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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그 지하실 날것들의 매혹
인사동, 그 지하실 날것들의 매혹
  •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 승인 2009.11.30 1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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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전시_ 노충현 ‘室密室 Closed-door Room’ 展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 11월 11일 ~12월 11일 )

한국 미술에서 인사동이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높다. 많은 작가들이 이 골목에서 명성과 상처를 얻어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주요 화랑들이 인사동을 떠나고 서울 강북과 강남 도처에 많은 미술 거점 지역들이 새로 생겨나면서 인사동의 위상이 많이 약화됐다. 미술에 관한 한 인사동이 예전만 같지 않다는 말들이 오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동은 여전히 우리 미술계에서 큰 존재 이유를 갖는데 그것은 몇몇 중요 공간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공간 가운데 하나가 바로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이다.

지하공간 내벽을 활용해 전시공간으로 만들고,여기에 작품을 의도적으로 배치한 풍경이 특이하다.


사루비아다방은 실험적인 예술을 지원하는 비영리갤러리로 1999년에 설립됐다. 여기서는 나이와 경력, 작업경향에 구분을 두지 않고 독창적 사고와 실험 정신에 바탕을 둔 예술가를 선정해 기획한 작품을 제작, 전시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한다. 같은 시기에 설립된 여러 대안공간들이 갖가지 문제점을 드러내며 사라지거나 성격이 변화됐지만, 사루비아는 최초의 취지를 잘 살려내고 있다.

이 공간이 젊은 작가들에게 큰 호응을 얻는 것은 작가 지원 프로그램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거친 시멘트 벽을 날 것 그대로 노출한 지하 공간 특유의 양상이 그들의 실험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한 달 가량의 전시 준비 기간과 또 한달 가량의 전시 기간이 주어지는 것은 여기서 진행되는 전시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여건을 제공한다. 

지금 여기서 노충현의 ‘室密室’展이 진행 중이다. 작가는 우리 근현대사의 문맥 속에서 밀실(형무소, 교도소, 용산 참사 현장, 故 박종철 기념관, 옛 안기부 건물 등)을 캔버스에 ‘그리기-지우기’를 반복하며 재현하는 방식으로 밀실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전시 주제 ‘室密室’은 보이지 않는 밀실이 사회 ‘곳곳’에 있음을 암시하는 造語다. 작품들과 가벽을 이용한 작품의 배치는 밀실이 정치의 영역을 넘어 일상의 영역에 퍼져나가 삶의 위기를 초래하는 방식을 차갑게 드러낸다. 폐쇄와 감시, 규율과 전체주의를 시각적으로 성찰한 작업들이다.

참고로 뒤이어 진행되는 전시는 사루비아다방 10주년을 기념하는 기금마련전시(12월 16일~12월 23일)다.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할 생각이 있는 지식인이라면 방문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kunst75@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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