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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석부 점찍기 단상] 빈 칸의 의미 차이를 간과하는 행정관행
[출석부 점찍기 단상] 빈 칸의 의미 차이를 간과하는 행정관행
  • 신재영 위덕대·교육대학원
  • 승인 2009.10.26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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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석부에 점찍기는 개인적으로 오랜 연륜을 가진 작업이다.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께서 교무실로 불러서 갔더니 출석부에 점찍는 일을 시키셨다. 과찬을 하셨는데 당신께는 지루한 작업이었음을 내비치신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그만큼 단순·반복적인 일도 드물 것이다. 그 후 아예 점이 인쇄된 출석부가 활용되기도 했었다. 지금은 일선 학교의 학사행정이 전산화되면서 더 이상 점찍는 작업은 없어졌다.

 

 

대학의 경우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출석부가 작성되고 있어 점찍는 작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점찍기를 의무화해 매 강좌 수백 수천 개의 점을 찍게 하는 경우도 있고, 빈칸을 허용하는 학교도 있다. 그런데 ‘허용한다’는 의미는 빈칸의 편의성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당위성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빈칸은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 곧 ‘결석’ ‘지각’과 마찬가지로 ‘출석’에도 표시(점 혹은 o)를 해야 출석부 작업이 완료된다는 일반적 생각과는 달리 빈칸만으로도 충분히, 아니 표시한 경우보다 더 합당하게 작업을 완료할 수 있는 것이다.

출석부는 대체적으로 세로로는 수강생 명단과 그 아래의 여분의 빈칸, 가로로는 수업일시를 기록하는 칸, 그리고 교차부분에 출결을 표시하는 칸, 맨 오른쪽에 개인별로 결석일수를 기입하는 열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빈칸들의 의미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교수자가 수업일시를 기록하는 순간 명단과 교차된 빈칸은 활성화되는 데 비해 명단 아래 여분의 행과 교차된 빈칸은 여전히 의미없는 빈칸이다.

출석 표시로 점을 찍는다는 것은 두 빈 칸의 의미 차이를 간과하는 것이고 사족을 다는 일이나 마찬가지이다. ‘활성화’됐다는 의미는 별다른 표시 없이도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뜻이며 곧 ‘잠정적으로 출석한’ 것으로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이 경우 뭔가 표시가 되면 불출석이 되는 것이다). 구태여 점을 찍지 않아도 됨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결석일수만 기입하도록 돼 있는 것이다. 점이 필수적이라면 세어서 기록하는 양식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출석 표시를 한다는 것은 출석을 확증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데, 사실 불출석은 분명하게 확인이 가능하지만 출석은 대리출석과 이탈 등이 있을 수 있어 확증은 부담이 되는 일이다. 수업 출결 확인 시 주로 불출석만 표시하고, 출석 표시는 의무사항일 경우 학기말에 몰아서 하기 마련인데 소급해서 출석을 확증하는 작업은 더욱 심적 부담을 갖게 한다.

빈칸을 ‘잠정적으로 출석한’ 것으로 간주하면 사서 마음고생까지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결국 출석을 나타내기 위해 '표시를 하는' 방식은 논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합당하지 않다.

서류작업 형식을 갖추기 위해 점을 찍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지나친 완벽성이고 사족을 위해 많은 교수자들로 하여금 매 학기 시달리게 하는 셈이다. 빈칸으로 둘 경우 변조 우려가 있다는 주장 또한 기우이다. 개인별로 결석일수를 기입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완벽성과 기우는 매사 하나하나 입증(점찍기)해야 마음이 놓이는 인지적 습관과 결부시킬 수 있을 것이다.

확인(증명)에는 반증의 방식도 있다.  '표시한 칸'이 의미를 갖듯이 '표시 안한 칸'도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흄이 제기하고 포퍼가 해법을 제시한, ‘입증의 방식은 진리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명제를 원용하면 출석을 완벽하게 확증하는 일은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적어도 출석확인 과정에 문제가 없었음(오류가능성을 열어둠)을 출석부로 인정하는 수준이 보다 합당하고 실질적이다.

활성화된 빈 칸은 그 기능을 아주 적절히 수행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물론 없다. NEIS도 이 사안에 관한 한 별 문제가 없지 않은가.

 

신재영 위덕대·교육대학원

미국 텍사스대(오스틴)에서 교육이론과 질적연구로 박사학위를 했다. 현재 위덕대 교수학습지원센터장의 소임을 맡고 있으며, 녹색학원 간디학교에서 교육담당 이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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