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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적 숭고의 성공 또는 역설
포스트모던적 숭고의 성공 또는 역설
  •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 승인 2009.09.14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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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평]2세대 복합쇼핑몰의 코드

1989년 잠실 롯데월드, 2000년 삼성동 코엑스몰이 등장한 이후 복합쇼핑몰은 도시 삶의 일부가 됐다. 최근 부산 센텀시티, 서울 왕십리 엔터식스, 건대 스타시티, 일산 킨텍스몰, 문정동 가든파이브 등이 문을 열었거나 곧 열 예정이고, 영등포 타임스퀘어, 여의도 파크원, 판교역 알파돔시티 등의 등장도 예고돼 있다.

    복합쇼핑몰의 변모를 살펴보는 좋은 방법은 1세대 복합쇼핑몰이라 할 롯데월드와 코엑스몰을 2세대 복합쇼핑몰이라 할 스타시티, 가든파이브 등과 비교해보는 일일 것이다. 특히 강내희의 롯데월드론(1991), 송도영의 코엑스몰론(2004)은 그 좋은 준거가 된다. 우선 근래의 2세대 복합쇼핑몰은 1세대 복합쇼핑몰의 긍정적(!) 유산을 대부분 계승하고 있다. 지하철과의 연계는 필수적이다. 가령 킨텍스몰은 일산 대화역, 스타시티는 2호선 건대입구역, 가든파이브는 8호선 장지역과 연계돼 지하철역에서 곧장 출입이 가능하다. 

시물라크르가 된 자연의 이미지


    또한 2세대 복합쇼핑몰들은 다수의 복잡한 점포와 시설물로 가득한 공간에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 디즈니랜드식의 통제를 도입했던 코엑스몰의 교훈(송도영)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가령 물의 흐름이라는 전체 테마에 입각해 8개의 길, 곧 수풀길, 호수길, 폭포길, 계곡길, 열대길 등을 설정하고 전체 공간을 디자인했던 코엑스몰의 사례는 Life, Works, Tool, Express, Dream으로 명명된 5개의 정원(Garden)으로 구획된 가든 파이브의 공간 디자인으로 이어졌다. 이들에게 친숙한 자연의 이미지(폭포나 정원)는 원본을 대신하는 시뮬라크르로 기능한다. 더불어 강내희가 자신의 세심한 관찰을 토대로 ‘자족하는 세계’로 명명했던 현상은 지금 2세대 복합쇼핑몰의 구호가 됐다. ‘세상의 모든 것과 만나는 문화특구’(가든파이브)라든가 ‘국내 최초의 진정한 One-stop Life 쇼핑공간’(스타시티)이라는 광고문구는 이곳이 실제 상품만이 아니라 문화, 여유, 낭만 등 일상의 모든 것을 소비, 향유할 수 공간이라는 것을 보다 노골적으로 표명한다. 

가든 파이브 라이프 센트럴 광장의 야경(왼쪽)과 스타시티의 내부 모습(아래쪽). 2세대 복합쇼핑몰이 더 거대해진 스펙터클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 과연 1세대복합쇼핑몰과 다른 측면은 무엇일까.

 


    하지만 2세대 복합쇼핑몰은 1세대의 유산을 그저 단순히 계승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2세대는 1세대의 장점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전략들을 개발해 그 가능성을 더욱 극대화한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규모의 양적 확대다. 규모의 확대는 지하로부터 지상으로의 이동과 무관치 않다. 즉 새로운 복합쇼핑몰 등은 지하의 낮고 폐쇄적인 공간을 주 무대로 삼던 과거의 복합쇼핑몰과는 달리 지상의 거대한 건물을 자신의 주 무대로 삼는다. 더불어 빈 공간(void)의 적극적인 활용이 가능해졌다. 동시에 복합쇼핑몰에는 자연스럽게 공적 공간으로서의 성격이 부여된다. 하지만 공적 공간, 개방된 광장이라는 이미지는 ‘폭포’니 ‘정원’이니 하는 명칭과 마찬가지로 시뮬라크르에 지나지 않는다. 몰의 경영진은 이 공간에서 사람들의 행위를 통제할 권한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는 정치적 발언이나 시민단체의 자유로운 활동은 가능하지 않다. 사회기호학자 마크 고티너(Mark Gottdiener)의 말대로 복합쇼핑몰이 제공한다는 공공성과 시민성은 허깨비에 지나지 않으며, 이점에서 복합쇼핑몰은 유사 공적 공간일 뿐이다.

