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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에서 들은 家訓 이야기
안동에서 들은 家訓 이야기
  • 교수신문
  • 승인 2009.07.0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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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선생님을 모시고 同學들과 함께 안동에 간 적이 있다. 목적지에 도착한 동학 일행은 맨 먼저 도산서원을 찾아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퇴계 이황의 학문과 한국의 유학사상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어서 주변의 고택 여기저기도 둘러보며 안동이라는 곳이 담아내고 있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선비정신에 관해 음미할 기회를 가졌다. 그러다가 동학 일행은 안내를 맡은 어느 한 분의 배려로 퇴계 이황의 후손의 댁을 방문하게 됐고 거기에서 한 가지 좋은 이야기를 듣게 됐다.

퇴계 이황의 후손의 댁에서 들은 좋은 이야기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가훈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후손은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집안의 가훈을 들려주었다. 여기서는 그 가운데 가장 인상에 남는 세 가지에 관해서만 말해 보기로 하겠다. 그 세 가지 가훈은 첫째는 春澤이요, 둘째는 虛施이며, 셋째는 種善이다. 이것들은 모두 하나같이 요즘 가정교육의 방침과는 거리가 먼 것이어서 필자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먼저 春澤은 글자 그대로 ‘봄볕의 혜택’을 의미한다. 봄볕은 길가의 풀 한 포기가 됐든, 큰 나무가 됐든 사사물물에 차별을 두지 않고 비추어서 생명을 북돋운다. 봄볕과 같은 사람이 돼서 자신이 가진 능력이 모든 사람을 이롭게 만드는 데 쓰이도록 해야 하며, 봄볕과 같은 사람이 돼서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 차별을 두지 말라는 것이 이야기의 골자였다. 요사이의 형편은 어떠한가. 공부 잘 해야 출세한다고 가르치고, ‘자녀의 친구 맺기’에 부모가 직접 앞장서기도 하는 것이 요즘의 세태가 아닌가. 멀리 갈 것도 없이, 필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도대체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가, 또한 어떤 기준으로 친구를 사귀라고 말하고 있는가. 나에게 기준이 있기나 한 것인가. 은연중에, 개인이 가진 능력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서 발휘돼야 하며,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차별을 두어야 한다고 가르쳐 온 것이 아닌가.

虛施는 더욱 필자의 가슴을 뜨끔하게 하는 가훈이었다. 허시를 설명하면서 그 분은 다음과 같이 운을 떼었다. “요새 사람들은 그냥 베풀 줄을 모릅니다. 자신이 하나를 주면 반드시 그 대가로 다른 하나를 받기를 바라지요. …… 남에게 베풀 때에는 빈 마음으로 베풀어야 합니다. 이 점은 아이 때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그 순간 나는 내 아이에게 이른바 ‘주고 받기식 사고방식’, 즉 ‘주고서도 받지 못하는 것은 모자라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라는 사고방식을 가르쳐 온 것이 아닌가를 자문해 보았다. 생각도 잠시, 그 분의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어 보니, 남에게 베풀 때에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어야 하며, 친구 사이에서는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 분의 이야기를 아이 수준에서 말하자면, 친구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면서 ‘내가 아이스크림 하나 사주었으니, 너도 나에게 반드시 하나를 사주어야 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올바른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점은 비단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리라. 허시를 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은 그것을 행하는 어른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種善에 관한 그 분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필자의 얼굴이 저절로 붉어질 정도였다. 그 분의 이야기에 따르면, 요새 부모들은 행여 자신의 아이가 친구에게 매를 맞고 들어오거나 부당한 취급을 받기라도 하면 즉각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 아이의 손을 잡고 상대방 아이의 집에 찾아가 어른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이며 조금도 참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분의 이야기에서 백미에 해당하는 것은 때리고 들어오는 것보다 맞고 들어오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것이라는 대목이다. 그것이 종선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종선은 글자 그대로 ‘선을 심는다’는 뜻이다. 선의 싹을 심으면, 그 싹은 먼 훗날 자라서 선한 사람이라는 큰 나무가 된다는 뜻이리라. 자신의 마음속에든,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든 선을 심는 행위야말로 가장 고귀하고도 어려운 일이 아닌가.

부모라면 누구나 자신의 아이가 남에게 뒤처지지 않고 남보다 뛰어나기를 바랄 것이다. 필자를 포함해 요즘의 부모들은 예전의 부모들에 비해 이러한 성향을 훨씬 더 노골적으로, 그리고 정정당당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무엇이 아이들을 위해서 진정으로 이롭고 올바른 것인가는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안동의 그 가훈은, 그것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던 간에, 우리로 하여금 현대의 가정교육의 세태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만약 요즘 아이들에게 그 가훈 속에 담겨 있는 것과 같은 심성의 결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퇴계 이황이 보여준 유학의 가르침이나 선비정신을 소홀히 한 현대 교육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안동의 그 분의 집안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가훈은 분명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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