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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와 위키, 50명이 쓰는 보고서를 ‘하나’로 묶어주다
블로그와 위키, 50명이 쓰는 보고서를 ‘하나’로 묶어주다
  • 최성욱 기자
  • 승인 2008.11.17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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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2.0시대, 티칭2.0을 아시나요

과제 제출 시간이 임박했다. 도서관 컴퓨터는 이미 만원이다. 미래대 3학년 나열심(가명) 양은 다급한 마음에 가방을 뒤적인다. 핸드폰을 꺼내든 나 양은 무선 인터넷에 접속한다. 1분 1초가 늦을 새라 메일에 저장된 과제 파일을 인터넷 수업 게시판에 옮겨 넣는다.
웹2.0시대,‘ 이-편한’ 세상에 대한 감상에 젖어 있는가. 아니면 모든게 간편해진 세태에 혀 찬 한숨만 늘어놓고 있는가. 그 시간만큼 교수와 학생의 간극은 벌어지고 있다.

오프라인 세계를 살아온 교수들과 온-오프라인으로 양분된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 어쩐지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은 아니다. 교수와 학생들은 강의실 안팎에서 서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학문 전달 창구인 교수법에서도 온-오프라인 분절현상은 뚜렷하다. 웹2.0, 러닝2.0, 이-러닝2.0 등등 사이버강의의 여러 방법론들이 속출하는 과정에서 벌이는 교수들의 ‘各個戰鬪’는 그야말로 ‘孤軍奮鬪’.
웹2.0세대로 지칭되는 요즘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교육하기 위해서 교수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수업 게시판을 개설한다. 학생들이 게시판에 파일로 과제를 올리면 교수는 날짜와 시간을 1차 점검한 후 내려 받는다. 수강 인원이 많은 수업이면 마우스 스크롤바가 정신없이 돌아가기도 한다.

웹2.0 학습에서 토론이 강조되다보니 교수들은 게시판 댓글에 의존한다. 온라인도 수업의 연장이니 평가에 반영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연구실로 돌아와 접속해 보니 댓글이 풍성하다. 하지만 다닥다닥 붙여진 댓글을 올려진 시각만 보고는 맥락을 알 수 없으니 학생 개개인의 역량과 진정성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온라인에도 고스란히 옮아간 교수와 학생간의 ‘어색한 遭遇’에 김도헌 진주교대 교수(교육학과)는 ‘티칭2.0’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무기는 블로그와 위키 단 두 가지다.

블로그는 여느 이-러닝 교수법에서도 흔히 활용되는 주요한 수단이지만 김 교수의 지론은 남다르다. “모든 구성원에게 공개되는 인터넷 게시판은 특성상 맹점이 많아요. 특히 첫번째로 올리는 학생의 의견은 다음 학생들에게 굉장한 영향을 줍니다.” 김 교수는 ‘튀는 의견’이 부각되길 꺼리는 학생들의 심리가 획일적인 의견 개진을 조장한다고 말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트랙백 프로그램(원격 댓글 장치)을 이용, 교수 블로그와 학생들의 개별 블로그를 연결시켰다. 학생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그 즉시 교수의 블로그에도 축적되는 원리다. 티칭2.0의 1차 목표인 ‘자기주도형 학습’의 시작이다. 하지만 개별 블로그를 통한 자기주도형 학습은 결과적으로 티칭2.0의 핵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초다지기에 지나지 않는다.

웹2.0시대가 주목받는 이유는 파편화돼 가는 현대사회에서 역설적이게도, 집단지식의 필요성을 증폭시키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웹2.0의 특성을 ‘티칭2.0’ 교수법에 고스란히 가져온다. “티칭2.0은 ‘자기주도적 참여형 협력학습을 어떻게 촉진시킬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하나의 방법입니다.” 김 교수는 별다른 의심 없이 활용하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도출된 문제점인 △동조화 압력(개인에게 가하는 집단의 압력) △군집현상(학생들이 비슷한 전략을 택함) △정보 연쇄 파급 효과(자신보다 타인의 의견에 의존하려 함) 등 ‘집단사고의 덫’을 경계한다.

김 교수는 공동 편집이 가능한 ‘위키’ 방식(온라인 상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방식)을 도입하고, 수강생 전원이 함께 하나의 보고서를 만들게 한다. 낯선 수업환경인 만큼 김 교수는 명확한 방침을 제시한다. 우선 학생들이 수행할 집단 보고서에 교수가 서론, 본론, 결론 부분에 대강의 항목을 던져주면 학생들은 각자 가장 흥미 있는 항목들을 채워나간다. 이때 인용을 정확히 하고, 참고한 부분에는 링크를 걸어두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학생들이 자의적 판단에 따라 주제를 추가시켜도 무방하다. 보고서의 구조나 제재, 순서 등을 누구나 임의로 조정할 수 있다. 복구가 가능하니 다른 학생이 올린 글을 삭제하거나 고쳐주기도 한다. 활동내역은 모두 축적·저장돼 평가에 반영한다. 협업화된 학습을 통한 공동의 지식 구현이 집단 보고서의 최종 목적이라고 말하는 김 교수는 “여러 학생들이 자기중심적이면서도 분산된 방식으로 공동의 문제를 풀어갈 때 오히려 올바른 해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다.
집단지식의 구현을 목적으로 하는 블로그나 위키 방식의 수업은 집단창작 수업이 필요한 문학과목이나 세계 각국의 여행정보, 지형 등을 수집하는 관광학과, 지리학과 등의 수업에서 용이하다.

블로그는 지난해에 시작했고, 위키 방식은 이번 학기가 처음이라 시행착오도 많다. 일부 학생들의 집단 보고서나 블로그에 “내가 왜 이렇게 소모적인 일을 해야 하느냐”는 투의 볼멘소리도 보인다. 반면 기대 이상의 ‘오지랖’(?)을 발휘하는 학생도 있어 김 교수는 고민이다. “티칭2.0에서 ‘분산과 통합’은 중요한 교수법인데 50명이 개별적으로 쓰는 ‘하나의’ 보고서에서 자연스러운 통합을 이끌어낸다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웹2.0 교육방식에 대한 실효성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미국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미국 고등교육 학술지「인터넷앤드하이어에듀케이션」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교수들은 블로그나 위키 방식을 활용하는 교수법에 대해 20~40%만이 긍정적으로 검토한다고 밝혔을 뿐, 60% 이상의 교수들이 ‘사용 계획 없다’고 응답했다. 강의에서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응답은 5%에도 못 미쳤다. 이처럼 웹 환경을 실제 교수법에 적용하는 데 대해 교수들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김 교수의 의지는 확고하다. “학생들은 웹2.0환경에 익숙한 채로 대학에 진학하는데, 교수들이 변화에 소극적이라면 학생들의 학습방식과 교수법간의 격차는 한층 더 심화될 것입니다.”
아직은 서로 불편한 점이 많아 학습효과에 의문이 들 때마다 김 교수는 자기 다짐과 함께 학생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너희들은 최근의 웹 환경에 대해 배워봤자 아이들을 가르치는 때가 되면 무용지물일거야. 지금은 막연하더라도 미래지향적인 자세로 수업에 임하도록!”
다시 돌아가 보자. 웹2.0시대의 주역, 나열심 양. 불확실성 시대의 주역이기도 하다. 이들은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하며 오늘도 강의실을 들어선다. 그리고 인터넷을 켠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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