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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독일: 군대·전쟁·국가폭력에 대한 역사학적·사회학적 연구
[해외통신] 독일: 군대·전쟁·국가폭력에 대한 역사학적·사회학적 연구
  • 신진욱 / 독일 통신원
  • 승인 2002.03.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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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22 14:47:11
근대의 역사 속에서 군대·전쟁·국가폭력은 사회들과 개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힘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런 주제들은 이제까지 학적 탐구의 대상으로서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못했다. 독일의 역사학 저널인 ‘군역사 저널’은 이 점에서 하나의 중요한 예외를 이룬다. 지난 2년 동안 이 잡지에 수록된 논문들 중 몇 가지 흥미로운 것들이 있다.

전쟁 기억의 공식화 문제 삼아

독일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볼프강 몸젠은 ‘1차 대전에서의 전쟁의 일상과 전쟁 체험’(통권 59호, 2000)이라는 논문에서 전쟁 이데올로기와 전쟁 체험 사이의 간극과 모순을 다루고 있다. 몸젠은 먼저 1차 대전기에 독일에서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지식인·예술가·작가들이 전쟁의 찬미와 정당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의 지성사적 연구들에 의하면, 실제로 베버, 짐멜, 셸러 등과 같은 이 시기 독일 지식인들은 전쟁 체험을 통해 자본주의적 근대문화의 병리들을 극복하는 영웅적이고 공동체적인 가치들이 생성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몸젠에 따르면, 실제적인 전선의 일상 속에서 이와 같은 전쟁 이데올로기는 즉시 모든 의미를 상실하게 됐다. 군인들이 체험한 전쟁이란 자본주의적 일상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간’의 탄생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그것은 단지 끔찍함, 공포, 불안 그리고 생존을 위한 몸부림 이상 아무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전쟁을 미학적으로 승화시키고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들은 실제적인 전쟁 체험과 날카로운 대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쟁 체험으로부터 전쟁에 대한 ‘기억’이 곧바로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근본적으로 상징적 재구성의 산물이며 언제나 현재의 시간 속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케르스틴 폰 링엔의 ‘전쟁 기억의 구성’(통권 59호, 2000)은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관찰을 보여준다. 그의 연구테마는 한 전범재판에 관한 것이다. 1947년 베네치아에서는 2차 대전시 독일군 야전사령관이었던 알베르트 케셀링에 대한 전범재판이 열렸다. 이 재판은 결국 케셀링의 석방으로 마무리됐는데, 바로 그의 석방이 상징하는 ‘전쟁기억’의 논리와 구성과정을 분석하는 것이 저자의 목표이다. 저자가 케셀링 재판에서 관찰한 것은 독일사회의 공식적 전쟁기억, 즉 ‘깨끗한 군’이라는 신화이다. 독일군은 그리스, 폴란드, 이탈리아 등을 점령한 기간 동안 수많은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신화는 독일군을 범죄의 역사에서 지워준다. 독일이 저지른 침략과 학살은 히틀러와 나치들의 소행이며, 독일의 군대는 단지 이들에 의해 오용됐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화는 특정한 사건에 대한 기억을 첨예화하고 다른 사건들을 기억으로부터 추방해 전쟁 기억을 공식화한 것이다.

보호와 통제의 양면성 지적하기도

한편 에버하르트 뎀은 ‘1차 대전 시기 독일의 아동들: 프로파간다와 사회보호 사이’(통권 60호, 2001)에서 1차 대전기 독일 학교에서의 교육내용과 국가적 아동보호제도들을 분석한다. 저자는 19세기말 이래 독일의 유치원과 학교에서 군사주의적 교육이 지배적이었음을 확인하고 있다. 아동들에게 강조됐던 덕목과 가치의 핵심적 표제어들은 복종, 권위, 질서, 희생의무 등이었다. 1차 대전의 발발과 더불어 이러한 군사주의적 교육들은 수업교재, 동요, 동화, 전시회 등의 매체를 통해 더욱 정밀화됐다고 한다. 한편 전쟁시기 많은 여성들이 군수산업에 동원됨과 더불어 많은 아동문제들이 생겨나게 됐다. 아동범죄 증가나 방과후 아동들을 보살펴 줄 사람이 없다는 문제 등이 대표적인 것이었다. 이에 국가는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하는’ 많은 사회보호 제도들을 발전시키게 되는데, 저자는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전시제도들이 현대 복지국가의 발전에서 하나의 획기적 진전을 이루게 됐다고 말한다. ‘보호와 통제’라는 복지국가의 양면성은 戰時 아동보호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신진욱 / 독일 통신원·베를린자유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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