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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진단] 그들은 사회 바깥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자의 진단] 그들은 사회 바깥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 심세광 철학아카데미·철학
  • 승인 2009.02.23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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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간 대화로 읽는 학술키워드14] 사이코패스

오늘날 사이코패시를 야기시키는 메커니즘을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정신의학자들은 얼핏 보기에 대단히 모순적인 방식으로, ‘사이코패시’를 범행 속에서만 드러나는 병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병의 징후나 병에 영향을 주는 환경을 결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유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정신의학에서는 환경 특히 가정환경의 영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여기에 대한 데이터는 충분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극단적인 ‘사이코패스’의 사례를, 특정한 환경―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인과관계를 분명히 설정할 수는 없지만―, 예를 들면 일반인보다는 노숙자나 수감자들에게서 더 잘 이끌어 내는 경향이 있기도 합니다.

 

기존 연구는 현상학적 분류에 그쳐

하지만 보다 철저한 연구 없이 환경과 ‘사이코패시’의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조금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요. 요컨대, ‘사이코패시’와 감옥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바는, ‘사이코패시’라는 인격 장애가 범죄라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사이코패시’의 성격적 특성들이 제 규칙의 위반을 조장할 수는 있지만, 이것은 기술상의 편의에 불과한 것이며 양자를 혼동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모든 범죄자나 수감자가 ‘사이코패스’는 아니며, 그 역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사회적 일탈자들에게 할애된 공간들에 대한 분석과 연구도 함께 이루어져야겠죠. 아무튼 ‘사이코패시’의 원인에 관한 현장중심의 연구 부족이 이 질병의 이해에 엄청난 장애가 되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세상을 경악하게 만드는 엽기적인 살인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언론을 통해 신속히 확산되는 범인의 신상과 범행동기에 대해 정신의학적 담론들은, 설명이 가능할 경우, 정신분열증적 착란과 편집증 사이를 오가며 애매모호한 해석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고, 설명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거의 예외 없이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을 거의 만능적으로 적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이들 해석의 유효성의 범위는, 19세기 탄생기에 있는 정신의학이 ‘살해 편집증(monomanie homicide)’이라고 하는, 거의 만능적인 용어로 정신감정을 행했던 것과 별반 차이 없이 애매모호하게 보여지기도 합니다. 강조하지만 ‘사이코패시’는 어떤 특정한 현상을 지시하는 용어이지, 그 현상의 발생원인 전개 과정, 결과를 이해 가능하게 해주는 개념 장치는 결코 아닙니다.

정신의학의 담론이 전례 없이 우리 삶의 규범장치로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오늘날, 이 담론이 우리에게 진리로서 부과하고 있는 엽기적 범죄행위에 대한 해석 및 지각방식은, 이유 없는 살해 및 폭력행위가 내포하고 있는 긴급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의미를 외면하거나 은닉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에 거의 보편화돼 있는 ‘가족중심주의적’ 해석이 그 실례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정신의학자는 물론이요, 정치인들까지도 이 이해할 수 없는 엽기적인 폭력 및 살해행위의 원인과 책임이, 고립되고 소외된 가련한 개인 특유의 비도덕적·반사회적·비정상적 인격과 그가 선택한 존재방식, 이와 같은 괴물을 탄생시키는데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간주되는 가족 및 가족의 막장 드라마에 있다는 점을 합심해 강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회적 욕망의 장에 대한 성찰 필요

하지만 개인, 인격, 가족은 사회를 떠나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이코패스’의 무의식, 인격, 욕망 형성은 정치·사회·경제적 메커니즘의 직접적인 영향 하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아버지는 가족이라는 비좁고 낡은 구조를 떠나 사회 도처를 배회하며 우리를 이미 포획했거나 우리를 위협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연쇄살인과 같은 개인의 잔혹 행위를 사회라는 공동의 신체로부터 떼어내 ‘과학’이라는 라벨이 붙은 공간에서 기성의 범주에 따라 명명하고 분류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설사 비인간적이고 반자연적인 광기의 파열 속에서일지라도, 이 위반적·일탈적·반사회적·파괴적 발작행위가 우리에게 현시하는 문제와 대면하는 것은 용기와 인내를 요하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유영철, 강호순과 같은 자들의 엽기적인 살해극은 우리시회에 섬광을 발생시키고 이 섬광은 분명히 우리에게 공포, 경악, 분노, 상처를 유발시킵니다. 하지만 이 찰나와 같은 섬광이, 우리가 대면하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와 우리 사회의 현실태라 할 수 있는 꺼림칙한 무엇인가를 지극히 명시적으로 현시하는 것 또한 사실일 것입니다. 그리고 섬광 속에 벌거벗겨진 채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우리─욕망, 탐욕, 권력, 소비, 쾌락, 타자와의 관계, 자기와의 관계 등─의 현실태는, 동기도 없고 무의미하게 보이는 착란 행위가 우리에게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그 의미를 포착하는 것은 우리들 산 자의 몫이 아닐까요.
부끄럽지 않은 삶, 살만한 사회 속에서 살기를 원하는 ‘건강한’ 우리의 몫이 아닐까요. 

심세광 철학아카데미·철학

필자는 파리 10대학에서 미셸푸코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저로 『성과 철학』등이, 역서로는 『주체의 해석학』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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