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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학문 르네상스를 꿈꾸다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학문 르네상스를 꿈꾸다
  • 설동훈
  • 승인 2009.03.02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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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미래_ 2. 사회학

사회학은 인간의 사회생활을 특징짓는 ‘질서’를 찾아내고 서술하고 설명하는 학문이다. 사회학적 사고는 공자나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됐지만, 오귀스트 콩트가 ‘사회학’이라는 이름을 지어 독립학문을 표방한 지는 20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근대학문으로서 사회학이 찾으려 하는 ‘질서’는 사회현상들 사이에 존재하는 규칙 또는 일반성을 의미한다. 사회학자들은 시간을 기준으로 사회현상을 횡단적·종단적으로 잘라 분석해 사회질서를 찾으려 한다. 그러므로 사회질서의 내용에는 사회구조와 사회변동이 반드시 포함된다.

사회학은 동시대의 사회적 위기를 어떻게 파악하고 분석하며 수습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회적 위기를 사회질서가 교란에 빠진 상태로 정의한다면, 위기 수습은 질서의 회복을 뜻한다. 여기서 질서의 내용이 문제가 된다. 사회학자들은 ‘위기에 빠지기 전의 상태’를 이상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새롭고 대안적인 질서’를 이상으로 여기는 사람으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전자를 보수, 후자를 진보라 한다면, 사회학은 태생적으로 보수와 진보가 공존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사회학자들은 1960년대까지는 거의 전원이 보수주의적 이념 성향을 갖고 있었으나, 1970년대 이후 분화되기 시작해 이제는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뒤섞여 있다.


사회학은 근대 공업사회의 출현과 더불어 출발해, 공업화ㆍ도시화 등으로 야기된 사회문제와 사회적 위기의 본질을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해 왔다. 한국사회학계의 연구주제는 그간 이루어진 한국사회의 변동을 반영해 변화해왔다. 1960∼70년대에는 농촌사회학 연구가 주류를 이루었고, 1980∼90년대에는 산업사회학·노동사회학 연구가 많았으며, 2000년대 이후에는 사회적 관심의 다양화를 반영해 전지구화·정보화·환경·신사회운동 등 새로운 연구 분야가 추가돼 왔다.

1980∼90년대처럼 사회갈등이 매우 심각했을 때 사회학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매우 컸다. 사회학자들은 자신의 이념 성향에 따라 진보에서 보수에 이르는 다양한 사회질서 회복 프로그램을 제시했고, 그것은 사회운동가와 정책결정자들의 인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사회의 위기가 진정돼 안정기가 찾아오면, 사회학은 위기를 맞이한다. 1960년대 말 전 세계를 휩쓸었던 위기 국면이 일단 진정된 후, 사회학자들은 ‘사회학의 위기’를 맞이했다. 1968년의 흥분과 열정이 사그라지면서, 서구 사회학자들은 자신들이 대안으로 제시한 프로그램의 공허함을 인식하고 반성하기 시작했다. 분석과 성찰의 대상을 사회현상뿐 아니라 사회학 자체로 적용한 것이다. 그 당시까지 사회학 이론의 주류를 이루었던 ‘구조기능주의’가 주요 공격 대상이었다. 구조기능주의에서 인간은 사회규범을 받아들여 그것을 따르는 존재로 간주된다. 사회화를 통해 개인은 ‘사회적 인간’으로 鑄造된다는 식의 인식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면서, 기존 사회학 패러다임은 위기에 봉착했다. 갈등이론, 상징적 상호작용론, 합리적 선택이론, 비판이론, 다양한 포스트모더니스트 사회학 등이 대안으로 모색됐다. 그러면서 사회학은 단일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학문이 아니라, 여러 개의 패러다임이 공존하는 학문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사회학의 위기는 학과의 폐지로도 나타났다. 1980년대 초 몇몇 미국 명문대학 사회학과가 문을 닫을 위기에 봉착했다. 언론에서도 사회학을 ‘죽어가는 학문’(dying discipline)이라고 다룰 정도였다. 그로 인해 이론적 지향뿐 아니라, 커리큘럼에 대한 반성이 생겨났다. 사회문제의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사회정책학, 다른 나라 사회에 대한 지역연구 등에 주력하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변화한 사회 현실에 맞도록 사회학 커리큘럼을 고쳐서 ‘특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면서 예일대ㆍ듀크대ㆍ워싱턴대(세인트루이스) 등 한 때 폐과 위기에 처했던 사회학과들은 살아남았고, 새로운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사회학은 40년 전 서구 사회학계가 봉착했던 것과 유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80년대 한국 사회학자들은 사회계급론·사회발전론 등 거대담론을 주도해, 지식인과 정책결정자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987년 민주화 이행 이후 한국사회에서 ‘개혁 프로그램’ 담론이 그것을 대체했다. 사회적 관심의 초점이 사회문제의 원인 진단보다는 구체적 해결 방법으로 이동하면서, 사회학의 입지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사회학은 사회문제의 원인은 잘 찾아내지만, 대안과 그 실천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또 1990년대 이후 전국 각 대학에서 사회학과 신설은 거의 중단됐고, 최근에는 몇몇 대학 사회학과가 폐과 위기에 처했다는 암울한 소식까지 들린다.

‘한국사회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의 사회학자들은 사회학의 이론과 지향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통해 ‘사회학’과 ‘사회학과’의 혁신을 추진해 왔다. 한국사회학회에서는 엘리트 중심의 사회학을 지양하고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사회학 르네상스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사회학 커리큘럼 재정립 연구를 여러 차례 수행해 각 대학 사회학과들이 채택할 수 있는 대안 모형을 제시하려 노력해 왔다.

2009년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가 닥친 시점에서 사회학의 분석과 대안 제시 능력은 다시 부각되고 있다. ‘학진 등재지’와 ‘SSCI 저널’에 길들여진 한국의 사회학자들이 적실성 있는 위기 수습 프로그램을 제시할 수 있을는지는 알 수 없다. 현대인의 ‘길들여진 무능력’(trained incapacity)을 질타했던 선배를 둔, 한국 사회학자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한국사회학의 위기’ 담론을 통해 꾸준히 지적해왔다. 그러한 점에서 사회학자들이 현대 한국사회의 위기를 진단하고 해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시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본다.

사회학자들은 사회적 위기를 진단하기 위한 칼을 사회학이라는 학문 자체에도 댔고, 그 결과 ‘사회학의 위기’는 종종 과장돼 알려지는 부정적 결과를 낳았다. 그렇지만 폭로(debunking)와 문제해결책(solution)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회학은 체질 변화를 통해 자체의 위기를 훌륭히 극복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설동훈 전북대·사회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저서로 『외국인노동자와 한국사회』, 논문으로  「국제노동력이동과 외국인노동자의 시민권에 대한 연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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