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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젤렉’을 공유하면서 넘어서는 새로운 시도 주목하자
‘코젤렉’을 공유하면서 넘어서는 새로운 시도 주목하자
  • 나인호 대구대·역사교육과
  • 승인 2009.10.1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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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_ 개념사 연구, 어디까지 왔나

전통적인 역사학에서 언어는 단지 과거가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파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지난 1980년대 이후로 이른바 ‘언어적 전환’이라는 슬로건 아래 역사적 실재를 언어적 구성물, 다시 말해 텍스트로 보려는 문화주의적 경향이 역사학계에서 새롭게 등장했다. 역사연구의 이러한 경향은 과거인들이 언어 및 상징 행위를 통해 표현한 여러 의미의 성층들을 파헤쳐 새롭게 질서 지우려는 역사적 의미론(historical semantics)의 르네상스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개념사는 그간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진 미셀 푸코의 담론 분석이나 클리포드 기어츠의 문화이론에 기반 한 역사인류학 등과 더불어 역사적 의미론의 한 분야에 속한다.

개념사는 언어현상 중 개념에 초점을 맞춘다. 이 때 개념은 역사적 변화과정 속에서 부단히 의미 변화를 겪는 유연하고 유동적인 언어적 구성물로 간주된다. 이와 관련해 개념사는 개념과 역사적 실재는 이중적으로 서로 얽혀있다는 것, 즉 개념이란 역사적 실재가 반영된 거울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스스로가 마치 정치·사회·경제적 요인들처럼 역사적 실재를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요소라는 것을 강조한다. 개념사는 이러한 점에서 개념을 역사적 맥락을 초월해 존재하는 객관적 실체로 간주하는 전통적인 이념사 및 관념사와 구별된다.

‘역사적 의미론’의 진정한 매력
개념사는 개념 자체의 역사가 아니라, 개념 사용의 역사를 연구한다. 개념들 속에는 각 시대마다 특정한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그것이 사용되면서 발생했던 의미들 및 여기에 내포된 정치·사회적·이데올로기적 함의의 흔적들이 마치 지층처럼 쌓여있다. 개념사는 이러한 흔적의 층위들을 하나씩 벗겨내면서, 역사적 실재의 변화에 개념이 어떻게 연루되었는가를 면밀히 검토한다.

흔히 개념사 연구는 단어 및 용어사 연구, 혹은 단어의 출현 빈도수 및 그 용법을 계량화시키는 어휘통계학(lexicom´etrie)과 혼동되곤 한다. 그러나 개념사는 단어와 개념을 구별한다. 개념사에서 말하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여러 논쟁 및 정쟁에서 사용되면서 사회 각 집단 및 개인의 경험과 기대, 그리고 이해관계에 따라 항상 다의적이며, 더 나아가 의미간의 충돌을 일으키는 논쟁적 단어들이다. 따라서 개념은 定意의 대상이 아니라, 단지 해석의 대상일 뿐이다. 특별히 개념사 연구는 기본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기본 개념이란 한 단어 속으로 이것이 지칭하는 수많은 정치적 사회적 의미의 맥락들과 경험의 맥락들이 한꺼번에 유입된 채 일정한 의미의 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본격적인 개념사 연구는 독일의 역사학자 라인하르트 코젤렉에 의해 체계화됐다. 그는 언어혁명, 즉 개념의 혁명적 변화가 유럽의 근대를 출현시키고 각인시킨 주요 동인이었음을 밝히려했다. 코젤렉은 무엇보다 120개가 넘는 기본개념을 약 7천쪽에 걸쳐 서술한 『역사 기본개념. 독일의 정치·사회적 언어 사전』 (전8권, 1972~1997/8)이라는 방대한 경험연구의 성과를 이룸으로써 이후의 연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코젤렉에 자극받아 독일의 롤프 라이히하르트는 한스 위르겐 뤼제브링크와 함께 『프랑스 정치 사회 기본개념 편람 1680~1820』을 출간했고, 독일 학계를 뛰어넘어 존 포콕과 Q. 스키너가 대표하는 케임브리지 학파의 영향 하에 영미 권에서도 테렌스 볼 등이 『정치적 혁신과 개념의 변화』(1989)라는 개념사 사전을 출판했다.

