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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의 생각] 새로운 생명을 향한 자연의 시스템
[생물학자의 생각] 새로운 생명을 향한 자연의 시스템
  • 오상진 전남대·생명과학
  • 승인 2008.12.23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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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의 가장 큰 특징은 번식을 통해 자신의 자손과 유전자를 가능한 널리 퍼뜨리는 것입니다. 또 한정된 수명을 가지며 죽음을 맞이해 그 자체를 이루고 있던 구성요소가 자연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구성요소는 다시 새로운 생물에 사용됩니다.

개체가 지니는 육체는 사라지지만 그들이 지니는 유전자(DNA)는 영원히 끊이지 않고 자손을 통해 이어 내려갈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리처드 도킨스 같은 학자는 생물이 지니는 육체에 대해 DNA를 보존하고 자손에 전달하도록 고안된 운반체 즉 ‘생존기계’로 비유한 바 있습니다. 죽음은 새로운 생명을 가능케 하는 자연의 시스템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죽음을 연구하기 위해 평균수명 이전에 성인병으로 인해 죽음을 빨리 맞게 되는 ‘조로증’은 인간의 수명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조로증’ 중의 하나인 워너증후군(Werner syndrome)의 경우에 그 원인 유전자가 밝혀졌는데 그것은 바로 헬리카제(helicase)였습니다. 헬리카제는 DNA의 이중나선을 풀어주는 기능을 하는 효소입니다. 이 효소는 DNA의 복제, 손상된 DNA의 수선, DNA 이중나선이 풀어져 전사가 일어나 단백질이 만들어 질 때 이와 같은 반응들이 가능하도록 해줍니다.

헬리카제의 역할은 특정 세포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생물의 모든 세포의 근본적인 기능에 관여하기 때문에 한 효소의 잘못된 기능은 신체 전체에 퇴행을 초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워너증후군의 예로 볼 때, 노화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가 그렇게 많을 필요가 없음을 추측케 하는 부분입니다.

동물이 최대한으로 생존할 수 있는 한계수명은 종(species)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이것은 최상의 삶의 환경에서도 쉽게 극복될 수 없는 ‘한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체중이 가벼운 동물일수록 체중에 대한 체표면적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체온을 빨리 잃게 되고 이것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체내의 대사율이 높아지게 되며 몸무게가 큰 동물일수록 단위체중당 대사율은 작아지게 됩니다. 대사율이 높을수록 생성되는 활성산소는 증가하기 때문에 활성산소의 해로운 영향으로 인해 수명은 짧아진다는 것입니다.

생물 각 부분은 기관과 조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들은 모두 많은 세포들이 모여 구성됩니다. 세포의 노화는 곧 기관과 조직의 기능을 상실케 하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개체의 노화를 초래하게 됩니다. 레오나드 헤이플릭은 모든 세포들은 종에 따라 정해진 횟수만큼 분열하며, 오래 사는 동물의 세포의 경우 더 많은 횟수의 분열을 할 수 있음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최대 분열횟수에 도달하면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현상을 일컬어, ‘헤이플릭의 한계(Hayflick's limit)’라 부릅니다.

죽음이란 개체를 구성하는 수십조의 세포기능이 정지됨을 의미하며 이와 같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노화’ 또는 ‘노쇠’라 부릅니다. 노화는 개체노화와 세포노화로 나뉘는데 많은 실험들을 통해 세포수준의 노화가 축적돼 개체수준의 노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세포의 노화와 죽음 현상은 매우 복합적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한 번에 설명할 수 있는 보편적 이론은 존재하지 않으며 수백 가지의 이론이 존재하는데, 여기서 대표적 이론 세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프로그램설입니다. 프로그램 설은 생명체가 포함하는 DNA에 수록된 프로그램(계획표, 예정표)에 따라 늙어가 궁극적으로는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프로그램 설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으로 텔로미어설이 있습니다. 텔로미어란 염색체의 끝부분에 존재하는 반복적 염기서열을 말합니다. 사람의 경우 6개의 염기서열, TTAGGG 염기쌍이 염색체 말단에 수천 번 반복돼 배열돼 있으며 세포분열이 진행되면서 텔로미어 길이는 매번 일정한 길이씩 짧아지게 되고, 텔로미어가 일정한 길이 이하로 짧아지게 되면 세포의 분열은 멈추게 되고 결국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텔로미어는 세포의 분열 횟수를 기록하는 ‘세포분열 시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짧아지는 텔로미어를 원상복구 할 수 있는 효소를 발견했는데 이것은 ‘불멸화 효소’로 불리는 ‘텔로머라제’입니다. 텔로머라제는 보통의 체세포에서는 억제돼 그 활성을 찾을 수 없지만, 생식세포와 줄기세포, 그리고 암세포 등에서는 그 활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들 세포는 지속적으로 분열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환경설이 있는데, 환경적 위해요인들에 대한 생체의 반응에 따라 다시 여러 가지로 나뉩니다. 기계를 오래 사용하면 고장이 나듯이 우리 몸의 세포나 조직의 중요 부분도 오랜 세월 사용되면서 마모돼 버린다는 ‘마모설’, 유해산소의 발생으로 세포손상이 초래된다는 ‘활성산소설’,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누적돼 세포의 기능을 저하시킨다는 ‘돌연변이설’ 등 매우 다양합니다. 활성산소(유해산소)는 주로 세포의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를 만들 때 부산물로 발생하며, 이 밖에도 방사선이나 자외선을 쬘 때, 면역세포의 작용, 염증작용, 약품 및 공해 등에 의해 발생하는데, 만들어진 활성산소는 DNA 염기를 공격하며, 과산화지질을 형성하며, 단백질이나 아미노산을 산화해 효소의 기능을 저하시킵니다.

세 번째 이론은 유전자의 다면성(pleiotropy)이론입니다. 우리의 유전자 가운데 생명의 초기 단계에서는 이익을 주지만 후기에는 해로운 영향을 주는 유전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이 유전자의 경우 초기에 주는 유익함이 후기에 나타나는 유해함보다 크기 때문에 자연선택에서 남아있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죽음은 생명체 내부의 유전자들에 의해 이미 규정이 돼 있을 뿐 아니라 생명을 둘러싼 환경요인들의 영향도 받음으로써 완전히 자연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죽음은 결국 하나의 종이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낡은 몸의 원기를 되찾게 하는 생명의 법칙인 셈입니다.

오상진 전남대·생명과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미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체노화』, 『알기쉬운 바이러스』 등의 주요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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