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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17주년특집 기념화보]지리산 노고단 ‘오도재’에서 문득 길을 보다
[창간17주년특집 기념화보]지리산 노고단 ‘오도재’에서 문득 길을 보다
  • 교수신문
  • 승인 2009.04.15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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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노고단 ‘오도재’에서 문득 길을 보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어딘가로 떠나는 일이 이젠 일상이 됐다. 여유가 있는 주말이면 가족들을 데리고 산간 오지로 스케치를 다니면서 캠핑도 하고 그림도 그리면서 가족애를 쌓는다. 그러다 방학이 되면 커다란 배낭 속에 여러 종류의 스케치북과 도구들을 챙겨서 비행기를 탄다. 인도의 타르사막과 히말라야 줄기인 다즐링과 시킴, 그리고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신비스런 도시 바라나시 그리고 네팔의 안나푸르나와 포카라의 아름다운 풍경, 남미의 이과수폭포와 마추피추, 3천800미터에 위치한 티티카카호수의 청명한 바람, 볼리비아 우유니사막의 아련함, 그 옛날 마방들의 길, 차마고도를 따라 갔던 운남성으로의 여행에서 만났던 끝없는 길들과 샹그릴라의 하늘은 삶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런 여행에서 나는 내 그림의 모티브가 되는 수많은 길을 만난다.
길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가장 원초적이 유산이다.
고단한 여행길에서 아름다운 길을 만나는 것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행복하다. 세계의 각지를 여행하면서 아름다운 길, 험한 길, 신비한 길을 만날 때 마다 ‘누군가가 처음으로 이 길을 걸어간 사람이 있었겠지!’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 길에 서있는 그 자체만으로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어쩌다 운명처럼 들어선 예술가로서의 삶, 힘들고 지쳐서 내 안에 안주하려고 할 때 마다 “누군가 계속 걸어 다니면 그게 길이 된다”라는 글귀를 되새기며 용기를 얻는다. 적어도 내가 걸어가는 여행길의 끝자락에 내가 찾는 길이 있길 소원해본다.
복숭아꽃, 배꽃이 흐드러진 날 통영으로의 스케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함양에서 지리산 노고단으로 가는 오도재를 넘었다. 구불구불 뻗어있는 길이 승무를 추는 여인네의 모습처럼 우아하고 담을 넘는 구렁이처럼 신기하다. 한국의 길은 풍경과 어우러져 맛깔나는 매력을 풍긴다.  막막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득한 이 시대에 <교수신문>의 역할을 기대하면서 ‘길이 있는 풍경’ 속에 핀 복사꽃처럼 우리들의 마음에도 하루 빨리 봄이 오길 고대한다. 그리고 많은 연구에 시달려 지치신 교수님들께서도 아름다운 길을 찾아 훌쩍 여행을 떠나 보시길 당부 드린다.  
박병춘 덕성여대·동양화과


박병춘의 그림을 보면 항상 ‘신중함’이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서양에서 신중함(prudence)은 시간과 연관된 덕목이다. 그의 장점은 무엇보다 그가 자신을 구성하는 다종다양한 정체성 모두에 열려 있으려 부단히 노력한다는 점에 있다. 그 다종다양한 정체성 가운데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것들이 뒤섞여 있다.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 이 모든 것들을 조화로운 전체 속에서 매끄럽게 통합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작가가 그 일을 어렵다고 포기하고, 편안 자리에 안주하는 순간 그림은 곧장 죽은 것으로 된다.
박병춘 회화에서 보이는 바 명과 암, 비움과 채움, 사색과 유희, 자연과 문명, 동양과 서양의 요인들이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떠들썩하게 충돌하는 생경한 양태를 보이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헤아려야 한다. 그러한 충돌은 과거의 것만을 지키려드는 화가의 무거운 화면보다, 그리고 진기한 발상을 선호하는 젊은 작가들의 가벼운 화면보다 좀 더 의미있는 것이라 믿고 싶다. 그가 그 충돌, 그 대결에서 물러서지 않게 지원하고 지켜봐주는 일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섣부른 타협, 섣부른 조화에 갇히지 않고 부단히 살아 움직이는 경지의 축복을 기대한다.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kunst75@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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