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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량적 모형의 유혹과 한계 … 만만찮은 ‘긍정심리학’ 흐름
계량적 모형의 유혹과 한계 … 만만찮은 ‘긍정심리학’ 흐름
  • 박창호 전북대·심리학
  • 승인 2009.03.23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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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미래_ 4. 심리학

심리학은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심리학에는 뇌 영상을 찍거나 뇌의 전기적, 화학적 반응을 측정하는 물질적 연구도 있는가 하면,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자아 개념의 구조와 같이 정신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연구도 있다. 심리학은 이른바 마음과 몸의 관계에 대한 이론들이 충돌하는 경험적 탐구의 접경지로서, 스노우가 말한 ‘두 개의 문화’가 맞닥뜨리는 곳이다. 1875년 ‘심리학교실’을 열어 현대 심리학의 비조라 일컬어지는 분트나, 심리작용을 신경생리작용으로 환원해 설명하려 했으나 그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했던 프로이트에게도, 이런 양면성이 보인다. 두 방향의 접근은 지적 탐구의 폭을 넓혀 현대 심리학이 보이는 다양성과 생산성의 뿌리가 되기도 했지만, 심리학의 미래가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유물론적 모형의 성패와 학문체계의 추이에 따라, 전통적인 심리학은 종말을 고하거나 혹은 심리학은 두 개의 진영으로 분열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심리학의 핵심 연구주제 중 하나는 마음의 구조와 과정이다. 인지심리학과 인지과학은 마음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모형을 시도해 왔는데, 마음을 정보처리 체계로 보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최근에는 두뇌와 마음 간에 더 직접적 대응관계를 보이고자 하는, 신경과학적 혹은 뇌과학적 연구가 활발하다. 마음을 두뇌 활동에서 찾는 연구들은, 한편으로는 견고한 물질적 기반을 확보한 듯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의 의식적 국면과는 괴리가 있는 두뇌 작용에 현혹된 듯이 보이기도 한다. 뇌에서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나  중단으로 사랑을 설명하는 것은, 그 둘이 거의 동시적인 사건임을 보여줄 수 있을지언정, 사람이 체험하는 사랑의 감정을 설명해 준다고 할 수는 없다. 여하튼 두뇌, 인공 지능 장치(예컨대 로봇), 그리고 인간의 지력에 대한 탐구와 개발은, 학제적인 인지과학이나 뇌과학의 발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서로 맞물려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이전보다 더욱 계산론적이고(컴퓨터 모형으로 구현 가능하고) 또한 실재 뇌와 유사한 ‘마음 모형’을 가지게 될 것이다.

최근에 심리학적 연구의 주제들이 여러 방향으로 분기하고 있다. 보편주의적인 과학 모형에서 벗어나, 여러 대상들에게로 관심이 확대되고 있으며, 인접 분야와 제휴해 새로운 연구 영역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사회가 다변화되고 여러 하위 집단의 특수성이 두드러지고 이에 걸맞은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것과 맥을 같이하면서 노인, 은둔형 외톨이, 가정폭력 피해자, 장애인, 이주민, 그 밖의 소수자 등 다양한 하위집단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해지고 있다. 또한 소통과 암묵적 이해와 규범의 기반인 문화에 대한 심리학적 관심이 크게 고조되고 있다. 이런 양상은 심리학에서 보편주의적 인간관과 서구 중심주의적 연구로부터 지역적인 연구가 홀로서기를 하는 모습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심리학적 지식과 기술을 실제적인 문제에 응용하는 연구들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행동과 심리과정에 대한 미시적인 분석에 근거한 심리학적 처치는 개인주의적인 현대 사회에 더 잘 적용될 수 있다. 심리장애나 이상행동의 치료에 이미 널리 적용되는 있는 행동수정, 인지행동치료 등 심리치료기법들 외에도, ‘인적 자원의 훈련과 학습 및 교육’, ‘공공 혹은 사적 커뮤니케이션 및 갈등 조정’, ‘경영과 정책에서 의사결정’, 그리고 ‘제품, 인터페이스, 서비스 및 환경의 디자인’ 등을 위시한 여러 영역에서 새로운 ‘심리기술’이 탄생하고 있다. 이들은 이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산업 장면에서 핵심 요소로 발전하고 있다. 실제적인 문제의 해결에 심리학이 적극 참여함에 따라, 심리학 연구의 다변화와 탈중심화는 가속될 것이며, 동시에 심리학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도 깊어질 것이다.

이상에서 엿볼 수 있듯이, 심리학의 연구문제들은 과거에 비해 매우 복합적인 것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여러 하위 심리학 영역 간 혹은 인접분야 간 공조나 융합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광범한 자료 수집과 분석이 전보다 수월하게 됨으로써 심리학의 연구들도 매우 계량적이고 정교한 통계적 모형을 기초로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계량적인 모형이 주는 수치는 분명해 보이긴 하지만, 문제의 핵심을 벗어난 것을 수도 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인간이 심리학에서 기대하는 것은 단지 수치들만은 아닐 것이다. 쉽게 수량화되지는 않겠지만, 공감과 깊은 이해가 가능한 의미 차원의 설명을 추구하기 위해 질적 연구방법론을 도입하는 연구들이 점차 늘고 있다. 

몇몇 주요한 심리학 접근은 생물학적 충동에 의해서든 환경에 의해서든 결정론적인 인간관을 취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마루쿠제는 생물학적 충동과 억압으로부터 해방에서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상상했다. 스키너는 적절한 행동에 대한 보상과 보상체계의 조정이라는 ‘행동공학’적 원리를 적용하는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그러나 결정론의 뿌리는 적극적 의미의 유토피아 혹은 행복과의 거리를 좁히기에 힘들어 보인다.

 

 반면에 인본주의적 접근은 인간의 주체성과 긍정적인 성향을 강조한다.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긍정심리학 흐름은 경험적 증거를 통해, 우리의 일상적 습관과 태도, 인간관계 등을 바꿈으로써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과 이웃을 행복하게 만들기는 유물론적 인간관에 혼란을 일으키며 심리학의 향방에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박창호 전북대·심리학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인지심리학』등의 저서와 「색채 감성의 위계 구조에 대한 탐구」등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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