코젤렉과, 라이히하르트, 그리고 케임브리지 학파의 연구는 언어와 역사적 실재, 또한 개념사와 담론 간의 관계를 둘러싸고 이론적 편차를 갖고 있다. 그 쟁점을 간략히 소개하면, 역사적 실재란 곧 언어적 구성물인가, 아니면 언어는 역사적 실재를 구성하는 것 중 하나일 뿐인가, 궁극적으로 개념사는 담론의 연구에 통합돼야 하는가, 아니면 개념사의 고유성이 견지돼야 하는가 등이다.

초국가사적 연구와 통언어적 실행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연구는 모두 일국사적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반해 21세기에 들어와 개념사 연구는 초국가사(transnational)적 연구의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다. 우선 유럽 연합의 성립과 함께 유럽 공동의 개념사 사전을 만들려는 『유럽 정치사전』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더 나아가 개념사 연구는 유럽연합을 넘어서서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를 포괄하는 문자 그대로 국제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1998년 핀란드의 후원으로 국제개념사연구 단체인 ‘정치·사회적 개념사연구회(HPSCG)’가 창설돼 매년 개념사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고 있으며(2008년에는 서울에서 개최됐다), 이 연구회가 후원하는 ‘국제 개념사 및 정치사상 연구원’(CONCEPTA)이 창설돼 활발한 학술 및 교육활동을 하고 있다. 한편 이 연구회는 2005년 브라질의 대표적인 개념사가인 호아오 페레스가 주도하는 칸디도 멘데스 대학 소속 ‘리오데자네이로 페스퀴사스 대학연구소’(IUPERJ)의 후원으로 국제 개념사 잡지인 <Contributions to the history of concept>를 창간했다.

이처럼 개념사 연구가 독일과 서구를 넘어 유럽의 주변부, 라틴 아메리카, 또한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국내의 역사학계에서 개념사는 아직도 학문적 시민권을 얻지 못하고 있다. 반면 국내의 개념사 연구는 정치·외교학을 중심으로 한 사회과학자들이 선도하고 있다. 하영선 교수 등이 중심이 된 전파연구 모임은 15년간의 연구 끝에 올 봄 『근대한국의 사회과학 개념 형성사』를 출간했다. 또한 한림대 한림과학원은 2007년부터 학제간 연구사업인 ‘동아시아 기본개념의 상호소통사업’을 실시하면서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개념과 소통>이라는 잡지를 창간했으며, 한국개념사총서 사업의 맥락 속에서 김용구, 박상섭, 김효전 교수에 의해 『만국공법』, 『국가/주권』, 『헌법』을 출간했다. 최근에는 박근갑 교수 등에 의해 개념사 연구의 이론적 지평을 모색하는 『개념사의 지평과 전망』이 출간됐으며, ‘동아시아 개념의 절합과 횡단’을 주제로 한·중·일 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됐다. 한편 유일하게 역사학자들이 주도하는 프로젝트로서는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의 ‘동아시아 개념사 연구’ 사업을 꼽을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한 비서구 사회에서 진행되는 개념사 연구들은 ‘근대화 및 근대성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라는 공통적 관심사를 갖고 있다. 유럽의 주변부나,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연구자들은 모두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주체적으로 자국의, 더 나아가 자신이 속한 문명권의 근대를 해석하려고 한다. 특별히 개념이 문제가 되는 것은 비서구 세계의 근대화에는 예외 없이 서구어의 번역과 번역을 통한 무수한 신조어의 출현이라는 개념의 혁명과 이에 따른 지적 아노미 현상이 수반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를 비롯한 비서구사회의 개념사 연구는 한편으로 무엇보다 ‘좋은 근대’와 ‘발전’으로 요약되는 근대화론을 비판하고 근대성의 숨겨진 이면을 성찰하려했던 코젤렉의 문제의식과 방법론을 공유하는 동시에 비서구 사회의 개념사 연구는 코젤렉을 넘어서고 있다. 그가 할 수 없었던 초국가사적인 개념사 연구, 즉 개념의 번역과 문화적 전위라는 통언어적(translingual) 실행에 대한 연구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흥미로운 실험에 국내의 역사학계도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인호  대구대·역사교육과

필자는 독일 보훔대에서 박사를 했다. 개념사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개념사의 지평과 전망』 등의 공저와 다수의 논문을 발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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