △해외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이 여기에 해당한다.

특히 국내에서 발표된 논문을 번역해 해외 학술지에 게재하는 경우와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한 경우가 논란을 빚고 있다. 국문으로 발행된 논문을 해외 저널에 게재하는 것은 이공계에서는 중복게재라고 보는 게 중론이다. 이전에는 권장했었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연구 정보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중복게재에 해당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학문 특성에 따라 다른 의견이 존재한다. 이남인 한국철학회 편집위원장(서울대)은 “이공계와 달리 인문과학 쪽에서는 영어 이외의 다른 지역 언어로 논문을 번역하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면서 “잘 알려진 논문은 자기도 모르게 다른 언어로 번역될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를 중복게재로 판정하는 것은 오히려 학문 발전을 저해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번역 논문’을 유연하게 바라보자는 주문이다.

학술대회 발표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김상식 대한전기학회 편집위원장(고려대)은 중복게재 규정이 교수들의 학문 활동을 위축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는 행위는 연구 업적물이 아니라 연구자의 연구 내용을 공개하고 토론하는 장이다. 연구업적은 저널로만 평가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중요한 내용은 학술대회에서 발표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학계에서는 중복게재를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기 인용을 꼽고 있다.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의 연구윤리지침도 중복게재에 해당하는 경우라도 출처를 표시하거나 양쪽 편집자의 동의를 받으면 중복게재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문제는 자기 인용도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연구윤리위원을 역임한 독고윤 아주대 교수(경영학)는 “중복게재를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자기 인용이지만 언제나 가능하지는 않다”면서 “자기인용은 피인용 횟수를 늘리는 데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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