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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진실을 향한 탐색이 빛날 때 혹은 좌절될 때
[북리뷰] 진실을 향한 탐색이 빛날 때 혹은 좌절될 때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9.04.20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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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싸우는 기자들』알리샤 C. 셰퍼드 지음│차미례 옮김│프레시안 북│476쪽
『한국의 언론통제』김주언 지음│리북│688쪽

‘언론이란 모름지기 권력 비판적이고 언제나 예리한 감시의 눈초리를 견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누구나 했던 것은 아니다. 기자들이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특유의 동물적 공격성과 집요함으로 이른바 ‘사건’을 만든 덕분에, 언론=반골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 있었다.

요즘 언론 관련 서적이 다수 출간되고 있는데, 눈여겨 볼 책이 두 권 있다. 우선 프레시안 북에서 나온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을 보자. 이 책은 동시에 출간된 『워싱턴포스트 만들기』와 비슷한 테마를 공유하고 있다.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두 기자, 그들의 진실을 향한 집요한 탐색’이라는 부제만 봐도 책의 주제가 한 눈에 들어온다. 워터게이트 사건.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언론사에 길이 남은 사건의 두 주역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저자는 단순히 워터게이트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 사건이 미국 언론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실감나게 그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정치사에서도 중요하지만, 언론의 역사에서도 중요하다. 우드워드와 번스틴 이야기는 워커게이트 이후의 언론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워터게이트는 이전보다 더 공격적이고, 기존 체제에 존경심이 덜한 새로운 보도 방식을 탄생시킨 출발점으로 기록되고 있다.” 여기서 새로운 보도 방식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할까. 익명의 취재원을 활용하는 방식, 명사저널리즘, 탐사 보도 등이 그렇다. 이를테면 익명의 취재원 활용에 대해서 저자는 우드워드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좋은 기삿거리란 절대로 이름을 내건 취재원의 입에서는 나오지 않는다고. 우드워드와 번스틴은 그들의 기자 생활 전체를 통해서, 기자의 무기고 속에 있는 필요불가결의 무기로서 익명의 취재원을 지지해야 한다는 신념을 한 번도 저버린 적이 없었다.”

사건을 철저하게 파헤치는 탐사보도 방식로 인해 “워터게이트 사건에 완전히 몰두할 수밖에 없었던 몇 해 동안에는 우드워드의 두 번째 결혼도 번스틴의 두 번째 결혼도 도저히 온전하게 살아남을 수 없었다. 두 사람에 대한 압력과 일의 요구는 너무나도 크고 엄청나서, 어떤 결혼이라도 초기의 힘겨운 몇 년을 무사히 헤쳐 나가기 어려웠을” 정도다.

결혼 생활의 파탄을 감수하는 열정과 희생, 익명의 취재원 ‘딥 스로트’를 끝까지 보호하는 단호함 그리고 타고난 지성과 공격성으로 두 기자는 권력이 왜 언론을, 기자들을 두려워해야하는지 그 이유를 몸소 보여줬다.

물론 두 기자 중 한 명인 우드워드는 후일 부시 행정부에 발탁이 돼 욕을 들어야 했다. 또 워터게이트로 빛나는 미국 언론의 오늘이 과연 얼마나 그 까다로운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의구심이 든다. 언론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권력으로 ‘조금 비판은 하지만 본질은 놔두면서’ 기성 현실에 봉사하는 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에는 워터게이트가 있다. 그렇다면 한국 언론사에는 그 비슷한 무엇이 있을까. 불행히도 우리는 워터게이트와 같은 승리의 역사보단 언론 통제라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긴 절망의 나날을 되짚어야 할 처지다.

『한국의 언론통제』는 오랜 세월을 기자로 일하고, 한국기자협회장까지 지낸 저자가 한국의 언론통제가 시대별로 어떻게 진행이 됐는지를 상세히 기술한 책이다. 저자는 책의 앞부분에서 간단하게 언론통제에 대한 이론적 고찰과 구조를 제시한 뒤, 동아일보 기자 대량 해직 사건, 조선일보 기자 해직 사건, 보도지침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과 미디어 통제, 메시지 통제의 시대별 현황을 다룬다. 그리고 군사정권 이후 언론 권력의 등장도 빼놓지 않고 기술하고 있으며,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언론 정책도 다루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과거 독재정권 언론탄압의 완결판은 보도지침에 있다. 저자는 말한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은 언론사 편집국에 보도지침을 하달한 뒤 기자와 언론사에 보도지침을 지키도록 강압을 가했다. 만약 보도지침을 이행하지 않으면, 기자들을 중앙정보부나 안전기획부 등 정보기관에 연행해 수사하거나 고문을 가했으며, 언론사에 대해서는 폐간 위협 등으로 경영진을 압박했다. ……보도지침의 지시방향은 매우 시시콜콜하다. ‘눈에 띄게’‘적절하게’‘조용히’등 다양한 지시어를 사용했으며, 기사나 제목의 크기, 제목에 들어갈 표현까지 지정했다.” 요즘에는 초등학생에게도 하기 힘든 도가 넘는 간섭을 언론과 국민의 정신을 대상으로 행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극도의 언론 탄압이 있었다는 말은 언론인들이 그만큼 저돌적으로 싸워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보도지침이 <말>지를 통해 폭로된 것이 그 일례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기자하면 건방지고, 공격적이며, 까칠하다는 인상이 강한데, 이는 다 호락호락 하지 않은 세월을 버티면서 키워온 특유의 근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자 개개인은 어떨지 몰라도, 언론사라는 거대 집단으로 눈을 돌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조중동이라 싸잡아 부르는 풍조가 말해주듯, 한국에서 몇몇 거대 언론은 “정치권력 못지않은 언론권력으로 등장해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의 눈으로 본다면, 경우에 따라선 기이할 수 있는데, 정부가 언론권력과 싸움을 벌이고,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언론의 힘은 막강해졌다.

그나마 이 기이한 풍경도 이제는 그립게 될 형편이다. “새롭게 등장한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언론정책을 답습하는 듯한 정책으로 언론계와 국민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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