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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아무 책도 읽지 않았다
[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아무 책도 읽지 않았다
  • 이택광 서평위원/경희대·영문학
  • 승인 2009.11.3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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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서평위원/경희대·영문학
2004년에 타계한 자크 데리다에 관한 어떤 다큐멘터리를 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있다. 제작자에게 책으로 빼곡하게 둘러싸인 서재를 보여주며 데리다는 “이 책들을 다 읽었는지 사람들은 궁금하게 여긴다”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아마 책을 읽는 직업을 가진 ‘학자’라면 이런 질문을 한번쯤 받아봤을 것이다. 서재나 연구실을 방문한 손님이 순진한 척 동그랗게 눈을 뜨면 “여기 있는 이 책들을 다 읽었나요?”라고 물어볼 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는가.

사실 정답은 있다. 읽은 책도 있고 읽지 않은 책도 있다고 대답하는 게 가장 정직하고 안전하다. 물론 발터 벤야민처럼, “골동품에 밥을 담아 먹는 법이 어디있는가”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경우는 말 그대로 ‘수집대상’의 책을 서재에 잔뜩 쌓아뒀기 때문에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전자책이 나오는 요즘에 책 자체에서 어떤 가치체계를 발견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낭쉬가 쓴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더욱 짙어졌다. 이 책은 책과 서점에 대한 짧은 글을 싣고 있다. 낭쉬에게 책은 펼침과 닫힘 사이에 존재하는 전환의 과정이다. 책은 불타는 유성을 꿈꾸고, 서점은 자유로운 책의 경험을 열어놓는다. 유성의 머리를 둘러싼 불꽃의 갈기는 영광의 먼지를 태우며 영원의 경험을 전달해준다. 여기에서 필수적인 것은 바로 이데아이다. 모든 사유의 원형이자 원초적 아버지의 이름. 서점은 이런 책의 경험을 위한 공간이다. 서점은 대로에 있으면서 책에서 책으로 우리를 이끄는 길라잡이이다. 이것은 거래이고 소비이지만, 순수하고 새로운 것이다.

모든 책은 눌러 찍은 것(imprint)이다. 책에 찍혀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경험이다. 이 경험을 거래하는 것이 바로 책을 사고파는 서점의 역할이다. 이런 까닭에 책을 구매하는 행위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저자거리에서 옷 한 벌을 사는 행위와 책을 사는 행위는 이런 맥락에서 분명 차이를 갖는다. 책을 사는 행위가 훨씬 더 고귀하다는 뜻이 아니다. 책을 사는 행위는 필요의 행위라기보다, 경험을 영원성을 체험하기 위한 충동을 내포한다. 그래서 책은 반드시 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책은 사서 모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일찍이 벤야민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파격은 더 있다. 책을 훔치는 행위이다. 벤야민이 은근슬쩍 밝히고 있듯이, 꼭 갖고 싶은 책을 갖지 못해서 죽을 지경이라면 훔치는 수밖에 뾰족한 방도가 없다. 진정 그 책의 가치를 아는 이라면, 도둑질을 하더라도 거기에 대해 도덕의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책이 진정 이데아의 소비를 뜻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책은 펼치기 전까지 그냥 종이뭉치에 불과하다. 펼치는 순간 책은 사유의 거래를 시작한다.

마르크스는 책을 사고파는 행위도 경제적인 것이라고 했지만, 낭쉬는 비록 상품이긴 하지만 책이라는 세계에 특이성이 내포돼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독서는 단순하게 책의 내용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에 눌러 찍혀 있는 경험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다시 인쇄하는 것이고 다시 제책하는 행위가 독서이다. 책을 읽은 자는 책을 쓸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책은 그렇게 돌고 돈다.

이 순환의 구조에서 책을 읽는다는 건 정치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책을 구성하는 건 이데아와 형식이다. 이 형식은 기념비적이다. 책의 모습은 사유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닮아 있다. 그 생김새도 마찬가지다. 펼치는 순간 책은 읽힌다. 책의 모양새를 보자. 제목과 저자의 이름이 책등에 새겨져 있다. 책등을 중심으로 열리는 페이지들은 사유의 시작과 끝을 알린다. 책이 열리는 순간 사유의 책을 되풀이한다. 책이야말로 이데아의 구현체인 것이다. 끊임없이 이데아로 나아가는 모방의 복제물이 곧 책이다. 그래서 책은 카피라고 불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서재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는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 모든 책들에서 무엇인가를 읽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읽은 것이 아니라, 그 책에서 우리는 새롭게 반복하는 경험을 다시 불러낸 것뿐이다. 이 많은 책들을 다 읽었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어떤 책은 읽었고 어떤 책은 읽지 않았다고 대답할 수 없다. 모든 책은 읽히지 않은 상태로 서가에 꽂혀 있다. 한번을 읽었다고 해도, 어차피 다음에 읽을 때 그 읽은 경험은 되풀이할 수 없다. 책은 펼치는 순간 새로운 것이다. 우리는 아직 여전히 아무 책도 읽지 않았다.

이택광 서평위원/경희대·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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