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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와 反美 사이의 독자적 행보에 시선 집중
실용주의와 反美 사이의 독자적 행보에 시선 집중
  • 우주영 자유기고가
  • 승인 2009.11.2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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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라틴아메리카 연구 현황

지난 10일부터 이틀간 서울 코엑스에서 ‘중남미-고위급 포럼’이 개최됐다. 중남미 12개국 장관급 인사 16명이 참석하는 이 포럼에선 한-중남미 간의 협력 증대를 위한 방안이 논의됐다. 더불어 학계 역시 ‘알려지지 않은 땅’ 라틴아메리카에 주목하고 있다. 지리, 문화적인 요인 등으로 서구나 동남아의 지역연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됐었던 과거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특히 서울대와 부산외대의 라틴아메리카 연구소가 HK사업에 선정된 후 라틴아메리카 연구는 한층 탄력을 받고 있다.

국내에 라틴아메리카 연구가 본격화된 건 1990년대에 들어서다. 이전까진 정치, 경제, 사회 등에서 부분적인 연구가 이뤄졌고, 내용 역시 근대화론이나 종속이론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정책으로 해외지역연구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면서 라틴아메리카 연구 역시 도약의 기회를 맞게 된다. 서울대(1989)와 부산외대(1997)의 연구소가 창설된 것도 그 즈음이다.

정치·경제에서 생태·환경으로 관심 확산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은 한층 다원화된 양상이다. 김우성 이베로아메리카연구소 소장(부산외대 스페인어과)은 “지금까지의 연구가 정치, 경제적인 것에 한정됐었다면 최근엔 문화연구가 많이 진행되면서 사회 소수자, 생태와 환경 등으로 주제의 폭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환경 문제가 중요해지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나 환경에너지, 신재생에너지 등의 개발에 관심이 높아졌고, 세계 자원의 보고인 라틴아메리카는 자연스레 자원외교의 중요한 협력 국가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학계의 연구 주제 역시 자원과 환경으로 그 폭이 확대되고 있다.

 사회적 약자, 그 중에서도 원주민에 대한 연구가 주목할 만하다. 볼리비아와 에콰도르를 중심으로 원주민의 정치적 약진이 계속되자 학계뿐 아니라 국내의 사회운동 역시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우성 교수는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에 익숙한 원주민들을 통해 환경파괴에 대한 생태적인 대안을 마련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자유주의 대안을 찾아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앞선 경험은 국내 학계가 라틴아메리카를 조명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초기 연구로는 2000년대 들어 학술진흥재단의 연구지원 하에 진행된 신자유주의 3부작(『라틴아메리카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의 정치경제학』(2005), 『신자유주의시대 라틴아메리카 시민사회의 대응과 문화변동』(2005), 『세계화와 라틴아메리카의 이주와 이민』(2005))을 꼽을 수 있다. 20년에 걸친 라틴아메리카의 신자유주의 경험을 국내 학계의 주도하에 분석했다.

 특히 최근 몰아닥친 경제위기 이후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각성의 소리가 높아졌다. 라틴아메리카는 이미 1982년, 시장개방과 민영화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한 후 극심한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최근 실용주의와 반미 민중주의란 독자노선을 고집하며 신자유주의 극복에 주도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학계가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우석균 교수(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는 “신자유주의 모델에 대응해 그에 대한 라틴아메리카 내 개별 국가의 사회운동, 세계사회포럼 등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하상섭 교수(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 역시 “엔지오나 사회시민 운동 등 민간차원에서도 라틴아메리카를 통해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가 크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국내 대표적인 라틴아메리카 연구자로 손꼽히는 이성형 교수(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는 최근의 저서 『대홍수』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신자유주의의 극복 과정을 정리한 후, 우리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공공성 복원과 경제블록화라고 강조한다(하단 기사 참조).

 

제대로 된 담론 형성 필요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포퓰리즘 정부’, ‘좌파 정부’식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편견은 많은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였다. 이는 라틴아메리카의 연이은 좌파정부 집권에 대한 국내 보수 언론의 보도 행태가 큰 원인으로 꼽힌다. 김우성 교수는 “좌파 정부의 집권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나름의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다. 그들 역시 시장경제를 인정한다. 이런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무조건 미국에 대한 반대가 곧 우리 식의 좌파, 사회주의정부라고 매도하는 것은 문제다”라고 지적한다. 우리 사회에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인식이 부족하다보니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상당히 고착된 상태다. 이에 대해 우석균 교수는 “국내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바라보는 제대로 된 담론 형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언론에 라틴아메리카와 관련해 제대로 된 전문기자 조차 없다보니 서구의 외신보도를 그대로 인용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는 사실상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또한, 시민사회 등과 연계해 일반 대중에게 라틴아메리카를 알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우성 교수는 “라틴아메리카를 정확하게 우리의 시각으로 보기 위해선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이론서를 펴내는 일과 함께 시민대중강좌를 통해 그 지역에 대한 소개 작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 연구소들은 상호간의 협력과 더불어 나름의 중점과제를 설정해 라틴아메리카 연구의 폭을 넓히고 있다.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는 인문, 사회·과학 전 분야를 아우르는 텍스트 번역에 주력한다. 부산외대 이베로아메리카연구소는 이주 한인들에 대한 연구와 함께 지역 진출 기업을 위한 정보창구 역할을 자임한다. 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한국·중남미 간 환경협력 모델 연구’를 진행 중이다. 국내 학계에서 라틴아메리카 연구는 이제 막 속력을 내고 있다. 나아가 라틴아메리카 연구가 국내 학문 연구의 외연을 넓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우주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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