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55 (금)
[해외통신] 독일 : 하버마스의 평화상 수상이 주는 메시지
[해외통신] 독일 : 하버마스의 평화상 수상이 주는 메시지
  • 이상섭 / 독일통신원
  • 승인 2002.03.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2-03-22 14:59:55
이상섭 / 독일통신원·보쿰대 박사과정

지난 10월 14일 독일출판협회가 주는 평화상을 받는 자리에서 ‘독일연방공화국의 철학자’로까지 인정받은 하버마스는 “믿음, 인식-열림”이라는 주제로 수상연설을 했다. 이 연설을 통해 하버마스는 세계관의 다원화가 어떤 의미에서 거북하기도 하지만, 또한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인 현대사회에서의 종교 및 신앙의 진리의 존립방식과 위상에 대해 논의했다. 이 연설에 대해 독일의 유력한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의 최근호는 ‘철학’이라는 칼럼에서 짤막하나마, 도발적으로까지 비쳐질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즉, 수상연설이 함축하고 있는 종교적인 경험에 대한 존중이 ‘형이상학이후의 사유’에 대한 심문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끊임없이 ‘형이상학으로의 회귀’에 대해 경고했던 하버마스 본래의 사상과 배치되지 않는가라는 의심이다.

사실 신앙과 이성, 양자중의 어떤 하나를 다른 하나로 환원시키지 않고 종합하려는 시도는 서양철학의 오래된 과제중의 하나이다. 자연과학과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상응하는 신앙에 대한 이성의 우위가 두드러지는,-베른하르트 벨테의 말을 빌리자면 종교적인 경험에 관한한 허무주의로까지 특징지워질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오히려 이성에 대한 종교적인 믿음의 위상이 문제가 된다.

하버마스의 수상연설의 배경에는 생명공학을 둘러싼 교회와 자연과학자들의 대표자들간의 논쟁과 세계화시대에 “마치 세속화된 사회의 심장부에 종교적인 현이 울리게 한 듯한” 9월 11일의 테러사건이 놓여있다. 급격한 현대화에 의해 뿌리뽑힌 이슬람세계 사람들의 전통적인 문화와 현실 사회의 비동시성과 괴리, 이는 다시 종교와 국가의 분리로 표현되어지며, 바로 여기에서 하버마스는 종교적 근본주의의 원인을 보고 있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아직 완결되지 않은 서구사회의 종교의 세속화과정에도 이러한 갈등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생명공학을 둘러싼 논쟁이 그것의 표현이다.

수상연설에 따르면 종교의 세속화 과정은 종교의 권위가 세속적인 국가권력을 통해 순화 내지는 계몽된 것으로도, 전자가 후자에 의해 부당하게 탈취된 과정으로도 이해해서는 안 된다. 세속화의 과정을 통해서 종교는 다원화된 세계관을 가진 사회내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한 숙고를 해야만 한다. 즉, 종교는 타종교에 존중을 보여야 하며, 자연과학의 권위 및 헌법국가의 전제들을 인정해야 하며, 이러한 반성을 통해 종교 또는 신앙인들은 “자신의 신앙의 진리를 폭력적인 수단을 통해서 타인에게 관철시키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다원화된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근거”를 추구한다. 이러한 노력은 “종교적인 신념을 세속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에 상응하는 일이며, 이를 통해서 “부당하게도 종교가 공적인 삶의 영역에서 추방되지 않을 것이다.” 종교는 세속화된 사회의 도덕적 기초의 근원이며, 중요한 “의미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디 차이트 誌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초월적인 조건들이라는 의미의 어떠한 기초짓기나 정당화”를 요구하지 않는 “의사소통행위이론”에서의 하버마스와 종교를 궁극적으로 세속화된 사회의 도덕적기초로써 혹은 “의미의 원천”으로 인식하고, 더 나아가 정치적인 담론에서 “결정을 유예시키는 거부권”을 종교에 부여하고, 인간배아복제문제와 관련해 “창조자와 피조물간의 절대적인 차이”를 언급한 수상연설의 하버마스사이에는 단절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하버마스가 “형이상학이후의 사유”에서도 “유럽인으로서…유대/기독교적인 근원을 갖는 구속사적인 사유의 실체를 체득하지 않고서는, 도덕, 윤리, 인격 그리고 개별성, 자유와 해방과 같은 개념들을 진지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믿음을 피력함으로써 현대사회의 중요한 가치들의 종교적인 근원을 인정하고 있지만, 동시에 ‘종교’와 ‘형이상학’의 관계와 관련해, 종종 양자가 동일한 반성적인식의 단계에 있는 듯이 말을 하곤 했기 때문에, 종교의 위상에 대한 강조는 그가 비판하고자 했던 ‘신보수주의자’들의 입장을 취한 것이라는 의심이 전혀 근거가 없다고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연설을 통해서 하버마스가 자신의 “천여장에 이르는 주저작을 삭제”해 버렸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수상연설이 행해진) “바울교회로부터 전해진 메시지”라는 주장이 타당한지는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