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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한국철학자 연합대회 2000
[학술대회]한국철학자 연합대회 2000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0.12.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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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성찰과 타자통찰 사이에서 배회하는 전환기의 철학
한국에서 철학자로 산다는 것은 지루한 노릇이다. 비유컨대, 서론을 위해 본론을 끝없이 유보해야 하는 책과 같다. 서론 없이 이른바 '본격철학'을 하기에는 서로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거두절미도 이심전심의 사귐이 있을 때 비로소 미덕일 수 있지 않겠는가.

이는 철학이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떤 지점인지를 돌아보는데 기민한 학문이라서 만은 아니다. 김재권 브라운대 교수가 '철학적 자연주의: 그 기원과 위상, 그리고 주장들'이라는 발표문 서두에서 밝혔듯, "철학자들은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 자의식을 갖도록 운명지워져 있어서, 혹은 저주받아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철학은 메타학문'이라는 명제 역시 우리에게는 오랜 묵상이 필요한 '화두'일 것이다.

이어주는 '서론쓰기'가 필요한 시대

'21세기를 향한 철학의 화두'를 내걸고 한국철학자연합대회(대회장 이명현 서울대 교수, 이하 철학자대회)가 열렸다. 지난달 24, 25일 서울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첫날 기조발표는 존 설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석좌교수와, 김재권 교수, 그리고 김여수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맡아, 각각 '의식, 행위 그리고 두뇌', 앞의 발표문, '인간의 정체성:그 규범적 핵'을 발표했다. 둘째날에는 '생명과학기술 시대의 인간의 정체성', '정보화 시대의 인간공동체', '세계시장과 인간 삶의 조건'이라는 세 가지 주제발표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한국철학적인간학회, 한국여성철학회, 한국현상학회, 과학철학회 등 16개 철학모임의 분과발표가 있었다.

맥락을 잃은 서론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존 설 교수의 기조발제에서 철학자대회가 지향하는 바를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존 설 교수는 "의지의 문제가 어떻게 의식과 기술을 연결시키는 공학의 문제, 설계의 문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가장 그럴듯한 노선의 가능한 해답은 어떤 것인지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질문과 답은 과연 어떤 본론을 예견하는 것이었을까. 다음날부터 이어질 모든 발표에서 철학자들의 사유구조가 '인과적'인지 '임의적'인지에 유의해야 한다는 사전경고였을까. 존 설 교수의 발표는, 그 자체로 철학사적 의미를 갖는 논문 하나가 맥락을 상실한 채 학술대회의 서론이 돼버리면 본론과 맞닿아 산출되는 의미도 함께 사라져 버린다는 '교훈'과 '의미'를 줄뿐이었다.

'생명·정보화·세계화'라는 철학의 화두

철학자대회의 제1주제는 '생명과학기술 시대의 인간의 정체성'이었다. 철학이 무엇보다 과학이라는 화두를 던져야 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이 시대 과학의 장미빛 미래를 '오래된 미래'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묵시록을 다룬 문학·예술 작품의 암울함은 사람들의 불안을 입증하며 가속화하고 있을 뿐이다. 철학자의 쓴소리는 생물학이 공학화하고 마침내 산업화해버린 현실개탄으로 집중되었다. 신승환 가톨릭대 교수는 '생명과학 시대의 철학과 인간의 자기 정체성'에서 생명과학이 과학주의와 자본주의와 유착관계 속에서 싹텄다고 비판했다. '생명공학'이 아니라 '생명학'이며, 논의 자체는 '생명철학'의 영역까지 옮아가야 한다는 신 교수의 언급은 그 육중한 당위성만으로도 숨가쁜 턱걸이로 보였다. 그가 보기에 '생명철학'은 형이상학이라는 배후를 벗어 던져야한다. 생명은 그 자체로 목적성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결국 신 교수의 주장은, 과학과 담합한 철학이 이성의 틀로 서술한 인간의 역사를 생명의 방향에서 재서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비판적 고찰은 부메랑이 되어 다시 철학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반면, 손동현 성균관대 교수는 '선험적 이성의 생물학적 연원'이라는 제목의 발표문에서 생명공학의 기술적 행위는 인간의 정신이 1백만년 진화의 산물임을 간과하는 중대한 오류라고 말했다. 이는 생명공학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해 철학 스스로의 성찰을 요구하는 지점으로 회귀한 신 교수와는 배치되는 입장이었다.

발표들간의 '상승의 동역학' 필요

공동체의 해체를 급속한 정보화의 소산으로 본다면, 제2주제 '정보화 시대의 인간공동체'의 선정이유를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홍윤기 동국대 교수는 그 자리에 '자유'라는 고전적 주제를 끌고 왔다. 온라인 상황에서 폭증한 자유의 갈망이 고전철학의 자유 개념과 이질화하는 지점에 대한 지적이었다. 홍 교수는 시민민주주의 이념이 감당하기 벅찰 만큼 자유가 자가증폭을 거듭하는 것이 정보화의 조건이라면, 오히려 그 자유를 솟대로 세우고 다른 이념들을 재편성하여 시민의 자율적 권리를 신장할 기회라는 데 기대를 내걸었다.

이종관 성균관대 교수의 '사이버문명, 포스트휴먼, 인간의 운명'과 이상훈 대진대 교수의 '사이버 공동체와 테크노 철학', 그리고 홍윤기 교수의 발표는 세 가지 다른 음성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두 이 교수의 경우, 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앞선' 논의를 펼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발표들이 '상승의 동역학'을 활성화시키지 못했던 것은 본론의 문제는 아니었다. 철학이 의미있음에 대한 긴 서론이 또 다시 필요할 것이라는 예감에 답답해온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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