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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진단과 대응’, 허울만 좋은 기치인가
‘경제위기 진단과 대응’, 허울만 좋은 기치인가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9.02.23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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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개 관련학회가 참여한 2009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최악의 실업률, 급등하는 환율, 폭락하는 주가, 막막한 생계. 미국 발 금융 위기의 한파를 톡톡히 겪고 있는 우리에게 ‘2009 경제학 공동학술대회’(2월12~13일, 성균관대) 개최는 솔깃한 소식이었다. ‘국제금융위기와 한국경제의 대응’과 ‘현 정부 경제정책의 평가 및 향후 과제’를 주제로 48개 경제학 관련 학회의 500명이 넘는 전문가들 그리고 수많은 학계 인사들, 대학원생들이 참여한 행사니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기대를 의식한 탓일까. 2009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이종원·성균관대)는 이틀에 걸친 전체회의를 경제위기의 진단과 대책에 할애했다. ‘현재 국제 금융위기에서 금융 개혁의 역할’을 발표한 박윤식 조지워싱턴대 교수와 ‘글로벌 금융위기와 한국경제의 현황과 대응방안’을 발표한 김인준 서울대 교수 외에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등 6명의 저명 학자들을 초빙하는 등 나름 공을 들인 흔적도 보였다. 특히 대회 이틀째인 13일에는 최공필 우리금융지주 전무 등 실무 경제 전문가 패널과 청중도 참여하는 토론회가 개최, 관심을 받았다. 모처럼 현실의 난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댄 모습이었다.

주류 입장만 대변한 전체회의

그렇다면 발표된 논문과 논의들은 우리의 현실에 과연 지혜로운 시사점을 던져주었을까. 학술대회를 평가하는 가장 통상적인 기준 중의 하나는 발표되는 논문의 독창성이다. 그 점에서 전체회의의 논문들은 그다지 새로움을 보여주진 못했다.

이를테면 김인준 교수는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부동산 시장 거품 붕괴 △파생금융상품으로 인한 과도한 증권화 △정부 규제 및 감시 실패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와 리스크 관리 실패 등을 들었고, 대책으로는 △금융 감독의 강화 △금융 및 기업의 구조조정 △경기 부양 등을 들었다. 다른 발표자들의 주장도 비슷한데, 현 위기에 대한 하나의 전문적 진단이자 대책으로서 인정을 할 수는 있지만, 별다른 지적 임팩트는 없었다. 경제학 관련 교수나 경제 전문가에게라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독창성의 확보가 어렵다면, 그 다음으로 제시할 수 있는 학술대회 평가 기준은 다양성일 것이다. 다양하고 차이가 뚜렷한 입장들이 살벌한 논쟁을 거듭할 때, 학계 전체의 학문적 내공 상승도 기대할 수 있는 법 아닌가. 유감스럽지만 이 점에서도 전체회의의 논의는 기준 미달이었다. 현 경제위기를 신자유주의의 한계나 자본주의의 내적 위기로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학자 집단을 전적으로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독창성과 다양성이 결여된 전체회의장에는 뼈아픈 성찰과 치열함보단 밋밋하고 협조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논문 발표에 대한 집중보다는 쉬는 시간에 행하는 악수와 안부 인사에 더 열중인 사람도 보였다. 경제위기를 논하는 자리가 반드시 침울할 필요는 없지만 지나치게 웃음이 많은 모습은 민망하기도 했다. 생계, 고용, 복지 관련 문제는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공동학술대회에는 전체회의 이외에 각 학회별로 진행하는 분과회의가 줄을 이었다. 한국경제학회, 한국계량경제학회, 한국국제경제학회, 한국재정학회 등과 같은 전통적인 경제학 분야 학회만이 아니라, 한국법경제학회, 한국환경경제학회, 한국문화경제학회, 한국보건경제학회 등 다양한 분야의 학회들까지 참석을 했다.

48개의 학회가 참가한 만큼 이채로운 주제의 논문도 발표가 됐다. 이를테면 한국법경제학회(회장 신도철·숙명여대)의 분과회의에서는 윤진수 서울대 교수가 ‘법의 해석과 적용에서 경제적 효율성의 고려는 가능한가?’라는 논문을 발표, 화제가 됐다. 윤 교수는 “법이 특별히 효율을 고려하지 말라고 명하지 않는 한 항상 효율을 고려해야 한다”고 화두를 제시하면서 △민법에서 경제적 효율의 역할 △헌법원리로서 효율 등을 논의했다. 그는 또 논문 말미에서 “어떤 법률로 인해 얻는 이익이 그로 인한 기본권 제한이라는 비용을 능가할 때에는 그 법률이 합헌”이라고 주장을 했다. 이익 계량 및 판단의 기준, 인권 침해 가능성의 용인 등 이후 논란의 소지를 낳을 수 있는 대목이다.

