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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되는 광시곡 … 바이러스보다 빈곤이 더 큰 문제
확산되는 광시곡 … 바이러스보다 빈곤이 더 큰 문제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9.05.11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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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신종 플루, 기우인가 재앙의 전주곡인가

영화 「우주전쟁」을 본 독자라면 그 결말에 다소 허무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일개 감기에 그 막강한 우주 침략자들이 순식간에 무력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인류도 그들과 동일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돼지 인플루엔자, SI, MI 등으로 불리던 신종 인플루엔자(이하 신종플루) 확산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모두 3명의 환자가 신종플루 확진 판결을 받았지만, 급격한 확산의 기미가 없고, 소강 상태에 접어든 멕시코 역시 일상 복귀 선언을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30대 여성 감염자가 추가로 사망하는 등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리처드 베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소장대행은 지난 6일 신종플루 경계수준을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에 해당하는 6단계로 격상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이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전 세계 감염자가 6일 현재 1천 893명이고, 사망자는 31명이며, 그 확산 속도가 늦춰지지 않고 있는 것에 따른 것이다.

인플루엔자의 인류 생존 위협, 처음이 아니다


이영순 서울대 교수(수의학)는 향후 전망에 대해 “과거에도 북미를 중심으로 여러 번 돼지 인플루엔자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의 신종플루가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또 북반구의 선진국은 위생 상태가 좋고, 여름이 다가오는 만큼 감염자가 얼마간 발생해도 사망자가 대폭 생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위생 상태가 열악하고, 겨울이 다가올 남반구의 아프리카나 남미에는 신종플루가 창궐하고 사망자가 대거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신종플루는 사실 전염력은 강하지만 치사율은 약하다. 그런데 일전에 유행한 조류독감은 전염력은 약하지만 치사율은 57%에 달했던 전력이 있다. 만일 신종플루가 아시아 빈국에서 조류독감 바이러스와 결합해 전염력과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로 거듭난다면 수백만 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며 염려를 나타냈다.


독감을 유발하는 유행성 인플루엔자는 얼핏 감기와 유사해 이들과 같은 치명적인 전염병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특정 인플루엔자의 독성과 전염력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그간 적지 않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바가 있다. 20세기 들어서 가장 위력적인 인플루엔자로는 이른바 스페인 독감으로 불리는 인플루엔자를 들 수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형의 변형인 H1N1 바이러스에 의한 이 독감은 1918년에서 1919년 사이에 2,500만~5,000만 명을 희생시켰고, 당시 한국에서도 무오년 독감이라는 이름으로 14만 명을 희생시킨 것으로 그 악명이 높다.

스페인 독감의 악몽은 20세기 말 되살아났는데, 바로 조류 독감 때문이다. 조류에게서 인플루엔자를 일으키는 H5N1형 인플루엔자가 인체에도 전염되면서 나타난 독감인데, 1997년 홍콩에서 6명을 사망하게 한 데 이어서, 2003~2004년에는 아시아 지역에서 모두 23명을 사망하게 했다. 그리고 사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의 약자인 사스는 변종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전염병이다. 2002년 홍콩에서 발생해 2003년 중순까지 발병자 8,454명, 사망자 792명을 낳으면서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바 있다.

새로운 인플루엔자의 잇단 출현은 20세기 들어서 가속화되고 있는 추세다. 여기에 조금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에이즈, 에볼라, 광우병까지 포함을 시킨다면 현대는 인류의 생존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질병이 대거 출현한 시기로 역사에 남을 만하다.

일부에선 이 같은 현상의 배후엔 자연과 균형을 깨뜨린 인간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아프리카 원시림을 파헤친 만행이 에이즈와 에볼라라는 괴물의 잠을 깨웠고, 가축에 대한 비윤리적 취급이 각종 인수공통 전염병을 야기했으며, 과도한 도시화, 집중화가 새로운 괴질을 양산할 조건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환경 보호론자들이 주축인 이들은 현대 문명 자체에 혐의를 두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일면적으로는 타당성이 있지만, 근시안적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현대 기술 문명 자체를 각종 질병의 원흉으로 여기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반론이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세르는 이런저런 신종 질병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현대를 사는 인간의 평균 수명 및 건강 상태는 역사상 가장 좋다”면서 현대 기술 문명의 의학적 성과는 지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괴질, 현대 문명이 원흉인가


다시 말해 몇몇 질병의 출현을 이유로 현대 기술 문명 자체를 부정하는 일은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과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인류가 숱한 질병과 싸우는 과정에서 의학적 지식과 기술을 발전시킨 것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또 다른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반론은 실제로 인류는 다른 생물체 혹은 바이러스 등과 공생을 추구하면서 진화를 해왔다는 주장이다. 독감이나 각종 전염병 백신의 기본원리가 본래의 병원균의 독성을 약화시켜 인체와 공생토록 한 것에 있다는 점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여기에 이영순 교수는 “모든 병원체는 성공적인 진화를 꾀하는 습성이 있다. 이는 숙주를 가능하면 살리는 방향 곧 자기 자신의 독성이 약해지는 방향으로 진화를 하게 됨을 의미한다”고 보면서 질병으로 인해 인류가 절멸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기 어렵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렇듯 진화론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각종 세균, 바이러스는 인류 진화의 한 축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당장의 질병은 고통일 수밖에 없다. 이에 최근 생명공학의 발전은 독감을 비롯한 질병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단들의 개발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적 대응만으로 급격하게 출현하는 변종 바이러스에 대항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성백린 연세대 교수(생명공학)는 “대표적인 인플루엔자 치료제인 타미플루에 대해 H1N1 타입의 인플루엔자는 90% 내성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런 이유로 “WHO도 치료제보단 예방백신을 통한 예방을 더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방백신의 경우에는 변종이 출현할 때마다 해당 백신을 제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변종이 심한 바이러스 질병에 대항하기 위해 개발된 DNA 백신이 유력하게 부상 중이다. 이는 문제가 되는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을 토대로 만든 일종의 DNA로, 어지간한 변종에 대해서도 반응을 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현재 성백린 교수를 포함, 성영철 포항공대 교수(생명과학) 등 국내 학자와 미국의 몇몇 회사들이 개발 중에 있지만, 아직 광범위한 활용을 기대할 단계는 아니다.

아울러 WHO를 중심으로 각국의 질병 방제 시스템이 날이 갈수록 개선되고 있다는 점도 강조돼야 한다. 이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질병에 대항하는 제도가 발전되고 있음을 의미하는데, 의학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신종플루의 경우에도 유독 멕시코에서 사망자가 많은 것은, 바이러스 자체 보단, 멕시코의 낙후된 질병 관리 시스템과 경제적 빈곤이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사망 원인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자체가 아니라,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상처를 입은 폐에 폐렴이나 포도상구균 등이 침투해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곧 전반적인 사회 전반적 인프라가 뒷받침하는 위생 상태가 사망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학과 사회적 지혜의 힘으로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킬지, 아니면 인류가 무력화될지는 향후 대응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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