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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과 얼마큼 가까워야 할까
학생과 얼마큼 가까워야 할까
  • 교수신문
  • 승인 2009.04.2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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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 교수 생활기 11

학문 연구의 중심인 대학에 몸을 담고 있으니 연구자로서의 임무가 막중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교수는 근본적으로 학생을 가르쳐야 하는 선생의 입장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어떤 선생이 돼야 할지 항상 고민을 하게 된다. 더구나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가진 미국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학생들이 나에게 문화적 이질감을 느낄까 봐 더욱더 조심스럽다.

8여 년 전 유학 와서 맞은 첫 학기를 앞두고 학과에서 조촐한 피크닉을 연다고 해서 근처 공원으로 간 적이 있었다. 내 상식으로는 학생들이나 학과 직원들이 피크닉을 준비하고 교수들은 적당히 자리가 마련돼 있을 즈음해서 도착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정해진 장소에 가보니 학생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고 나이 지긋한 교수들이 각자 집에서 준비한 음식들로 피크닉 준비에 한창이 아닌가.

어린 학부생들에게는 아버지뻘인 학과장이 그 더운 여름날 비지땀을 흘리면서 분주히 그릴에서 햄버거니 핫도그 등을 굽고 있고 뒤늦게 나타난 학생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교수들이 땀 흘려 준비한 음식들을 여유롭게 먹고는 편안하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이 되자 뒤처리도 하지 않은 채 하나 둘 공원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에게 노교수는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군사부일체라는 가르침 아래 스승을 어려워하는 게존경을 보이는 길이라고 교육 받은 나에게는 그때 그 피크닉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이 제법 세월이 흘렀건만 여전히 생생하다.

그 뒤로 학교생활을 계속 해 보니, 미국에서는 교수들이 학생들과 스스럼없는 관계를 유지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이제 교수가 돼 학생들을 대할 때는 미국 땅에서 사는 만큼, 학생들과 자연스러운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닥터 킴’이니 ‘프로페서 킴’이라고 부르는 학생들에게는 그냥 이름을 부르라고 말하기도 하고, 수업과 관계없는 일상적인 대화도 학생들과 나누려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교수인 나를 편안하게 생각하는 정도를 넘어 우습게 생각하는, 그래서 각종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수업을 자주 빠지는, 이른바 ‘뺀질’ 한 학생들을 대할 때면, 혹시나 내가 너무 만만해 보이지나 않았나 고민 하게 된다.

요사이 한국도 대학에 들어오는 어린 학생들의 태도가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십수 년 전과는 많이 다르다고 들었다.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쓴 약이 되라고 따끔하게 훈계를 ‘감히’ 하는 선생님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알고 있다. 결국, 한국이든 미국이든 어느 정도 학생들과 격의 없이 지내고 또 얼마만큼 엄격해야 하는지의 고민은 하면 할수록 답이 없는 것 같다.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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