분과별 논의는 다채로워

한국노동경제학회(회장 배진한·충남대)에서는 이찬영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이 ‘임금근로자의 하향취업 행태 및 일자리 이동’을 발표했다. 임금근로자의 하향취업 여부와 임금 변화, 일자리 이동 추이 등을 6년의 간격을 두고 추적 조사한 논문이었다. 이직에도 불구하고 임금상승은 미비했지만, 하향취업이 줄었다는 분석은 흥미로웠다. 하향취업 여부는 노동자들의 주관적 설문 평가에 의해 측정됐는데, 노동시장의 사정에 노동자들이 차츰 적응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 한국사회보장학회(회장 김원식·건국대)의 김수완 강남대 교수는 ‘노동시장 양극화가 사회보험 배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발표, 민감한 현실을 사회보장적 관점에서 고찰했으며, 한국환경경제학회(회장 이광석·성균관대)의 김효선 한국가스공사 가스경영연구소 연구원은 ‘탄소배출권 경매할당의 방법론에 대한 효율성 비교’를 발표, 환경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이라는 최근의 화두를 짚어보았다.

이처럼 다양한 논문을 일별할 수 있다는 점은 공동학술대회의 이점임에 분명하다. 학계의 성과를 한 눈에 파악할 수도 있었다. 이를 두고 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은 이종원 교수는 “미국처럼 우리도 경제관련 학회가 함께 모여서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하는 풍토가 정착됐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단지 수많은 학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점만으로 점수를 주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아 보인다. 일반적으로 공동학술대회의 본래 취지는 학계가 공동으로 논의하고 대응해야 할 사안에 공력을 모은다는 점에 있다. 이번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의 경우, 그 공동의 관심사가 경제위기에 대한 진단과 대책이라는 점은, 조직위원회 자체가 명시한 바 있다.

문제는 바로 그 취지가 개별 학회의 발표 논문과 분과별 회의에서는 유명무실했다는 점이다. 전체회의에서 발표된 밋밋한 논문 몇 편을 제외하면, 별다른 논의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동경제학에선 경제위기와 고용불안 문제가, 환경경제학에선 경제위기가 환경 문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법경제학에선 경제위기를 빌미로 법인권적 상황이 악화되는 현실에 대한 논의는 애초에 무리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참석한 학자들은 공동학술대회 주제나 전체회의에는 무관심한 모습을 보였다. 전체회의 참석자는 50명 안팎이었고,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자신이 속한 개별 학회에만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다보니 “난 내가 속한 학회에만 잠시 참석했을 뿐이고, 전체적으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심지어 조직위원회 측에서 제공하는 전체회의나 다른 학회의 발표 논문도 읽어보지 않은 경우가 상당수였다. 공동학술대회의 ‘공동’이 시간적, 공간적 동일성만을 의미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정성기 경남대 교수(경제학)는 “학파나 개별 학회를 떠나서, 학자라면 나서야 하는 사안이라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한다”면서 공동학술대회는 물론이고 학계 전반의 풍토를 꼬집었다. 정 교수는 한국사회경제학회(회장 이병천·강원대) 분과회의장에서 국책연구기관의 경제성장률 전망치 조작설 등에 적극 대응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학회별 총회를 공동학술대회에서?

이처럼 경제위기에 대한 공동의 논의가 부재한 자리를 대신한 것은 각 학회의 총회였다. 이번 공동학술대회에서 각 학회들은 발표 중간이나 말미에 학회별 총회를 개최했다. 그로인해 발표나 토론 시간이 줄어든 것은 당연했다. 심지어 발표 앞뒤로 임원 인준 서명지등을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래도 총회 중심으로 시간표가 돌아가고, 발표에 대한 집중도나 긴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모처럼 모인 자리에서 총회를 개최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순 없다. 문제는 학회별 총회를 굳이 공동학술대회에서 개최해야 했던가 하는 점이다. 이 땅의 경제학 관련 학회들은 학회들이 공동으로 모인 자리가 아니면 총회를 열 여력이 없는 걸까. 10년전 경제위기가 닥쳐왔을때, 많은 사회과학자들에게 퍼부어졌던 “학계 전문가들은 무얼 하고 있었냐”는 비난의 시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규모 행사를 진행하는 어려움을 모르지는 않지만, 경제위기의 구체적인 대책에 그만큼 정성이 할애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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