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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2년도 연례학술대회 ‘식민지근대화론의 재검토-학제적 심포지엄'
[학술대회]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2년도 연례학술대회 ‘식민지근대화론의 재검토-학제적 심포지엄'
  • 권진욱 기자
  • 승인 2002.03.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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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05 00:00:00
일제 강점의 손익 대차대조표는 어떻게 될까. 근대화의 원동력은 이전부터 자본주의적 맹아로서 내재한 것인가. 아니면 일제 식민지나 세계자본주의의 주변부로서 수혈받은 것인가. 전자의 ‘수탈론’이 역사학계의 전반적인 경향인데 반해 후자의 ‘식민지 근대화론’은 안병직 교수를 위시한 경제학계의 일반적인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주최로 2월 16일 이화여대에서 있었던 연례학술대회 ‘식민지 근대화론의 재검토: 학제적 심포지엄’은 1990년대 이래 전개된 식민지 근대화 논쟁의 ‘중간결산’의 자리였다. 이번 토론은 논쟁의 재개와 인근학문 전공자의 입장 표명이 기대됐으나 새로운 불씨를 지피기보다는 재점검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현재 식민지 인식 지형은 ‘삼분법’

가장 먼저 ‘식민지 근대화론의 논리전개’를 발표한 정태헌 고려대 교수(역사학)는 근대화론과 수탈론을 삼분법을 제시했다.<도표 참조>과거에 이영훈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등과 식민지 근대화 논쟁을 벌인 바 있던 정 교수는 ‘하여간 빼앗아 갔다’는 식의 원시적 수탈론과 ‘그래서 잘 살게 됐다’는 식의 경제성장론(근대화론)은 근친관계임을 주장하면서 “근대화론은 민주화를 추동한 저항적 인간군은 평가절하하고 ‘황국신민’형 인간군을 상정하는 보수적 이론”이라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한국사학계가 민족주의적 가치에 대한 옹호가 지나친 나머지 식민지 시대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호도하고 있다는 일각의 시각에 대하여 답변하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비판은 한국사 연구에 대한 역사학계의 성과를 ‘민족주의 담론’이므로 배타성, 폐쇄성을 갖고 있다는 식의 주장이기 때문에 담론의 범주와 대상이 모호하다고 반박했다.

이날 가장 첨예한 논쟁거리를 제공한 사람은 ‘개발과 수탈-한국과 인도’를 발표한 박섭 인제대 교수(경제학)였다. 박 교수는 제국주의 국가는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개발을 택하되 식민지 개별의 조건에 따라 다른 결과가 산출된다는 의견을 개진하여 발표자들로부터 식민지 근대화론의 개정판이 아니냐는 식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특히 이날 참석한 김기승 순천향대 교수(역사학)는 경제성장(경제변동) 일변도의 분석이 과연 식민지사회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는가 하는 방법론과, 수탈은 생산의 개념, 착취는 소비의 개념이므로 양립가능하다는 논리의 타당성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제국주의가 이윤극대화 추구를 위해 식민지를 개발했는가에 대해 사례 분석을 했을 뿐 제국주의 국가에 의한 식민통치가 바람직하다는 논리의 일반화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 ‘일본의 제국주의와 식민지 조선의 근대적 참정’을 발표한 김동명 국민대 교수(정치학)는 문화통치의 본질은 3·1 운동 이후 회유를 통해 지배를 추구하는 일제와 근대적 문명의 도입을 추구하는 조선인 사이의 ‘바게닝’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문화통치는 권력을 이양한 쪽과 분점받은 쪽 모두에게 불만족스러운 결과였다고 분석했다. 또한 김용직 성신여대 교수(정치학)는 ‘1920년대 민족주의 언론의 반패권 담론 전개에 관한 소고’를 중간발표 형식으로 선보였다. 김 교수는 이 논문을 통해 총독부와 좌익 사회주의 진영, 전통적 유교 지식인 진영의 틈바구니에서 우익 민족주의 진영의 담론이 어떻게 문화주의와 민족자치론이라는 얼굴로 계몽주의, 자유주의의 색채를 가지고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됐는가를 실증적으로 검토했다. 이 논문은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언론이 보인 근대화론이 1920년대에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급변하는 총독부의 식민지정책의 변화와 사회세력의 압력 사이의 기회주의적 줄타기이자 저항과 순응 사이의 위험한 정체성의 줄타기였다고 간주했다.

이번 학술대회의 핵심은 단연 ‘개발’과 ‘수탈’이었다. 김용직, 김동명 교수의 발표에서 나타난 논의는 우익 진영이 보인 문화통치와 민족개량 노선의 한계에 대해서는 별다른 파고가 없이 진행됐다. 반면 경제학계의 식민지 근대화론 성향 및 경제변동 중심주의와, 역사학 전공자들의 수탈론 성향 및 다변화된 방법론 사이에서는 좁혀지기 힘든 간극이 다시금 확인됐다. 이처럼 개발이냐, 수탈이냐 하는 성격규정이 다른 데에는 학자마다의 개념정의가 천차만별인데다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주된 접근방식이 갖는 근원적인 차이가 그대로 반영됐기 때문이었다.

한국사학과 경제사학의 근원적 차이 드러나

따라서 ‘수탈’, ‘개발’, ‘근대화’ 등 기본적 개념에 대한 조작적 개념규정과 진정한 학제상호간의 이해가 우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치학, 사회학, 철학, 문화이론 등 인근학문이 대립하는 두 입장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거나 식민지 사회 내에서의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담론 체계의 전개과정과 연관된 새로운 생산적 논의를 유발하지는 못해 많은 아쉬움이 남는 자리였다. 하지만 ‘학제적 심포지엄’이라는 부제대로 다양한 전공자들이 참석해 각자 영역에서의 연구성과를 나누고 한계를 확인하는 자리였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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