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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교양교육 무게실은 ‘실험’은 일과성이었을까
기초·교양교육 무게실은 ‘실험’은 일과성이었을까
  • 최성욱 기자
  • 승인 2009.06.08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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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학부대학 10년, 교양교육 어디로 가나

열 돌을 맞은 연세대 학부대학의 ‘실험’이 학과제라는 틀 안에서  어떻게 이어질지 주목된다. 사진은 지난 4일, 학부대학 10주년 기념 학술대회 행사장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모습.

사진=최성욱 기자

연세대 학부대학(학장 신의순·경제학부)은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교육부의 모집단위 광역화가 시행된 때가 1998년. 이듬해 12월 연세대는 국내 최초로 전문학사지도교수 15명을 임용하고 2000년 3월, 4개 계열(인문, 사회, 이학, 공학)에서 학부대학생 3천809명을 선발했다. 이때부터 연세대는 신입생 전체를 한 소속으로 묶어 통합 관리한 최초의 ‘학부제 모델’로 이목을 끌었다.

6년 뒤 출범한 성균관대 학부대학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학부제를 1년 과정으로 통합 ·운영하는 사례는 드물다. 서울대는 학내 구성원들의 합의도출 과정에서 번번이 어려움에 부딪혔고, 경희대(수원), 한양대(안산) 등에서 개설한 학부대학은 ‘레지덴셜 칼리지’(생활밀착형 교육)에 가깝다.

교육부가 BK21사업 참여 조건(모집단위 광역화, 대학원 중심대학, 학부정원 축소 등)으로 내걸었던 ‘학부제’는 취지가 무색하게도 ‘학과 분류작업’에 매몰되면서 대학 교육을 위기에 빠뜨렸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급기야 지난해 4월 교육과학기술부는 학부제 관련규정을 없애고 대학의 자율에 맡겨 놓은 상황이다.

학부대학 10년, 무엇을 남겼나

연세대 학부대학은 올해로 열 돌을 맞았다. 지난 4일 동문회관에서 학부대학 1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학부제 11년, 학부대학 10년’에는 비단 연세대뿐만 아니라 전체 대학의 고민이 스며있었다.

연세대는 학부대학을 운영하면서 전공교육과 연계할 수 있는 교양교육체계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중핵교육과정’을 도입해 교과과정을 특성화했다. 특히 1학년 학생지도와 기초·교양교육을 학부대학에서 전담해 고교 교과과정이나 입시제도 등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글쓰기나 영어처럼 여러 강좌가 개설되는 교과목은 과목별 담당 코디네이터를 둬 교과과정을 표준화하고, 강의 전임교수를 기초과목에 집중 배치했다. 특별초빙교수를 활용해 학제간 성격을 띤 과목에 배치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학부대학과 단과대가 공동으로 학사지도에 나서는 ‘게이트웨이 투 칼리지’프로그램이나 맞춤식 학사지도, 학생 자문단  등은 신입생들이 기초교양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바탕이었다. 연세대는 학생들이 기초·교양교육에 할애하는 주당시간이 평균 29시간, 과목당 4.7시간(2007년 2학기 기준)으로 향상됐다고 자평했다.

10년의 세월만큼 연세대 학부대학이 정비해야할 과제도 만만찮다.
우선 글쓰기, 영어 등 기초 과목을 1~2학년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교육시킬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 연세대 학부대학에 따르면 “법과대학의 경우 고시 준비로 인해 기초 교과목 수강을 뒤로 미루는 학생들이 속출하고 있다. 1학년 교육 부실은 물론 전체 교과과정 편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제적 교육 프로그램 개발, 전문학사지도제도 전 학년 확산, 외국인 학생 통합적 학사지도 체계 마련 등 짐 지고 가야할 향후 10년의 무게는 작지 않다.

연세대 학부대학은 탄생 10년을 맞아 새로운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2010학년도 수시모집 정원부터 시행될 ‘학과제 모집’ 때문이다. 연세대는 기초·교양교육에서 대학 교육의 해법을 찾으면서도 올해 전면 학과제로 전환할 예정이다. 1995년 교육법 시행령으로 기초·교양교육의 재량권이 대학에 이관되면서 전공기초과목이 교양교육을 대신하거나 교양교육 자체를 축소하는 등 기초·교양교육은 부침을 겪은 바 있다. 이 때문에 연세대가 기초·교양교육에서 한 발 물러나는 것은 아닌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날 ‘학부대학, 단발성 실험인가, 장기적 포석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발표에 나선 손동현 성균관대 학부대학장(철학과)은 “학과제 안에서 학부대학이 지향하는 범용성 있는 교육을 해야 하는데, 사실 잘 안 보인다. 연세대는 앞으로 더욱 치밀하고 유연한 교육과정안과 정책을 수립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세대 학부대학도 『학부대학 10년사』에서 밝혔듯, “전문대학원 체제를 표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학과제로 회귀하는 모순적 체제로는 교육의 파편화, 자유 기초·교양교육의 약화 등을 초래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반면 신의순 학장은 “교육개발지원센터의 기능도 일부 맡는 등 학부대학의 기능을 보다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결정되지 않은 것은 ‘학생 소속을 학과별로 할 것이냐’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학과제 전환의 파고 넘을까

1970년대 중후반, ‘고등교육에 관한 장기 종합계획안’에 따라 전국 40여개 대학에서 계열별로 학생을 모집했지만 인기학과 쏠림 현상 등의 문제로 1975년, 1976년 서울대, 연세대 등에서 잇따라 교양학부를 폐지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대학은 1980년대 초부터 학과제로 대거 선회했다. 이후 대학교육의 폐쇄성과 경직성, 학문 분과주의 심화 등 학과제의 한계점이 드러나자 10여년 후 (1995년 5·31교육개혁안 등에서) 학부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 됐다. 그리고 지금, 30년 전과 비슷한 이유로 지난해 다시 학과제의 문이 열렸다.

이날 ‘자유교육과 전공교육의 관계’를 발표한 강명구 서울대 기초교육원장(언론정보학과)은 현행 기초·교양교육과 전공교육의 학년별 분화(1, 2학년 기초·교양교육/3, 4학년 전공교육)를 지적했다.
학과제 전환에 대해서도 강 원장은 “전문직업교육이 기초·교양교육과 배치되지 않는다. 글쓰기, 과학기술과 생명윤리의 융합 등의 추세에서 학과제로는 기초·교양교육의 내실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연세대 교육제도개편위원회는 이달 말까지 학부대학의 역할과 학과제에서 기초·교양교육을 내실화할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더구나 내년에 송도캠퍼스 개교도 맞물려 있어 대대적인 학사개편이 불가피하다.

최근 대학가에는 학문간 통섭을 강조하는 융·복합 연구와 교육이 부상하고 있다. 기초·교양교육과 학생들의 학사지도를 일임해 온 학부대학 실험은 융·복합 교육의 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듯했지만 올해부터는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연세대 학부대학 10년에 시선이 모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연세대 학부대학의 실험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밀려올 학과제 전환의 파고를 맞아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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