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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중모색의 시기, 비판 정신은 매서움 또는 근성을 회복하고 있는가
암중모색의 시기, 비판 정신은 매서움 또는 근성을 회복하고 있는가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9.09.14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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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리뷰] 가을호들의 긴장감

    안개가 사방에 짙게 내린 것도 아닌데, 視界가 흐리다. 또다시 암중모색의 시기이다. 한국사회의 나아갈 좌표를 모색하는 이 시절의 계간지들이 팽팽한 긴장감을 동반하고 있다. 성찰과 지혜의 모색이라는 말이 값싸게 나부끼지만 않는다면, 이 팽팽한 긴장감은 연대의 둑을 만들지도 모른다. 그런 기대감을 조심스럽게 내걸어본다.  

   <문화과학> 59호의 테마는 ‘오늘의 문화정치’다. 이것이 그물에 담을 수 있는 논의들은 감정, 텍스트, 몸, 학문, 문화자본, 인터넷 등 다양한 주제 영역과 차원에서 일어나는 주체 형성과 자본주의 극복 문제, 비자본주의적인 몸만들기의 과제, 새로운 학문 공동체를 통한 문화정치의 실천, 해킹 등이다. 심광현 한예종 교수(미학)의 「감정의 정치학」과 노명우 아주대 교수(사회학)의 「몸의 지배양식과 개인화의 역설」이 흥미롭게 읽힌다. 심 교수는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기 위해 횡단과 확산에 의존한다. ‘새로운 문화정치적 프레임’을 획득하기 위한 그의 편력은 라이히, 스피노자, 들뢰즈와 가타리 그리고 아마지오, 푸코, 랑시에르, 레이몬드 윌리엄즈를 따라간다. 이들의 길을 따라 그가 그려내고자 혹은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은 “자유-평등-박애의 이념에 부합되는 능동적-진보적 감정으로 충만해 자율적으로 행동하며, 상호 연대하는 주체”다. 한편, 몸의 문화정치는 일종의 해방의 기획인데, 이러한 실천이 1990년 이후 ‘실패’에 봉착했기 때문에 새로운 몸의 문화정치적 가능성을 모색하기가 만만치 않다. 노 교수는 1990년대 이후 발생한 일련의 아이러니를 ‘개인화의 역설’이라 명명하면서, 이러한 개인화의 역설에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대망했다.

    <역사비평> 88호의 특집은 ‘위기의 남북관계와 10대 현안’이다. 여름호에 이어 마련된 기획 ‘한미관계, 엇갈린 60년 Ⅱ’도 꾸준하게 현대사를 훑고 있다. 특집은 현 시기 남북관계를 ‘퇴행’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퇴행의 원인을 진단하고 남북관계의 평화적 재구축을 위해 짚어보아야 할 10대 현안을 정리한 뒤 대안을 모색하는 형태다. 박태균 서울대 교수(한국현대사)의 글 「남북관계의 탈근대적 인식-남북관계의 동학에 대한 새로운 제안」, 이근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의 글 「남북관계와 미국의 동북아정책-이론적 검토 및 실천적 제안」 둘 다 ‘제안’을 담았다.

‘북한 흡수통일론’ 내세우는 건 위험하다


    박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남북관계는 장기적인 면에서 개선되는 듯하면서도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는 퇴행하는 모습을 반복해 왔다. 국제질서가 결정적인 요인일 수도 있지만, 남북 당사자의 상호인식이 심각하게 충돌하는 부분도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리를 중심으로 남북간 관계개선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 “양자의 인식을 바꾸기보다는 정치적·민족적 의미를 뛰어넘는 경제적·실용적 접근만이 현재의 실타래를 푸는 유일한 방안이 될 수밖에 없다.”  이근 교수의 해법도 ‘실리’를 앞에 내세웠다. 지금 시점에서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면서 흡수통일론을 내세우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핵 없는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으로 향하는 최후의 열쇠는 ‘남북한 당사자’들이 쥐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실천적 대안으로 ‘逆민주평화론’을 제기했다. 그의 결론을 보자. “북핵 및 북한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다시 미국·일본·한국이 포용정책으로 돌아와야 하며, 북한에 대한 포용이라는 독립변수를 남한을 포함한 주변 강대국이 모두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증가시켜 종속변수인 북한의 개혁·개방을 증가시켜야 한다.”

