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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여재산 환원 여부에 촉각 … “정부 역할은 퇴출 경로 마련에 그쳐야”
잔여재산 환원 여부에 촉각 … “정부 역할은 퇴출 경로 마련에 그쳐야”
  • 권형진 기자
  • 승인 2009.05.25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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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사립대 퇴출, 쟁점과 전망

‘대학 자율’을 앞세우던 정부가 직접 부실 사립대 구조조정을 위한 ‘살생부’ 작성에 나서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주요 표적으로 떠오른 지방 사립대는 정부의 구조조정 방안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반 강제적인’추진방식에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대학  설립을 양산해 공급 과잉을 부른 정부 정책 실패는 따지지 않고 대학에만 책임을 전가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인을 해산할 때 남은 재산을 설립자에게 돌려줄지, 교직원 및 학생 처리는 어떻게 할지 등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정부의 부실 사립대 구조조정 방안이 어떻게 진행될지, 짚어야 할 과제들은 없는지 사립대 관계자들의 의견 등을 살펴봤다. 또 부실 대학 난립이 1996년 대학설립준칙주의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짚어봤다. 실제로 폐교조치가 내려진 광주예술대학과 아시아대의 사례를 통해 그 후유증도  진단했다.       


                        
정부가 부실 사립대 구조조정이란 칼을 빼들었지만 얼마나 성과를 낼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대학 자율’을 외치던 정부가 직접 나서 ‘살생부’를 작성하는 데 대한 반발이 생각보다 크다. 법인이 해산할 때 남은 재산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현실적 해법도 찾아야 한다.

 

‘학생 충원율’이 중요한 기준 될 듯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7일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대학선진화위원회(위원장 김태완 계명대)를 공식 발족시켰다. 대학선진화위원회는 지난 14일 2차 회의부터 부실 사립대 판정기준에 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6월까지 판정기준을 확정하고, 여기에 해당하는 사립대에 대해 현장 실태조사를 벌인 후 11월까지 부실 대학을 확정할 예정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7일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대학선진화위원회(위원장 김태완 계명대)를 공식 발족시켰다. 대학선진화위원회는 지난 14일 2차 회의부터 부실 사립대 판정기준에 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6월까지 판정기준을 확정하고, 여기에 해당하는 사립대에 대해 현장 실태조사를 벌인 후 11월까지 부실 대학을 확정할 예정이다.


부실 사립대는 교육여건과 재무지표 두 가지를 고려해 판정한다. 세부지표에는 신입생 충원율뿐 아니라 실제 등록률을 뜻하는 학생 충원율, 재정 상태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대학선진화위원회 관계자는 “국내 사립대는 등록금이 대학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사실상 학생 충원율이 중요한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현장 실태조사도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재단 비리 등이 포착되는 이른바 ‘문제 사학’이 우선 퇴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퇴출 경로 마련도 대학선진화위원회의 역할 중 하나다. 교과부는 폐교하거나 다른 대학에 통합되더라도 남는 재산을 설립자에게 돌려주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장학재단 등 공익법인으로 전환하는 데에 잔여재산을 출연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사회복지법인이나 의료법인 설립을 허용하는 것도 검토 대상이다. 교과부는 이와 별개로 과거 국·공립대 통폐합처럼 인수하는 대학에 인센티브를 지원하거나(4천억원) 통폐합에 필요한 자금을 융자해(2천억원) 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대학선진화위원회라는 자문기구를 내세우긴 했지만 사실상 교과부가 앞장서 부실 사립대 명단을 작성하는 모양새를 띠면서 현장의 반발이 거세다.
물론 교과부나 대학선진화위원회가 부실 사립대 명단을 공개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명단 공개가 해당 대학에는 곧바로 퇴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사립대 교수는 “교과부가 명단을 공개하지 않더라도 해당 대학과 비공개로 접촉해 퇴출 방안을 논의하다 외부에 명단이 유출되는 식으로 진행될 우려가 있다”며 “명단이 유출돼 망하게 된 대학들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사실상 정부 주도 퇴출에 대한 반발 커


