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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주의’는 대답으로 충분할까
‘공동체주의’는 대답으로 충분할까
  • 교수신문
  • 승인 2009.09.2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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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_ <교수신문> 528호 민문홍 교수의 서평을 읽고

민문홍 교수가 나의 책 『사회학의 문화적 전환』에 대해 서평했다. 이미 『현대사회학과 한국 사회학의 위기』를 펴낸 바 있는 그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나의 책에 대해 논하니 우선 반갑다. 진단과 처방은 사뭇 달라도 사회학이 이대로의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 동의하는 우리가 아니던가. 더군다나 뒤르케임의 전통을 되살림으로써 마르크시즘에 경도된 한국 사회학계의 지적 불균형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뜻을 같이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서평은 어려운 것인가 보다. 적지 않은 오해가 눈에 띈다. 서평이 나온 지 20여일이 지나자, 문득 다른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오해는 풀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평자의 오해, 어디서 비롯됐나


    민문홍 교수가 가장 오해한 것은 내가 “계몽철학에 대한 낭만적 반발 속에서 사회학이 태어났다는 사회학사를 너무 확대 해석함으로써, 해석학적 전통을 따르는 베버와 짐멜 같은 고전사회학의 기획과는 크게 구분되는 쇼펜하우어, 니체, 후기구조주의, 해체주의, 네오 마르크시즘 이론들 및 포스트모던 문화이론들을 같은 지적 계보에 분류해 종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나는 이런 주장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나는 대항계몽주의와 반계몽주의를 철저히 구분하고, 고전사회학이 계몽주의의 독단에 대한 대항계몽주의의 비판과 보완 속에서 출현했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사드, 쇼펜하우어, 니체로 대표되는 반계몽주의는 고전사회학의 기획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됐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모던사회학은 고전사회학의 기획을 배반하고 독단적인 계몽주의를 따라갔다고비판했다. 그 핵심은 뉴턴의 수학적 물리학을 모델로 사회학을 발전시켜 ‘의미의 문제’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이다. 대항계몽주의 전통을 따르는 사회학(이는 사실 민문홍이 따르는 사회학이다)은 이 시기 동안 이런 주류사회학을 줄기차게 비판해 왔지만, 대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수학적 물리학을 모델로 한 주류사회학에 결정적인 도전을 던진 것은 다름 아닌 80년대말 이후 진행된 ‘사회적인 것’(the social)의 존재론적 변환이다.
모던사회학이 존재론적으로 가정하는 사회적인 것은 제도적 차원에서 볼 때 한편으로는 ‘시장사회와 국민국가’, 다른 한편으로는 ‘가부장적 핵가족’에 기반하고 있다. 미시적 차원에서 볼 때는 ‘합리적 개인’을 전제해서 그 행위를 설명한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여기엔 사회적인 것이 갈수록 조절적·통제적·정상적·일상적으로 될 것이라는 뉴턴적 세계관이 깔려 있다. 존재론적 변화의 핵심은 이러한 근본가정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을 정도로 사회적인 것이 탈본질화됐다는 것이다. 나는 이를 근대 공리주의적 질서의 내파, 또는 미학화로 표현했다.

이 과정에서 수학적 물리학이 축출하고 주변화한 온갖 신념, 도덕, 정서가 파편화된 주술들의 차연적 연쇄 속에서 카이로스적으로 회귀하고 있으며, 그래서 ‘의미의 문제’가 다시 전면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바로 이 상황이 고전사회학 창건자들이 처한 문제적 상황과 유사하다고 보고, 고전사회학의 문제의식을 오늘에 맞게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렇게 변화된 사회적인 것을 탐구하는 데 과학을 모델로 한 사회학이 무기력하다고 주장했다. ‘의미의 문제’를 탐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도덕학(대항계몽주의)을 모델로 한 사회학만으로는 이를 탐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이 지점에서 나와 민문홍은 결정적으로 갈라진다. 그는 해석학적 전통만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나는 작금의 사회적인 것은 전통적인 해석학적 전통만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미학화됐다고 생각한다. 해석학은 결국 심층읽기인데, 포스트모던 상황에서는 표층과 심층의 이분법이 이전처럼 썩 잘 들어맞지 않는다. 심층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표층과 심층의 관계가 변증법적인 관계가 아닌 차연적 관계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예컨대 민문홍이 가장 중시하는 맥락적 읽기는, 텍스트의 의미 해석에서 맥락에 결정적인 권능을 부여한다. 여기에는 맥락이 텍스트에 선재하며, 그래서 텍스트의 의미를 지배해야 한다는 근본 가정이 깔려 있다. 문제는 텍스트와 맥락이 차연적 관계를 맺는 포스트모던 상황에서는 이러한 가정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학 지평 넓히는 방법론적 시도도 중요 


    나는 새롭게 출현중인 사회적인 것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사회학사에서 축출됐던 반계몽주의 전통을 적극적으로 되살려 사회학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것이 미학화됐다는 테제가 옳다면, 이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미학이 도입돼야 한다. 이는 상당히 도발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나는 그 동안 경험적 연구를 통해 이를 뒷받침하려고 노력해 왔다. 안타깝게도 민문홍의 서평에는 이러한 방법론적 시도에 대한 평가가 전혀 없다. 나는 또한 미학적 탐구가 지니는 윤리적 · 정치적 함의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핵심은 기존의 사회적인 것 안에서 표상될 수 없었던 미학적 타자들을 표상하는 문제이다. 시장사회, 국민국가, 가부장적 핵가족, 합리적 개인으로 표상될 수 없었던 미학적 타자들이 지금 얼마나 많이 출몰하고 있는가. 이들을 전통적인 자유민주주의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민문홍의 공동체주의는 과연 이에 대한 답으로 충분한가.

최종렬 계명대·사회학

미국 네바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학의 문화적 전환』, 『Postmodern American Sociology』 등의 저서가 있다. 문화사회학, 사회이론, 질적 방법론에 관심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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