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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탈식민적 성찰성’ 제기한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
[인터뷰] ‘탈식민적 성찰성’ 제기한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
  • 권진욱 기자
  • 승인 2002.03.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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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헤게모니 벗어나는 동시에 제3의 시공간 창조해야”
‘탈식민주의 글쓰기’에 대한 관심과 논쟁을 촉발시킨 데 조한혜정 교수의 공헌을 놓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1992년에 간행된 그의 저서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읽기’(또하나의 문화 刊)는 이어 간행된 두 권에 책과 함께 우리 지식인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10년이 흐른 오늘날, 당시의 문제의식은 무엇이었고 또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들어봤다.

△탈식민담론에 관심을 갖게 된 이론적 또는 실천적 계기가 있다면 어떤 것이었습니까.

“페미니즘을 하면서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어떻게 보이고 들리는 존재가 될 것인지 고민해왔는데, 제주도와 서울의 관계, 미국과 나와의 관계 등을 보면서 남녀관계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된 겁니다. 외부 식민지만이 아니라 내부 식민의 문제까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탈식민문제를 다루는 방법론이 글읽기의 논의로 정리된 것은 교실에서부터였습니다. 인문사회과학 전공 학생들의 책읽기 현상을 보면서, 특히 이론만 좋아하는 성향, 자신의 일상과 현실을 읽어내는 성찰적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면, 실은 보고 싶지 않은 현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보면서 ‘소외된 언어를 쓰는 삶’에 대해 연구하게 됐습니다. 겉도는 말과 헛도는 삶의 문제였죠.”

△자생이론으로서 우리의 탈식민담론은 서구의 전통과는 어떤 점에서 다릅니까.

“탈식민은 구체적 역사성 속에서 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운동이 파농이나 사이드나 스피박의 경우, 서양에서 인정을 한 ‘세계적 담론’이 된 것뿐이지요. 방법론상으로 자세히 보면 우리의 탈식민담론이 그들이 추구하고 찾아낸 전략들과 크게 다를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탈식민담론 책들을 거의 읽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썼는데, 지금 보면 호미 바바니 제임슨이니 하는 사람들의 논의 속에 제가 고민한 것들이 많이 정리가 되어 있어서 때론 베낀 것처럼 보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베끼고 안베끼고가 여기서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실천이므로, 구체적·역사적 지형에서 어떤 실천 가능한 기획들이 나왔고, 그것이 삶의 지형을 변화시켰는지에 있을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탈식민을 위해서는 ‘다름’에 대한 강조가 더욱 부각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동질성을 복제해내지 않고 새로움을 탄생시킬 수 있을까 방법론을 찾아내고 실천해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탈식민적 성찰성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제안하고 싶은 연구방법이나 영역이 있다면.

“여전히 내용이나 주제가 아니라 방법론의 문제일 텐데, 일단 실천적·실험적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게는 1980년대와 1990년대 후반까지 ‘또하나의 문화’, 그리고 내 강의실이 그런 공간이었고, 지금은 ‘하자센터’가 그런 공간입니다.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생산적인 인문학 하기’ 프로젝트로 대학사회에서 다시 작업을 해보려고 준비중입니다. 탈식민을 누구와 함께 할 것인지 고민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전혀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청소년들과 작업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문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미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과 다른 나의 상충·만남 속에서 새 문법을 만들어낼 꺼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지요. 남녀간의 만남, 지역간 또는 자연환경과의 만남,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 이 모든 것이 실은 이론적이자 방법론적 문제이며 탈식민화의 과정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벗어날 수 있게 하는 만남이 중요하고 ‘경계넘기’를 하는 즐거움을 알아가야 합니다. 두 번째로 아시아 지역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국경을 넘나드는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어내는 작업 속에서 새로운 연구들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아시아의 ‘현장’을 적절하게 찾아내고 세계화와 지역화의 역학을 잘 뚫어보면서 틈새를 내야 합니다. 물론 아시아라는 것 역시 이미 있는 고정된 어떤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겠지요. 세번째로 번역, 통역, 언어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제게 탈식민의 작업은 서구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나는 것이면서 동시에 아주 새로운 제3의 시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해체와 재구성의 우선 순위를 따지는 작업은 무의미하며, 대립의 언어로 힘빼는 일은 특히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생산의 시기이고, 사실 생산할 시간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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