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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誠敬齋]평가와 판단
[誠敬齋]평가와 판단
  • 교수신문
  • 승인 2009.04.2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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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평가는 으레 점수를 내서 평가 대상자의 위치를 확인하는 절차를 가리키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 중등학교에서 여러 과목의 시험을 치르고 그 결과를 점수화하는 것, 그리고 이들 과목점수의 평균을 구해 해당 학생의 성취를 전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이제 너무나 익숙한 일이 됐으며, 이러한 방법 이외에 다른 평가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게 됐다.

평가결과를 점수화해야 한다는 생각은 학생들의 학업성취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학의 입학시험이나 회사의 채용시험에서 면접결과를 점수화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지게 됐다. 그러나 여기에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면접시험은 다른 시험과 달리, 이해력과 언어구사력, 나아가 용모와 태도 등을 포함하는, 그야말로 한 개인의 사람 됨됨이를 전체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면접시험은 분석의 방향을 취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종합의 방향을 취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면접자가 되어 면접 장소에 들어선다고 생각해 보자. 그의 책상 위에는 여러 요소들로 구성된 평가지가 놓이게 된다. 이 가상의 면접에서 최종결과가 점수로 제시되어야 한다면, 어떤 평가방식을 취하든, 평가지를 점수로 채워 넣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접근방식이 있을 수 있다. 첫째, 면접과정에서는 요소점수만을 산출하고 최종 정리 단계에서 요소점수를 합산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취하는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른바 면접자의 인상에 의해 좌우되는, 근거가 불확실한 판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둘째, 면접대상자의 반응을 전체적으로 판단한 후 최종 점수를 직접 부여하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 면접자는 나름대로 가상의 척도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중요한 것은, 요소점수는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요소점수는 최종 점수의 형식적인 근거로 채워 넣어지는 것일 뿐, 최종 판단의 실질적인 자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면접의 실제에서 주로 후자의 방법이 사용되는 점과 관련해서는, 면접은 대부분 다수의 평가대상자를 가지게 되는 만큼, 개별 대상자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제한되며 따라서 부득이 그런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제시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방법에는 현실적인 고려와는 비교될 수 없는, 그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다. 전체는 요소의 합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전체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요소에 대한 판단이 무의미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요소에 대한 판단만으로 전체를 판단할 때에는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전체를 전체답게 하는 그 무엇, 이것이 바로 평가의 핵심에 해당하며, 평가에서는 마땅히 이 부분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능한 것이다. 만약 위의 후자의 평가방법이 암암리에 묵인되는 방식이 아니라 당당히 제 위치를 인정받게 된다면, 요소점수는 물론이요 그것의 산술적 합인 최종점수 또한 특별한 의미를 가지기 어렵게 되며, 나아가 평가결과를 점수화할 뚜렷한 명분도 없어진다. 이러한 평가는 이미 양적 평가의 틀을 벗어나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면접시험을 포함해 사실상 모든 형태의 평가에서는 量化할 수 없는 부분이 그 핵심을 차지한다고 보아야 한다. 예컨대 타 대학에서 신임교수가 필요하여 주변 인물의 추천을 요구받았을 때, 우리는 해당 인물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만든 후 그것에 기초한 결과를 일러주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 사람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그 사람 좋은 사람이지’ 등의 표현에는 해당 인물의 능력이나 성격 이외에 그 사람의 됨됨이에 대한 판단이 고스란히 녹아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평가적 발언에서 문제 삼는 해당 인물의 인격은 그의 능력이나 성격과 별개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여 능력이나 성격 그 자체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격은 오랜 기간을 두고 형성되는, 능력이나 성격을 그의 것으로 확립시키는 그 무엇에 해당한다.

우리는 남의 사람됨을 판단하면서, 그리고 남에게 사람됨의 판단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남의 사람됨을 판단하는 것을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이 남에게 어떤 판단을 받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위에서 예로 든 주변 인물의 추천을 참고로 해, 나의 사람됨에 대한 판단이 남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오르내리는 상황을 떠올려 보면, 순간 섬뜩한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게 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기의 주관대로 살아가기보다 항상 남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러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은, 내가 남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중압감이 부담스러워서가 아니라, 나의 사람됨이 결코 하루아침에 생길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에 놀라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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