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10:00 (일)
[나의 강의시간] 살아있는 대화를 요구하는 이유
[나의 강의시간] 살아있는 대화를 요구하는 이유
  • 장영우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 승인 2009.03.02 15: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예창작학과(이하 문창과)에서 이론 수업은 별로 인기가 없다. 문창과 특성상 학생들이 아무래도 창작 수업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일부 학생들은 이론을 많이 알면 창작을 하는 데 장애가 된다고 생각해 수업에 건성으로 참여한다. 나는 연구년으로 1년간 쉬었던 ‘현대문학이론특강’ 과목을 다시 맡으면서 수업 방식을 새롭게 바꾸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주교재는 있어야 한다고 판단해 현대문학이론을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되, 매주 세 개의 보고서를 부과했다. 먼저 주교재의 한 장(chapter)을 요약하고 그것을 발표하게 한 뒤, 해당 주제와 관련된 한국의 연구가가 쓴 비평문을 비판적으로 읽고 쓴 리포트, 해당 문학이론을 적용해 작품(시,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을 분석한 글 등이 그것이다.

나는 학생들의 발표와 토론을 들으며 그들이 잘못 이해하거나 빠뜨리고 넘어간 중요한 부분을 지적해 다시 발표하도록 했고, 과제물도 첨삭을 한 뒤 되돌려주었다. 그리고 학기말에는 하나의 문학이론을 선택해 작품을 분석하되 비평문의 형식을 갖출 것을 요구했다.

첫 주에 받아 본 학생들의 보고서는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니었다. 수강생 대부분이 문창과, 국문과 학생인데도 기본적인 글쓰기 훈련이 안 돼 있었기 때문이다. 부적절한 어휘와 부정확한 표현, 문장과 논리가 잘못된 부분, 참고 자료 등을 세세히 교정해 보고서를 돌려주자 학생들은 다소 놀라는 눈치였다. 그런 과정이 몇 주 지나자 보고서가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처음과 달리 적절한 어휘 선택과 표현에 고민하기 시작했고, 논리적이고 정확한 문장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흔적이 보였다. 매주 되돌려 받는 보고서의 첨삭 분량이 점차 줄어들고 간혹 ‘Good!’이란 글자를 발견하곤 미소를 지었다. 그 과정에서 참고문헌을 그냥 베끼는 수준에서 벗어나 조금씩 제 견해를 드러내는 모습도 보였다. 매주 세 개의 보고서를 읽고 첨삭해줄 수 있었던 것은 수강생이 적어서 가능했다. 수강생이 20명만 넘어서면 첨삭지도는 거의 불가능하다.

내 수업에서 제일 강조하는 것은 용어와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이다. 문창과 학생들은 정규수업과 분과활동을 통해 꾸준히 합평을 받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에 비해 발표를 잘 한다. 그러나 그들의 발표를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얘기를 늘어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때마다 나는 가차 없이 발표자에게 구체적 설명을 요구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왜?”, “‘그래서?”라는 말을 많이 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학생들의 단문형 대답이다. 작품이 좋거나 싫으면 “어떤 부분이 구체적으로 왜 좋은지(싫은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라”고 요구한다. 단문식 질의응답은 진지한 대화가 되지 않는다. 나는 면접관이나 검사가 아니므로 단답형의 대답보다 살아있는 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 좋은 강의는 내용보다 수업분위기에서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자주 있는 경험은 아니지만, 강의에 열중하다보면 어느 순간 학생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강의를 마치면 학생들이 큰 박수를 준다. 이런 일은 한 학기에 많아야 서너 번 있을까 하지만, 당시의 진지하고 열띤 분위기는 꽤 오래 기억될 것으로 믿는다. 나도 학생시절에 그러했으니까.

학생들은 매 학기, 매년 새로운 얼굴과 정신으로 나를 맞는다. 따라서 나도 무언가 달라진 모습으로 그들 앞에 서야 한다. 하지만 그게 생각이나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새학기가 다가오면 나는 늘 좌불안석이다. 이번 학기에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늘 나를 괴롭히지만, 정답이나 왕도는 없다. 학생들에게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라고 요구하듯이 나 자신에게도 같은 주문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야말로 영원한 학생이기 때문이다.

장영우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