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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배는 없다’ 우수성만 보고 선정 … 평가위원 아는 사람은 다 알아 ‘사전 공개’ 검토
‘안배는 없다’ 우수성만 보고 선정 … 평가위원 아는 사람은 다 알아 ‘사전 공개’ 검토
  • 박수선 기자
  • 승인 2009.11.16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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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인터뷰_ 박찬모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1935년 천안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거쳐 미국 매릴랜드대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9년부터 미국 매릴랜드대, 카이스트, 미국 가톨릭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90년에 포스텍으로 자리를 옮겨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총장으로 재임했다. 2008년 7월부터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에 취임하기 전까지 대통령 과학기술특별보좌관을 지냈다. 남북학술교류에도 관심이 많다. 2005년부터 평양과학기술대 공동 설립위원장을 맡아 설립에 힘을 보탰다. 

지난 6월 출범한 한국연구재단은 요즘 연구개발의 새 밑그림을 그리는 데 한창이다. 최근 연구 기획부터 사후평가관리까지  개선안을 담은 ‘기초·원천연구 선진화 방안’을 내놨다. 연구재단은 이 방안을 토대로 내년부터 세부 과제를 구체화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박찬모 한국연구재단 이사장(74세)을 지난 3일 연구재단 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박찬모 이사장은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자리가 이렇게 바쁠 줄 몰랐다”면서 근황을 전했다. 연구재단의 중점사업과 과제 등을 들었다.

● 일시: 2009년 11월 3일 오후 4시
● 장소: 한국연구재단 서울 청사 이사장 집무실
● 대담·진행: 최영진 교수신문 주간(중앙대·정치학)
● 사진·정리 :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한국연구재단 초대 이사장이라는 중책을 맡았습니다. 학계는 새롭게 출범한 연구재단에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학술진흥과 연구개발의 선진화를 이끌어야 하는 연구재단의 초대 이사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출범 이후  비전, 목표, 중장기 발전전략 등 큰 그림을 그리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3년의 임기동안 4개 과제는 반드시 이룰 생각입니다. 우선 ‘PM제도’를 연구재단 대표 브랜드로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기초연구와 풀뿌리 연구에 대한 지원도 2012년까지 50%까지 끌어올릴 것입니다. 아울러 △저탄소 녹색성장 △기후변화 △에너지 △뇌 연구 △핵융합 등 녹색성장을 이끌기 위해 핵심기술을 중점 개발하고 창의적인 융합연구에도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입니다.

》PM은 학계 전문가를 선임해야 되는데, 정작 학계에서 인정하는 전문가들은 행정적인 일을 기피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PM을 맡게 되면 당분간 연구에 매진할 수가 없습니다. PM을 맡는 동안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지요. 그 분들의 월급도 대학의 급여에 맞출 수 없습니다. 결국 파견 형식으로 와서 월급은 대학에서 받고 연구재단에서는 거미비조로 조금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PM들이 희생을 많이 하는 것이지요.

》연구재단에서는 PM의 역할과 권한이 이전보다 훨씬 커졌습니다. 그만큼 책임도 막중해 지겠지요.
취임 이후에 PM의 인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모든 게 허사가 됩니다. 권한을 준만큼 일을 제대로 하는지 외부 평가위원회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평가할 계획입니다.

》PM의 자율성도 좋지만 정부로부터 자율성을 갖추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연구지원기관과 체계가 변한 것도 사실입니다.
예전에는 과제를 선정하는 데 관련 부처에서 선정을 하고 어디에 돈을 주라고 이야기도 했던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연구재단에 되도록 자율성을 주고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관계도 굉장히 좋습니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비롯해 실·국장도 연구재단을 믿고 존중하는 분위기입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선정기준과 지원체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PM 매뉴얼과 프로세스 매뉴얼을 전부 만들고 있습니다. 국제수준에 맞는 표준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부에서 토론하고 있는 문제가 있는데, 평가위원 공개 여부입니다. 평가위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지금도 다 알고 있습니다. 명단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유리하고, 알아내지 못한 사람은 불리한 것인데 공정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럴 바에는 공개하자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평가위원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평가위원을 귀찮게 하고 압력도 더 많이 받을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이 문제는 내부에서 신중하게 논의하고 교과부와도 협의하고 있습니다.

》지원을 못 받는 곳이 더 많다보니, 선정과정에 공정성 시비는 끊이지 않습니다.
HK사업 같은 경우 발표가 나오기 전에 이의를 제기하는 메일을 2통 받았습니다. 어떻게 회의만 끝나면 그 이야기가 다른 데로 옮겨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유출한 것인데, PM이 심사위원을 잘 못 뽑았다고 볼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본부장들이 하소연 할 때가 없다고 해서 매주 간부회의에서 어떤 압력이 들어오는지 점검할 생각입니다.

