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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대학 총장님들께
[원로칼럼] 대학 총장님들께
  • 교수신문
  • 승인 2002.0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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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08 17:19:57
민병수 / 서울대 명예교수·국문학

새해에는 대학 캠퍼스에 훈풍이 불게 하십시오. 만나는 얼굴마다 미소가 넘치게 하십시오. 物量으로 대학을 서열화하는 일에는 당분간 눈을 돌리지 마십시오. 우리나라 대학은 아직도 세계와의 경쟁 대열에 뛰어들 만한 경주마의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 생각하십시오. 우리의 기준으로 세계 대학의 차례를 매김질할 수 있을 때까지 일등대학의 꿈은 접어 두시기 바랍니다. 이 민족을 1등 국민으로 만드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십시오. 요즘 같아서는 신문 보기가 무섭고 TV 앞에 앉기가 겁이 납니다. 갈수록 극한 상황으로만 치닫고 있는 이 부정적인 풍토를 그 근원에서부터 치유하지 아니하고 대학이 온전하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세상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변해서는 안될 中心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가르칠 마지막 교육 단계가 대학임을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정신적인 가치를 높이 신봉해온 우리 선인들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꾀하는 삶의 태도를 굳게 지켜 왔을 뿐 아니라 小我에 집착하지 않은 大人의 風度를 숭상해 왔습니다. 오늘날 한국인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이기주의를 추방하고, 명랑한 이상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나’보다는 ‘우리’를 위하여 살아온 선인들의 생활윤리와 행동양식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학과 중심체제를 그대로 존치한 채 모집 단위만 광역화하는 교육조직으로는 그 성공적인 실천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명실상부한 전공영역별 통합학부체제로 신입생을 선발하여 학부과정의 전 시기를 폭넓은 교양 이수 기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이를 통하여 현재 遊休상태에서 고통받고 있는 고급 연구 인력의 수요를 확대 창출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됐을 때 날로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인문학의 창달에도 중요하게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 발전의 핵심 인력 양성기관인 대학원이 우수 두뇌 집단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전진적인 국가 발전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연구비나 몇 푼 던져주면 그것이 대학원 육성책이 될 것이라는 정책당국의 안이한 발상부터 강력하게 저지해야 합니다. 요즘 인문학의 위기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습니다만, 인문학은 정신의 과학입니다. 공장에서 다량으로 생산하는 공산품이 아닙니다.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는 수제품입니다. 이러한 실질을 도외시하고 획일적으로 연구성과를 물량으로만 계략하고 있는 평가제도 때문에 허수의 경쟁을 일삼고 있는 이것이 바로 인문학의 위기입니다. 끝으로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대학에서의 한문 교육을 현재의 외국어과목 수준으로라도 반드시 실시해야 합니다. 근대화 100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지만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新造語들이 모두 漢字語라는 사실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제 말의 참 뜻을 알지 못하고, 제 민족의 정서를 몸으로 익히지 못하는 국민이 세계 속에 1등 국민으로 성장할 수 없음은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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