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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成敗에 집착말고 적성 맞는 평생 직업 찾게 도와야”
“취업 成敗에 집착말고 적성 맞는 평생 직업 찾게 도와야”
  • 최성욱 기자
  • 승인 2008.09.29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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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취업지도 전담교수에게 듣는다

‘취업대란’의 시기를 반영하듯 취업정보 게시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학생의 얼굴이 무표정하다. 사진 : 최성욱 기자
서울의 ㄱ대 ㅂ 교수는 요즘 시름이 깊다. 꽁꽁 얼어붙을 거라는 하반기 취업시장 뉴스를 접할 때마다 TV 화면에 제자들의 얼굴이 스친다. ㅂ 교수의 제자들은 대부분 방송·언론계를 준비 하고 있다. “경쟁이 심해 힘들 텐데, 그나마 더 가능성이 있는 공무원 시험이라도 권해주고 싶지만 하겠다는데 굳이 꺾을 수 있나요… 지도교수로서 무책임함을 느낄 때도 많아요.” ㅂ 교수는 학생들 진로·취업지도가 고역이다.

지난 25일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2008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조사’에 따르면 4년제 대학생 정규직 취업률이 48.0%(전체 취업률 68.9%)로 집계됐다. 대학 졸업생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비정규직이거나 무직이라는 취업난의 굴레는 올해도 어김이 없다. 수년째 이어지는 대학가 취업난에다 연말부터 시행될 대학정보공시제까지 코앞에 닥친 대학 당국은 학생들의 진로·취업지도에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진로·취업지도 전임교수를 임용해 취업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대학들이 있어서 눈길을 끈다. 박찬수 건양대 취업매직센터장(교양학부)을 비롯 이종구 경희대 취업진로지원처 연구실장(교양학부)과 김정권 광운대 교수(교양학부)를 만나 진로·취업지도의 고충과 방향을 들어보았다.
“동네마다 파출소가 있지만 문을 두드리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경찰서나 법원의 문턱만큼이나 높지요. 순경들과 개인적인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박 센터장은 취업·진로 상담에서 학생들이 체감하는 교수 연구실을 ‘파출소’에 비유한다. 교수들은 “연구실을 늘 열어두고 있다”며 발길이 뜸한 학생들에게 답답함을 느끼지만 학생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쉽사리 찾지 않는다. 그러다 요즘 같은 취업시즌이면 중환자가 응급실을 찾듯, ‘벙어리 냉가슴’ 부여잡으며 졸업생들이 추천서 ‘한 장’ 쥐고 들이닥치기 일쑤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타는 속내야 십분 이해하지만 대신 앓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취업준비생들의 최대고민은 무엇일까. 교수들은 “정보가 부족하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지난 1997년 IMF 사태를 겪으면서 대학가에 몰아닥친 ‘취업 쓰나미’는 취업정보전쟁을 촉발시켰다. 당장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면서도 학생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 필요했던 대학들은 취업박람회나 설명회 등을 앞다퉈 개최해 왔다.

특히 대기업 인사담당자나 성공한 동문 선배를 동원한 취업설명회와 특강은 연일 만원사례. 학생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대학들은 취업특강을 확대해 옴니버스 형식으로 교과목에 도입하고 있다. “취업정보영역에서 활동하는 외부 강사들은 학교의 여건이나 학생들의 수준에 집중하기보다 대기업 입사 성공 스토리 위주로 가르칩니다.” 박 센터장은 학생들의 현실에 맞게 눈높이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도교수 면담의 심리적 문턱과 대기업 취업설명회의 주례사식 이야기에 지친 학생들은 주로 인터넷 취업정보사이트나 주변 친구들과 취업정보를 나눈다. “학생들은 개인적이고 주변적인 정보들을 통해 서로 옳다, 그르다며 일종의 ‘합의’를 봅니다. 주관적인 이야기들로 심리적 안정을 도모할 뿐이죠.” 박 센터장은 진로와 취업 지도를 학교에서 떠안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학생들은 대학시절 동안 전공 공부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사이의 딜레마와 싸워나간다. 힘들게 성취한 학문 성과가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에 맞닥들인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이 연구실장은 “진로·취업지도는 교육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단순히 취업에 성공했나, 실패했나에 집착할 게 아니라 적성에 맞는 평생의 일을 찾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늘어나는 대졸 신입사원들의 이·전직 현상에 근본 진단을 하는 것이 진로·취업지도의 핵심인 셈이다. 김 교수의 관심사도 다르지 않다. “대학 본연의 연구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기업과 연계가 가능합니다. ‘학문의 영역에서 취업하기’가 목표죠.”
김 교수는 자기소개서 첨삭 전문가로 학내에선 정평이 나 있다. 5백자 안팎의 자기소개서를 양, 구조, 질적인 측면에서 분석한다. 김 교수는 기술적 글쓰기의 비법을 “시간, 공간, 인간이라는 열전의 3요소”라고 귀띔한다.

“취업지도를 지도교수가 할 것인지, 교직원이 할 것인지, 외부강사가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대학마다 알아서 결정해야 합니다.”(김 교수), “전공 교수님들은 학생들과 연구하면서 진로지도를 하고, 취업지도는 전문성을 갖춘 우리가 하면 됩니다.”(박 센터장, 이 연구실장) 세 교수는 명확한 역할분담을 주문하는 한편 “학생 개개인에 대한 관심과 깊이 있는 대화가 미흡한 현실에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잘라 말한다.
진로·취업지도는 학교의 여건을 고려해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자발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핵심이다. 대학 당국, 교수, 학생들이 중지를 모아 취업대란의 파고를 넘을 수 있을지 기대한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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