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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誠敬齋]성공과 실패
[誠敬齋]성공과 실패
  • 교수신문
  • 승인 2009.04.2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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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성공하기를 바라고 실패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성공하기를 바라는가. 이 질문은 너무나 어리석은 질문 같이 보인다. 성공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성공에는 틀림없이 무엇인가 좋은 것이 뒤따른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하면 사람들은 그야말로 뛸 듯이 좋아한다. 이제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일이 뜻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성공 이후에는 여러 가지 보상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풍족한 의식주를 누리게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높은 지위와 명예를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성공한 사람에게는 ‘칭찬’에 해당하는 것들이 쏟아지게 된다.

누가 보더라도 이것은 기쁜 일이요 福 받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禍가 있도다’라는 말을 볼 수 있다. 이 말은 웬 날벼락 같은 말인가. 성공에서 따라 나오는 ‘칭찬’이 복 받은 것이 아니고 불행을 불러 온다니……. 과연 우리는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성공이 불행이나 화를 불러 오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자만이다. 자만 때문에 성공을 이룬 다음에는 게을러지고, 교만해지고, 남을 경멸하게 된다. 이것들은 모두 불행을 예고하는 것들이 아닌가.

     성공이라는 것이 있다면 실패라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실패했을 때는 어떻게 되는가. 
현실적으로 곧바로 들이닥치는 것은 쓰라린 고통이다.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을 얻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있는 것마저도 빼앗겨 버리는 일도 얼마든지 있다.
밖으로부터 빗발 같은 ‘비난’이 몰려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섭고 끔찍한 일은 자신의 안에서 일어나는 ‘절망’일 것이다. ‘절망’하게 되면, 모든 것이 그의 인생에서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말하자면 살 의욕조차 없게 되는 것이다.

오죽하면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까지 말했겠는가. 그러나 실패는 오로지 ‘비난’이나 ‘절망’만을 불러 오는가. 실패에도 복이 있을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 복을 찾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우리는 성공도 보았고 실패도 보았다. 성공에서 곧바로 따라 나오는 ‘칭찬’은 불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실패에서 곧바로 따라 나오는 ‘비난’과 ‘절망’은 오히려 복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사태를 정확히 파악한 사람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塞翁之馬 이야기를 잠시 떠올려 보자.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변방의 한 노인은 자신이 기르던 말이 도망간 것을 화로 여기지도, 그 말이 다른 준마들과 함께 돌아 온 것을 복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그는 화 안에 들어 있는 복을 봄과 동시에 복 안에 들어 있는 화를 볼 줄 안다. 淮南子의 人間訓에 나오는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은, 진정한 의미의 복이나 화는 당장의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바라보는 우리 자신의 마음에 있다는 점일 것이다.

     결국, 성공과 실패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복과 화는 성공과 실패라는 바깥의 결과에서 온다기보다는 성공과 실패를 맞이한 당사자의 마음 안에서 나온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心性涵養’이야말로 성공이나 실패에서 따라 나오는 복을 그대로 자신의 진정한 복으로 만들 수 있는 열쇠가 된다. 그리고 荀子에 의하면 심성함양의 길은 학문에 있다. 그는 학문을 하면 ‘窮해져도 곤란을 겪지 아니하며, 불안해도 조금도 그 뜻이 쇠약해지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바는 莊子가 말한 ‘窮亦樂 通亦樂’의 경지, 즉 ‘성공해도 즐거워하고 실패해도 즐거워하는 경지’이다. 그것은 곧 聖人이나 至人의 경지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와 같이 聖人이나 至人이 되는 것은 인간으로서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경지를 포기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 경지를 포기해도 좋은가. 심성함양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은 이상, 우리는 이 경지를 도저히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우리 주변에서는 이 경지를 아예 포기해 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차라리 이와 같이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경지를 꿈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도달 가능한 것을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도처에서 환영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심성함양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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