    한편 건축자재로 유리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스타시티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서 유리로 만들어진 벽과 통로는 안과 밖을 연결해공간의 규모를 무한대로 확장시킨다. 여기에 외부의 빛이 공간에 침투해 공간을 빛나게 한다. 세련된 철골 구조와 유리벽은 ‘새로움’의 이미지를 고조시킨다. 말 그대로 ‘별처럼 오랫동안 꿈꿔온 이상도시’의 이미지가 조성된다. 그래서 스타시티는 근대 건축가 르 코르뷔제가 꿈꾼 영적 성소로서의 도시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물론 이 공간은 전혀 영적이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 이 새로운 공간은 이른바 신자유주의시대 소비의 성소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더불어 건축에서 유리의 광범위한 사용은 시야를 개방해 예전에 송도영이 코엑스몰 비판에서 제기했던 복합쇼핑몰의 배타성, 사회적 단절성 증대라는 문제를 은폐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물론 여러 장치를 통한 내부 공간의 확대는 외부의 실재하는 거리, 공적 공간과의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즉 이 공간들은 외부와 차단돼 폐쇄적인 독자적 세계, 도시를 구축한다. 예컨대 서구 중세의 성채를 연상시키는 무미건조한 가든파이브 건물의 외벽은 가능한 모든 행동을 내부로 향하게 한다. 이렇게 내부로 향하는 행동은 물론 One-stop Life의 이미지와 연결된 소비활성화와 직결될 것이다. 2세대 복합쇼핑몰은 내부 디자인에 있어서도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세심하게 소비 창출에 주력하고 있다. 예컨대 스타시티는 대형마트와 영화관을 한 끝에, 백화점을 다른 끝에 배치하고 이 양자 사이에 다수의 중소형 점포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방문객들의 소비를 제어한다. 또한 2세대 복합쇼핑몰들은 통로 곳곳에 통행을 방해하는 시설물을 배치해 방문객들의 시선이 고르게 퍼질 수 있게 한다. 곳곳에 배치된 벤치, 지그재그형 점포 레이아웃, 텅빈 벽면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장치들 때문에 또는 개개 점포들이 발하는 현란한 장식 때문에 방문객들은 종종 길을 잃게 된다. 예전에 프레드릭 제임슨은 이에 맞서 건축가 케빈 린치를 인용해 인식적 지도를 만들 것을 요청한 바 있지만 여기서 그의 기대는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오늘날 로메디 파시니를 따르는 케빈 린치의 직계들은 복합쇼핑몰에서의 효과적인 소비창출을 위한 효율적인 길찾기(wayfinding)를 제안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더 거대해진 스펙터클과 벤야민의 예언


    그러니까 최근 등장한 2세대 복합쇼핑몰-스펙터클은 가늠하기 어려운 거대한 크기로 방문객들을 압도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공간은 이른바 포스트모던적 숭고가 가장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공간일 것이다. 가늠하기 어려운 크기에 사람들은 현혹된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발터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인용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실제로 현실화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파리 사람들은 새로운 갤러리의 맛을 알게 되면서 오래된 거리에는 더 이상 발길을 돌리고 싶어하지 않게 됐다. 오래된 거리는 개에게나 어울리는 곳이라고 말하고들 있다.”

    이러한 상황에 비판적인 논자들은 극단적인 혐오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과거 강내희는 롯데월드를 벗어나면 그 안에서 느끼던 재미와는 아주 다른 기분, 특히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고 토로한 바 있다. 하지만 그 밖은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2세대 복합쇼핑몰은 외부도 관리한다. 최근 가든파이브는 총면적 5만 7100㎡에 달하는 부지에 코스모스와 해바라기 꽃밭을 조성하고 이를 일반시민에게 한 달간 무료로 개방했다.  박희수 SH공사 사업2본부장은 이 꽃밭이 “어린이들에게 도심  속 자연 체험 장소로, 연인과 어른들에게는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피력한다. 우리는 지금 도심의 갑갑한 삶을 피해, 특히 해방감을 맛보기 위해 가든파이브에 간다.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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