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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시공간의 행위예술
[나의 강의시간] 시공간의 행위예술
  • 박여성 제주대·독문학
  • 승인 2008.10.2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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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과 텍스트과학에 바탕을 두고 응용인문학, 유럽지역학과 문화이론 분야의 수업을 하는 필자에게 소망이 있다면 올해는 작년보다 또 내년은 올해보다 더 영양가 있고 성실한 강의를 하는 것이다. 매 학기 반복되는 수업은 일상이지만 학자로서의 직업의식과 학생에 대한 봉사를 염두에 두면서 ‘나의 강의시간’을 네 꼭지로 짚어 보았다.

 

인문학 위기 시대의 인문학 수업
수업은 교수와 학생이 엮어가는 공동의 산출물임에도 교수는 간혹 지식을 통해 학생을  제압하려는 승리자로서 강의실을 나오려는 본능에 휩싸이기 쉽다. 그 배경에는 교수는 지식의 전달자이고 학생은 지식의 수용자라는 이분법적 커뮤니케이션 모델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영상매체가 난무하는 시대에 언어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인문학의 안간힘은 첨단 테크놀로지의 흐름까지도 소화해야 하는 이중의 압박을 받고 있는데, 바로 이 위기의 시대에야말로 ‘주도자와 추종자’ 그리고 ‘송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단절을 극복해야 한다.

정보를 넘어 지식으로
교수는 정보의 전달자가 아니라 수업을 성립시키는 모든 참여자들과 함께 지식을 구성하는 공동 주체이다. 구성주의 교육이론의 시각에서 풀어보자면, 강의란 모든 주체들 사이의 대화와 놀이를 통해서 創發하는 시공간의 예술이다. 수업이라는 과정에 동참하고 결과를 음미해야만 도처에 흩어진 정보의 조각들이 모습을 갖춘 정합적인 지식체계로 갈무리된다. 10년 전과 비교할 때 정보의 양은 수백 배 증가했지만, 학생들이 구가하는 지식의 양과 질은 진보는커녕 오히려 퇴보하지는 않았는지 걱정된다. 그것이 내가 시간적 압박과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1학년 수업부터 곧장 세미나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이다.

다매체 시대의 명암
인터넷 정보를 마우스로 오려붙이거나 심지어 웹사이트에서 구입한 과제물을 방지하기 위해서, 과제를 손으로 써서 제출하라는 주문에 학생들의 원성이 자자한 적이 있었다. 소소한 불평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지식을 진지하게 수련하려는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들은 자신의 텍스트를 적어도 한번은 숙고할 기회를 가졌다는 사실에 새삼 보람을 느낀 것 같았다. 또 다른 방안으로 이른바 다매체(멀티미디어) 교육이 강조되는데, 기존의 내용을 전자파일이나 PPT로 포장하는 기술적 가공만으로는 입체적인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진정한 다매체 수업이라면 시각(텍스트, 영상, 영화)은 물론 청각(음악), 후각, 미각 및 촉각을 총동원하면서 명실상부하게 온 몸으로 실천하는 오감의 세미오시스를 창출해야 한다.

교재
알다시피 인문학은 다양성을 존중한다. 잘 쓰인 교재는 많지만 한 학기 내내 특정한 교재 한 권으로만 진행하는 수업으로는 균형성과 다양성을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내 강의에는 주교재보다 참고교재의 양이 더 많다. 논문과 교재뿐만 아니라 강의 주제와 관련된 신간에 대한 조사와 다량의 독서가 필수적인데, 주요일간지의 주말 북 섹션을 활용한다. 교재에서 언급된 사례를 최대한 실제 상황에서 체험하려다 보니, 유럽지역학과 문화기호학 수업에서는 구글과 인터넷 방송, 다큐멘터리와 예술(음악, 미술, 영화)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직접 촬영한 사진이나 동영상도 다수 사용한다.

 

박여성 제주대·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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