교과부가 나서 추진하는 방식에 대해 정부 내에서도 비판 의견이 존재한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이영 한양대 교수는 “현 정부 방침은 ‘자율’과 ‘책무성’인데 사립대 구조조정과 관련해서는 지나치게 정부 개입적인 정책이 나오고 있다.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선택과 퇴출로 가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부가 부실 사립대 구조조정 과정에서 풀어야 할 가장 큰 난제는 ‘설립자에게 잔여재산을 돌려주는 것에 대한 타당성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잔여재산 처리 ‘묘수’ 못찾으면 좌초 가능성


이명박 정부에 앞서 부실 사립대 구조조정을 추진했던 참여정부도 바로 이 문제에 막혀 포기한 전례가 있다. 참여정부는 2004년 ‘대학구조개혁 방안’을 발표한 뒤 대학구조개혁특별법 제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2005년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거부하면서 발의조차 못 했다. 당시 교육위원회에서 보좌관으로 활동했던 한 민주당 관계자는 “당정 협의에서 잔여재산을 돌려주는 것은 학교법인을 사유재산으로 인정해 주는 꼴이 돼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 앞서 부실 사립대 구조조정을 추진했던 참여정부도 바로 이 문제에 막혀 포기한 전례가 있다. 참여정부는 2004년 ‘대학구조개혁 방안’을 발표한 뒤 대학구조개혁특별법 제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2005년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거부하면서 발의조차 못 했다. 당시 교육위원회에서 보좌관으로 활동했던 한 민주당 관계자는 “당정 협의에서 잔여재산을 돌려주는 것은 학교법인을 사유재산으로 인정해 주는 꼴이 돼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반면 송영식 한국사학법인연합회 사무총장은 “설립자나 종단에 남은 재산을 돌려줘 다른 곳에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장학재단 전환 등은 그런 경로만 만들어 놓고 남은 재산을 돌려주고 난 뒤 법인이 자체 판단해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초 대학 구조조정을 위한 ‘대학구조개혁특별법’ 제정을 추진한 적이 있는 김선동 한나라당 의원실 관계자는 “우리가 준비했던 특별법은 잔여재산 환원이 핵심이다. 자발적 퇴출을 위해서는 유인책이 필요하다”며 “교과부 안을 지켜본 뒤 다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할지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과부는 양쪽 다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잔여재산을 돌려주지 않을 경우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지만 그렇다고 적극 나서는 것도 부담스럽다. 교과부 한 직원은 “2004년 이후 서너 차례 관련 정책연구를 진행했지만 잔여재산을 돌려준다고 했을 때 누구에게 얼마를 줘야할지 산정기준을 산출하는 게 쉽지 않아 더 이상 진전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추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정책 책임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부실 사립대를 양산해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도입해 공급 과잉을 부른 정부의 정책 실패에 있는데 대학에만 책임을 떠넘기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이다.

박정원 상지대 교수는 “학령인구 감소는 10년 전에 이미 예측된 사실이다. 교과부가 책임을 분명하게 하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안 보였다”면서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학을 없애려고 할 게 아니라 수도권 대학들의 정원 외 모집을 없애는 등 오히려 지역대학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폐교보다 통폐합으로 대학 수 줄여야

완전 퇴출보다는 인수·합병을 유도해 대학 숫자를 줄이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영 한양대 교수는 “완전 퇴출보다는 합병을 유인해 주는 게 더 맞다고 본다”면서 “자발적인 사립대 구조조정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통합하겠다는 대학에 재정지원을 하거나, 토지를 용도 변경해 개발이익을 주되 수익용 기본재산으로만 사용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거용 상명대 교수(한국대학교육연구소장)은 “통폐합을 해서 좀 더 특색 있는 대학으로 키울 수 있는 방법도 있는데 정부가 없애는 것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정원 교수는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공립으로 전환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이 경우 교직원 처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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