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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이주가사노동자들은 왜 그토록 유사한 삶을 경험하는가
여성 이주가사노동자들은 왜 그토록 유사한 삶을 경험하는가
  • 교수신문
  • 승인 2009.06.2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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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하인들』라셀 살라자르 파레냐스 저 | 문현아 역 | 여성문화이론연구소 | 2009 | 456쪽

『세계화의 하인들』라셀 살라자르 파레냐스 저 | 문현아 역 | 여성문화이론연구소 | 2009 | 456쪽

“비교적 최근 들어 한국사회는 ‘다문화’ 사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 책이 담아내는 내용들이 다방면에서 다차원적으로 접근되는 이주여성 쟁점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틀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번역을 하게 됐다. 세계화와 더불어, 특히 신자유주의의 맹공으로 노동자 여성, 가난한 여성들은 점점 더 힘겨운 삶을 버텨야만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그 속에서 가부장제라는 제도의 압박 역시 쉽게 완화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서 오늘을 일구는 여성들의 결단과 실천, 그리고 미약한 소수이나마 이를 지지하는 가족과 주변의 남성들의 노력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 속에서 저항의 지점을 어떻게 연결해 세상의 변혁으로 이끌어갈지는 현실을 살아가는, 그것도 힘겹게 살아가는 주체들의 움직임에서 시작될 것이다.”
'역자후기' 중에서


미국 브라운대 미국문명과 사회학과에 재직 중인 라셀 살라자르 파레냐스(Rhacel Salazar Parren~nas)교수의 『세계화의 하인들(Servants of Globalization)』이 문현아 박사에 의해 번역 출간됐다. 저자인 파레냐스는 3년전 한국에도 방문한 적이 있다.

국제여성영화제 행사기간에 이주여성노동자 주제로 마련한 국제심포지움에 참석해 필리핀 여성이주가사노동자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했던, 여성이주노동에 관심이 있는 한국 연구자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그녀는 여성이주가사노동 연구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대표적인 젊은 학자이다. 번역자인 문현아 박사 역시 현재 여성 이주가사노동에 관심을 갖고 국제 활동을 하는 학자라는 점에서 이 책의 국내번역출간은 더욱 의미가 있다.

    필리핀계 여성이기도 한 퍼레냐스는 미국 등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필리핀 여성 이주가사노동자의 현실을 자신의 연구 현장으로 삼고 있다. 이 책에서는 로스엔젤레스와 로마에서 일하는 필리핀 여성 이주가사노동자의 경험을 통해 그들의 주체 형성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그녀가 이 두 곳을 택한 이유는 필리핀에 교회제도를 통해 문화지배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로마와, 경제 관계를 통해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이라는 두 곳에 가사노동자들로 들어간 여성들의 주체 경험이 어떻게 다른가에 주목하기 위한 의도였다. 이 책의 출간 이후에도 그녀는 필리핀에 남아있는 이주여성들의 자녀들을 심층면접조사하는 등 글로벌 경제 구조 속에서 세계의 재생산 노동을 맡아하는 위치에 있는 여성 가사이주노동자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며 연구물들을 발표 출간하고 있다. 

    20세기 들어와 일어나고 있는 이주 노동의 그림은 이전과 상당히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변화의 두드러진 점 하나는 여성 이주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여성 이주는 남편이나 가족을 동반하지 않은 여성이 취업을 위해 단독 이주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고, 남성 대 여성의 이주비율 역시 48.6%(2000년 통계)에 이르고 있다. 학자들은 이 같은 21세기 이주의 특징을 ‘이주의 여성화’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주의 여성화를 주도하는 이주여성노동자의 대부분이 일하는 곳은 간호, 가사도우미, 간병인 등으로 가사노동영역에 집중되고 있다. 후기산업자본주의 시장에서 국가 간 경제 격차가 커지면서, 경제부국의 생산노동인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재생산 노동을 제3세계 경제빈곤국 여성들이 하는 식으로 생산, 재생산노동의 국제적 분업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제3세계 여성들이 세계화 과정의  저임금 재생산 노동을 맡아하는 ‘세계화의 하녀’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파레냐스는 필리핀 이주 가사노동자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 현재필리핀에서 내보낸 이주인구는 대략 650만명으로 추산한다. 1990년대 이후 해외취업 필리핀 인구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그리고 이들 여성 중 2/3가 가사서비스 부분에 취업하고 있다. 저자는 가사노동을 단순히 직업적 쟁점으로만 접근하지는 않는다. 민족 국가, 가족, 노동시장, 이주민공동체라는 이주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4가지 측면을 통해 이들 필리핀 여성이주가사노동자들의 경험을 살펴보고 있다. 그녀는 이탈리아와 미국의 두 도시에서의 필리핀 이주가사노동 여성의 이주노동경험이 다를 것이라는 애초의 예상 위에 진행했던 연구틀을 이들 여성들을 만나감에 따라 변경해야 했다고 말하고 있다. 다른 문화, 사회에 속해 일하고 있지만 이들 여성 이주가사노동자들은 삶의 경험은 놀랍도록 유사했기 때문이다. 왜 이들의 삶의 경험은 그처럼 유사한가.

    저자는 그 대답을 후기산업자본주의 경제구조에서의 생산, 재생산노동의 국제적 분업의 효과라는 데서 찾고 있다. 동시에 거시적인 세계화 과정의 특징과 함께 이 국제적 노동 분업 구조를 설명한다. 거시적 차원에서 세계화는 “한편으로는 ‘경제의 탈민족주의화’와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의 재민족주의화’라는 양축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화의 핵심인 경제의 ‘탈민족주의화’는 이주민의 노동을 요청하지만, 이와 달리 정치의 ‘재민족주의화’는 이들 이주노동자들의 재생산비용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에 이들의 노동이 기여한 공헌에 따라 구성원 자격을 부여하는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이들 이주노동자들은 한편으로는 필요노동자로 인정을 받으면서도 이들을 받아들인 민족국가의 시민으로는 거부당하는 모순적인 통합을 경험하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여성 가사이주노동자들은 공통적으로 준-시민으로서 이주민의 지위, 가족별거의 고통, 이주민 공동체에서 느끼는 무소속감이 증대된다는 것이다. 파레냐스는 이같은 경험 내용의 유사성을 한 마디로 ‘탈구화된 위치(dislocation)’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이들 여성 이주가사노동자들을 무력하고 수동적인 존재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 여성들은 고용주들이 자신에 사용하는 통제의 메카니즘을 꿰뚫어 보고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하고 협상할 줄도 아는, 자신의 행위성을 발휘하는 존재라는 미시적 차원 역시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행위성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임금을 올리게 한다든지 등 불평등 체계의 직접적 결과를 통제할 수 있을 뿐, 보다 거대한 불평등 체계, 즉 자신을 복종적 위치에 있게 만드는 세계화의 거시 구조를 비판적으로 보거나 전복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는 점 역시 그녀는 지나치지 않는다.

    최근 국제결혼으로 유입한 제3세계 출신 여성들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사회에도 다문화 사회라는 주제로 일고 있지만, 여성 이주가사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학문적 관심은 상대적으로 없는 편이다. 이들에 대한 국내 경험 연구는 시작 단계에 있지만, 이 책에서 보여진 탈구화 위치 경험이 국내 여성 이주가사노동자들에게서도 재현될 것이라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이 책의 출간은 앞으로 국내 여성 이주가사노동자의 현실에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여성 이주가사노동자들을 위한 국내 제도들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  

허라금 이화여대·여성학

서강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한국철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Politics of meaning: Care work and migrant women」, 『차이와 갈등에 대한 철학적 성찰』등의 논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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