저한테도 찾아오겠다는 총장들이 종종 있습니다. 선도연구센터를 선정할 때 연락이 많이 오는데, 부탁하러 오시는 거니까 오시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언제 한번은 한 대학총장님이 무조건 오셨습니다. ‘지방대에 안배를 잘 해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저는 취임하면서부터 ‘안배는 없다’고 공언했습니다. 지방대 안배가 필요하면 대학 균형을 고려한 사업에 신청을 해야죠. 자격이 없는데 지원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수성만 보고 선정하기 때문에 신청한 팀이 우수하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원사업에 신청한 교수들이 총장에게 로비 좀 하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우리도 특허청처럼 로비를 하면 오히려 불리하다는 소문을 좀 내야겠습니다.(웃음)

》‘기초·원천연구사업 선진화 방안’을 보면 연구기획부터 평가, 사후관리 등을 포괄합니다.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은 무엇입니까.
핵심은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 분위기 조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과제가 너무 생소하면 뜬 구름 잡는 것이 아닌지 회의적인 평가가 많았습니다. 생소하지만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과제라면 PM이 담당하는 연구비 5% 이내에서 지원할 수 있게 했습니다. ‘성실실패’제도도 이번에 새롭게 도입하는 것입니다. 연구자들이 과제를 수행하다가 실패하면 다시 연구 신청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만약에 성실하게 연구를 수행하고 다른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됐다면 ‘성실실패’로 인정해 주겠다는 의미입니다.

 
또 연구자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연구행정에 대한 부담도 덜게 됩니다. 많이 개선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연구자들이 서류를 작성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연구비 정산하는 게 귀찮아서 연구비 안 받겠다는 연구자들도 있더군요. 그래서 우리가 연구비 정산에 온라인 시스템을 도입해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할 계획입니다. 이외에도 △연구관리 관련 규정 통합 △연구비 운영 탄력성 강화 △연구관리 실시간 알리미시스템 구축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연구지원기관이 통합한 취지를 살려 인문사회분야와 자연과학분야의 융합연구에도 지원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성실실패’제도는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객관적인 기준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성과평가 문제로 확대하면 요즘 강조하고 있는 질 중심의 평가도 그렇습니다.
SCI 논문을 중심으로 양적 평가에 치우친 경향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은 오래전부터 나왔습니다. 포스텍 총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에 교수 업적평가를 이원화한 경험이 있습니다. 기초 분야는 임팩트팩터를 봤고, 응용분야는 국가의 경제발전에 얼마나 공헌했는지, 연구비를 얼마나 수주했는지 등을 평가했습니다. 그 때 교수들 반응이 얼떨떨했는데 나중에는 산학협력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분야별로 보면 물리학처럼 오래된 학문과는 다르게 컴퓨터 쪽은 SCI 논문 자체가 얼마 없습니다. 특히 인문사회로 오면 질 중심의 평가는 더 어렵습니다. 학문특성을 살려 질 중심으로 평가하는 제도도 현재 연구 중입니다. 

》연구재단 출범 이후 인문사회분야 쪽에서는 홀대론도 나오고 지원이 적다는 불만도 있습니다.
전체 연구비 지원 비율을 보면 자연과학분야 80%, 인문사회분야 10%, 나머지 공통 지원이 10%정도 됩니다. 왜 인문분야가 적은지 저도 질문 많이 받습니다. 이공계는 기기나 초기 인프라 구축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곤 합니다. 대학 총장들을 만나면 스스로 위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평소에 ‘가능성 사고’를 강조하는데 과감하게 해나가면 불가능한 게 없습니다. 지원 방식이 탑다운 방식과 버텀업 방식이 있는데, 개별 연구자들의 신청을 받아 선정하는 버텀업 방식에서는 절대 학교를 보고 선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예산을 확대해 현재 30%를 밑도는 연구비 수혜율을 70%까지 끌어올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연구개발비에 많은 예산이 투입됐는데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정부 출연연구소가 밀집되어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출연연 모임에 가끔씩 참석합니다. 사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 출연연이 연구개발에 공헌한 게 많습니다.  홍보가 부족해 국민들이 잘 모르는 것이지요. 성과를 널리 알리기 위해 R&D 성과 혁신센터를 설치할 계획입니다. 또 연구자들의 특허와 같은 R&D성과물에 대한 보호와 확산체계도 더욱 강화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연구과제에 신청하는 연구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연구지원사업에 신청하시는 연구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안일한 생각을 버렸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될 것 같은 쉬운 주제보다는 과학기술 선진화를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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