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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점투성이 ‘자율기재’… 검증 절차 없어 정확성 논란 불거져
허점투성이 ‘자율기재’… 검증 절차 없어 정확성 논란 불거져
  • 최성욱 기자
  • 승인 2008.12.15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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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보공시제, 왜 ‘잡음’ 끊이지 않나

대학정보공시제가 시행 2주 만에 순기능을 홍보하기는커녕 되레 무관심조차 걱정해야할 판이다. 비교검색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정확성이 의심되는 자료가 많기 때문이다.
교육 수요자들은 △알 권리 보장 △대학의 투명성 제고 △학술·연구 진흥이라는 대학공시제의 순기능을 믿고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인가.

현행 대학정보공시제는 대학 운영 전반에 관해 총 13개 항목, 55개 내용에서 대학별 정보공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시행 엿새 만에 대학공시제에서 터져 나온 문제는 10여 가지가 넘는다. 교외장학금 누락에 따른 일부 대학의 조직적인 공세에 시행 3일 만에 서비스가 잠정 중단되는 사태를 맞기도 했다. 입력 담당 교수의 실수로 드러난 이화여대 ‘성적 평가’ 논란, 1학기치 자료 입력으로 물의를 빚은 ‘연간’ 등록금 기재, ‘모집인원’항목에 자료 제출조차 방기했던 22개 대학의 무관심 등은 대표적이다.


대학정보공시제가 시행 초기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대학마다 ‘직접 입력’하는 부문에서 공정성 시비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대학 알리미에서 공시하는 정보의 출처는 대부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한국교육개발원, 한국학술진흥재단, 한국사학진흥재단,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학자금대출신용보증기금 등 6개 대학유관기관이다. 문제가 된 성적평가 결과와 등록금 현황 등 9개 항목, 20개 내용은 대학이 직접 입력하면, 별다른 검증절차 없이 그대로 공시된다.

대학은 ‘입력 상에 오류가 있었다’는 시행 초기 면피 사유를 적절히 활용하며 대학입시전략의 일환으로 대학정보공시제를 악용하고 있다. 직접 입력 항목에는 △강좌당 학생수 △교원 강의 담당 비율 △산업체 경력 전임교원  현황 등 대학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항목들이 즐비하다. 대학은 유·불리를 따진 후 ‘자율적 기재’가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일부 대학은 최소한 직접 입력 항목에서만큼은 최대한의 효과를 내기 위해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솔직한 대학만 된서리’를 맞는 상황도 발생한다.

‘직접 입력’ 항목 가운데 ‘위반내용 및 조치결과’ 기입란은 대표적이다. 교육관계법령이나 학칙을 위반한 사항에 대한 기재를 대학의 자율에 맡기고 있는데 이 또한 검증절차는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대학은 짜 맞춘 듯 대외적으로 잘 알려진 한두 가지 사항만을 기입하고 있다. 유독 눈에 띠는 인제대의 경우 여타 대학의 10배에 가까운 21가지 위반·조치사항을 기입해 ‘상대적으로 비리사학’이라는 인식마저 불러일으킨다. 대학은 ‘직접 입력’을 ‘자율 입력’이라고 재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위반·조치사항에서 지적 내용이 누락될 경우, 가끔 고발이 들어오긴 한다. 하지만 사전에 검증할 수 있는 인력마저 부족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대학정보공시제가 ‘대학자율공시제’로 변질되고 있는 현실에서 관계법령은 무력하다. ‘교육관련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 제10조 1항에 따르면 “교과부장관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공개하는 기관의 장에게 시정 또는 변경하도록 명령하여야 한다.” 만일 시정·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고등교육법’ 제60조 2항에 따라 “교과부장관은 그 위반행위를 취소 또는 정지하거나 당해 학교의 학생정원 감축, 학과 폐지, 학생 모집정지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엄격한 법령이 마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무관심과 오용이 빈발하는 데 대해 우명숙 교과부 대학정보분석과장은 “대학정보공시제의 주체는 ‘대학’(고등교육기관)”이라며 “법령이 엄격하지만 200개가 넘는 대학의 직접 입력 항목을 일일이 따져볼 수 없다”고 인력난을 호소한다.

교과부는 예고된 혼란을 뒤늦게 수습하겠다고 나섰다. 지난 11일까지 각 대학에 수정·보완 지시를 내리고, 이번 주부터 대학 현장실사단을 파견해 보완점을 강구할 예정이다. 하지만 시정·명령을 내릴 대학과 실사단을 파견할 대학에 대한 뚜렷한 선정 기준이 없어 ‘임의실사’가 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특정 대학이 시정·명령 조치를 받을 경우 형평성 논란을 재점화 시킬 우려가 있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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