    현실의 ‘깨진 거울’인 문학을 통해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또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특집 ‘세계체제의 지각변동과 한국문학’이란  큰 틀을 마련한 <오늘의 문예비평>74호의 고민이 이런 질문을 암묵적으로 던지고 있다. “한국이라는 일국 단위의 인식이 가진 논리적 협소함을 자본주의의 큰 흐름 속에서 설명함으로써 국내의 여러 문제들을 국제적인 시야에 놓고 살피는 작업”의 중요성을 언급했을 때, 이런 언설의 核에 해당하는 글은 차동호 씨의 「근대적 시각주의를 넘어서」와 이에 연결된 파스칼 카사노바의 글 「세계로서의 문학」일 것이다. 차동호의 글이 의심을 던지는 곳은 우리문단의 노벨상 욕망이다. 이 욕망, 즉 세계적인 보편적 맥락에서 인정투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문학의 온갖 노력들이 사실은 서구의 인정과 서구문학적 중심부로의 진입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가 프랑스 비교문학자 파스칼 카사노바의 ‘세계문학론’(『문학의 세계공화국(The World Republic of Letters)』)에 혐의를 던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차동호는 카사노바를 소개하는 동시에 전복하고자 한다. 그녀의 세계문학론의 골자를 드러내면서, 그녀의 어법으로 틈을 찢으면서 세계문학론의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한다. 일독할만한 글들이다.

    올해는 다윈 탄생 200주년이면서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 해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진보’라는 이름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진보평론> 41호가 ‘다윈의 진화론과 진보의 패러다임’을 들고 나온 것은 그래서 어색해 보이진 않는다.  최종덕(상지대), 홍성욱(서울대), 강신익(인제대), 김시천(인제대) 교수와 이정희 제3시대 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원의 글이 실렸지만, 필자들 몇몇은 이미 다른 지면에서 같은 문제로 고민을 피력한 바 있어 오히려 눈길이 가는 글은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대표의 「비정규법을 둘러싼 혼란, 무엇이 진실인가」와 반론으로 실린 니시카와 나가오(西川長夫)의 「이득재씨에게 보내는 편지」다. 김혜진 대표의 글은 권리입법을 강조하고 있다. “기간제 특별법 형태를 없애고 근로기준법 안에 계약직의 사용사유 제한을 하는 것”이 그 내용이다. 니시카와 나가오의 반론은 오래전 이득재 대구가톨릭대 교수(러시아문학)가 그의 책 『국민이라는 괴물』을 서평한 데 대한 몇가지 문제점을 현해탄 건너 주고받았다는 점에서도 흥미롭지만, 실은 서평의 핵심이랄 수 있는 ‘국민=괴물’을 떠받치는 이론적 지주에 관한 視差 부분이 더 흥미롭다.

    <창작과비평> 145호의 특집은 대안 찾기다. ‘한국사회, 대안은 있다’고 특집을 내세웠다. 좌담 ‘이런 사회 이런 정치를 원한다’(김대호, 백승헌, 주대환, 김종엽)와 세편의 글(이일영, 노대명, 김미현)이 수록됐다. 이들의 글은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삶의 식민화를 극복하고 ‘살림과 공생’이라는 가치를 생활현장에서 구현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특이한 점은 <창작과비평>이 옛 모습, 좀 더 낮은 곳에서, 그리고 좀 더 집요하게 물고 들어가는 근성을 어느정도 회복해내려고 애쓰는 듯하다는 것이다. 라디카 데싸이 캐나다 마니토바대 교수(정치학)의 글 「베네딕트 앤더슨이 놓친 것과 얻은 것-『상상의 공동체』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민족주의의 유효성을 값지게 재론했다. 데싸이 교수는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그 제목이었다”고 비판하면서 그의 논리가 언어나 종족 또는 다른 원초적 요인들에 의존해 민족주의를 설명함으로써 다양한 민족주의를 이론화할 수 있는 길을 가로막아왔음을 환기한 뒤 보다 더 훌륭하게 민족주의적 변화 및 혁명적 변화의 역학관계를 조명해온 학문적 전통으로 눈 돌릴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외 서동욱 서강대 교수(철학)의 「무엇이 외국이론 수용의 문제인가」도 진지한 논쟁이 드문 이즈음 논단에 활기를 불어넣을 글로 보인다. 

    <황해문화> 64호는 특집 ‘박탈과 낙오의 시대에 살아남기’를 마련했다. 빈곤과 계층이동(탈락)을 짚고 공생의 길에 대해 물었는데, 시의적절하다. 홍경준 성균관대 교수(사회복지학)의 「근로빈곤, 그 생성과 확대의 사회경제적 메커니즘」은 일자리가 불안정하다는 진단에서 더 나아가 근로빈곤층이 확대되는 이유와 기존 복지체계의 성격을 진단한 뒤, 문제의 심각성이 ‘일관된 발전전략의 부재’에 있음을 확인했다. 그의 결론은 고용과 분배의 접점을 모색하는 데 맞춰져 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치적 수사에 몰두하거나 추상적인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고용-분배의 선순환을 가능케 하는 경제사회 발전전략을 정합성을 가진 일련의 정책 패키지를 중심으로 진지하게 모색하는 일이다.”

 “진보진영, 더 냉정한 성찰 필요”
    권두언 ‘진보도 단순한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김진석 인하대 교수(철학)의 글을 불편하게 읽을 논자들이 꽤 있을 것 같다. 논쟁의 불씨도 안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퇴행적 행태를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그걸 가지고 ‘파시즘’ 운운하기에는 뭐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는 지적과 진보진영 사람들의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비판 대목은 여운을 남긴다. 구체적 대안 창출에 무게를 실었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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