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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상징과 수사를 두려워하나
누가 상징과 수사를 두려워하나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8.09.02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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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누스바움 시카고대 방한 강연

이성이 아닌 감정에 호소할 때 애국주의는 세계 정의(Global Justice)에 기여할 수 있다

지난 8월 25일 오후 3시, 고려대 100주년 기념관 국제원격회의실에는 인문학 및 사회과학 전공 교수들과 학생들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성황리에 ‘순화된 애국주의는 가능한가(Can There Be a “Purified Patriotisme”)?’라는 제목으로 마사 누스바움 시카고대 교수(법학·윤리학)의 강연이 있었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석학 초청 강좌의 주인공이었다.
누스바움 교수는 저명한 법철학자, 정치철학자, 윤리학자, 고전학자, 여성학자로서, 뉴욕대학교에서 연극학과 서양고전학으로 학사학위를, 하바드대학교에서 고전철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이다. 미국철학회장을 역임했고. 미국학술원 회원이기도 하다. 손병석 고려대 교수(철학)가 사회를 보고, 이기수 고려대 총장이 환영사를 한 뒤에 이어진 강연에서 누스바움 교수는 ‘순화된 애국주의’를 통해 세계 정의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전개했다. 교수신문은 이날 강연을 논점별로 정리하고, 강연장에서 참석자들이 제기했던 질문들 및 교수 신문이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에 대한 누스바움 교수의 답변을 싣는다.

애국주의에 대한 문제제기
애국주의는 외국 라이벌들과 적들에 대한 호전적 감정을 자극하면서, 자국을 그것들과 적대하는 것으로 규정하는데 이바지한다. 그러나 애국심은 또한 마음을 더 넓게 만드는, 마음을 탐욕과 이기주의로 몰입에서 벗어나게 하는 품위 있는 공동생활과 관련된 가치들의 집합으로 향하게 하는 방편이다. 따라서 모든 애국심 호소에 내재하는 위험들, 대부분의 애국심을 유해한 것으로 만드는 특징들을 제거한, 아주 특수한 형태의 애국심을 기술하고 실천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야한다.

도덕 감정 배양의 필요성
품위있는 세계사회는 모든 세계시민에게 일정한 기본 인간선들과 능력들을 확보해주어야 한다. 여기서 국가주권은 적어도 이 임무의 큰 부분에 중요성을 가진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한결같지 못하고 특수주의적이다. 그리고 현실의 사람들은 때때로 정의로운 제도들에 대한 사랑에 의해 움직여진다. 만약 높은 원칙들이 특정한 지각들, 기억들, 집합과 연결된다면 더욱 쉽게 강한 애착을 품을 수 있다. 나의 주장은 롤즈식의 질서정연한 사회에서 시민들의 도덕적 정서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고 본다.

요구되는 도덕적 감정들
어떤 도덕적 감정들이 능력 접근에서 구상된 성질의 품위 있는 사회를 위한 순화된 애국주의의 창조자를 돕거나 방해할 것인가. 동정심은 사람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의 안정성에 중심적이다. 그러나 동정심은 본질적으로 신뢰할만한 것이 아니므로 국가의 도덕성의 관점에서 신중히 구성돼야 한다. 분노와 희망도 유용하지만 역시 신중함이 요구된다. 사랑의 일종인, 좋은 종류의 애국주의는 내가 말한 것처럼 특수주의적이다. 비록 그것은 마음으로 하여금 자국의 한계들을 뛰어넘도록 인도하는 인간애의 여러 측면들을 마음에 불러들이지만, 그것은 또한 특수한 기억들, 지리적 특징들, 미래를 위한 계획들에 고착된다.

필수적인 요소들
법과 제도의 구조는 애국주의의 좋은 본질적 버팀목들이다. 우리는 우리가 애국주의로부터 부정적인 면 없이 긍정적인 면만을 얻는데 기여할 최소한 다섯 가지 요소들을 언급할 수 있다. ▲ 헌법상의 권리들, 독립적 사법부 ▲ 권력의 분립, 개전의 어려움 ▲ 이민자 권리의 보호 ▲ 외국 문화와 국내 소수자에 대한 교육 ▲ 활발한 비판 문화.

순화된 애국주의와 정서의 결합
희생을 요구하는 과감한 프로젝트들을 일으키는 것은 국가와 그것의 역사를 향한 도덕적 정서들을 발생시키는 것을 수반한다는 명제, 즉 내가 밀라-누스바움 명제라고 부를 수 있는 사례들이 역사 속에는 수없이 많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인도 타고르가 지은 인도 국가인 자나가나마나, 자신의 몸을 살아 있는 국가의 상징으로 만든 간디가 그 예이다. 자기이익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목표들을 추구하는 국가는 상징과 수사, 그리고 정서적 기억과 역사를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애국주의에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 정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정서와 상상력에 대한 호소들을 본질적으로 위험하고 비합리적이라고 두려워하면서 상징과 수사를 꺼린다면, 우익은 민주주의를 손상시키면서 이러한 힘들을 독점할 것이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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