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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 명성의 이면
‘수전 손택’, 명성의 이면
  • 이종찬 객원기자
  • 승인 2008.08.2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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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죽음 : 수전 손택의 마지막 순간들』vs. 『인 아메리카』

『어머니의 죽음 : 수전 손택의 마지막 순간들』 데이비드 리프 지음|이민아 역|이후|2008|168쪽
『인 아메리카』 수전 손택 지음|임옥희 역|이후|2008|592쪽

무려 2번의 암과의 투병과정조차 거뜬히 이겨냈던 그녀가 2004년 12월 골수성 백혈병으로 결국엔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는 비보가 전해졌을 때 전 세계의 수많은 이들이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던 그녀였던지라 그 충격과 허탈감은 더 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수전 손택의 마지막 순간들』(이민아 역)과 『인 아메리카』(임옥희 역)에는 인생의 마지막 무대에 직면한 ‘인간’ 수전 손택의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있다.


『어머니의 죽음』은 무엇보다도 저자가 수전 손택의 외아들인 데이비드 리프라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어머니의 사망 이후 3년 만에 그녀가 죽기 전 몇 달 동안을 기록한 책이다. “‘각자의 필요에 따라’ 유지되는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어머니의 투병 과정을 저자는 “고통학 대학원 과정”이었다고 술회한다. 그는 어머니가 ‘죽었다’ 혹은 ‘사망했다’고 쓰지 않는다. 그 대신 “어머니는 존재하기를 멈추었다”라는 표현을 굳이 가져온다. 누구보다도 더 간절히 생을, 삶을 갈망한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들을 똑똑히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책 속에 묘사된 수전 손택의 생에 대한 집념은 굉장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어렸을 때 그녀는 자신의 일기에다 “언젠가 내가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썼다. 데이비드 리프는 손택이 항상 미래를 살았다고 말한다. “어머니에게는 미래가 모든 것이었다. 사는 것이 모든 것이었다.” 실제로 손택은 ‘화학적 불멸’을 꿈꿨다.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는 것”, “삶을 지속하는 것”을 말이다. 자신이 특별하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손택의 그것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병실에서 자신의 마지막 나날을 보내던 중 이렇게 노래한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 이제 나는 내가 떠나고 난 뒤에 지저귈 지빠귀의 노래도 즐길 수 있다네.” 이렇듯 브레히트는 자신의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였지만, 손택은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리라는 사실과 화해할 수 없다”던 마르그리트 뒤라스처럼 손택에게 “‘나’를 초월하지 않는 한 죽음은 견딜 수 없는 문제”였다. 브레히트의 죽음은 “예술의 위안이며, 예술의 거짓이다.” 저자는 손택을 옹호한다. “어머니에게는 어머니가 원하는 방식으로 죽을 권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손택에게 삶을 향한 저 가열찬 몸짓 외에 또 하나의 거대한 욕망이 있었다면 그것은 예술이었다. 이는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그녀의 글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이미 명확히 드러난 바 있다. 손택은 단언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감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글의 마지막 문장은 또 어떠했던가. “해석학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의 성애학(erotics)이다.” 수많은 강연과 저술 일정 중간에도 짬짬이 연극과 춤, 영화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던 것도 필경 그 같은 연유에서였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별했던 것이 문학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손택이 이제는 “자신에게 정말로 소중한 일”을 하고 싶다고, 특히 소설을 많이 쓰고 싶다고 소망한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두 번째 암과의 투쟁 당시 손택이 몰두했던 것도 소설인데, 그 책이 바로 『인 아메리카』다. 자궁육종치료까지 뒤로 미룰 정도로 그녀는 이 작품에 적지 않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손택으로 하여금 그토록 예술을, 문학을, 소설을 간절히 욕망케 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문학은 자유다」에서 손택은 스스로를 “저는 이야기꾼입니다”라고 선언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인 아메리카』에서 손택은, 작품 속 여주인공의 입을 빌어 “예술을 위한 삶을 살았던 것은 특권이자 축복이었다”고 말한다. 평론가 강유정은 소설이란 장르가 “대답이라기보다 공모나 위안”이라고, 즉 “소설은 답이 아닌 위안을 준다”고 압축적으로 정의내린 바 있는데, 이 설명이 손택의 경우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실제로 손택은 “할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고 토로하고 있다. 손택은 결코 글쓰기를, 소설을 멈출 수가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녀가 왜 그리도 생을 갈망했는지 공감하게 된다. 


『인 아메리카』에서 손택은 ‘민족의 상징’이었던 폴란드 실존 여배우 헬레나 모드제예브스카의 미국 이민 여부를 둘러싼 논쟁을 다룬다. 여기서 손택은 “누가 옳고 그른가에 관한 논쟁”에서 해답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모두 헬레나가 왜 폴란드를 떠나려 하는지 궁금해 한다. “남들은 이유가 필요하다.” 조국이 서구 열강들에 의해 지배되고 분리되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저항 운동에도 참가했던 헬레나가 미국에서 유토피아적인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서일 수도, 미국 무대에 서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행 직전 헬레나는 푸리에 식의 사회주의 유토피아에 대한 생각을 잊는다. 대신 셰익스피어를 떠올린다. “셰익스피어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그녀에게 셰익스피어는 곧 아메리카를 뜻한다. 그렇게 해 헬레나는 아메리카로 갔다.


“미국은 대량학살 위에 세워졌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던, 그래서 미국 내에서 ‘반역자’로 매도되기까지 했던 손택의 입에서 느닷없이 아메리카가 모든 것을 의미한다니, 의아해진다. 하지만 여기서 손택이 가리키는 ‘아메리카’는 과거다. “과거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큰 나라다.” 그 때 “미국은 단지 또 다른 나라가 아니었다.” 그 때 미국은 세계사의 정당한 진로로서 창조된 ‘미국’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유토피아 공동체 건설에 실패한 헬레나에게서 보듯, 결과적으로 유토피아는 실패했다. 흥미로운 것은, 유토피아를 공간적 맥락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손택의 주장이다. “유토피아는 공간의 일종이 아니라 시간의 일종이다. 어디에도 아닌 이곳에 있고 싶다고 느끼는 그 짧은 순간, 모든 유토피아들은 너무나 짧은 찰나다.” 결국 『인 아메리카』의 ‘미국’은 좋았던 그 때 그 시절의 아메리카로 귀결된다.


‘존재하기를 멈추기’ 얼마 전 손택은 간호조무사에게 몸을 기댄 채 “내가 이제 죽나 봐요”라는 말과 함께 울음을 터뜨리며 너무도 무력하게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실비아 플라스와는 달리 손택은 코앞에 닥친 가혹한 죽음의 현실 앞에서 결코 초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두 권의 책에서 자연스레 우리는 그녀의 이름 앞에 그 어떤 수식도 붙지 않은, 다만, 그저 ‘인간’ 손택의 모습을 그려내게 된다.
                

이종찬 객원기자 leverty2@kyosu.net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 1933년 1월 뉴욕에서 출생했다. 소설가, 예술평론가, 극작가,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사회운동가 등 수많은 수식이 이름 앞에 붙어 있다. 1966년 『해석에 반대한다』를 출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구 미학의 전통을 해체하려는 시도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국 펜클럽 회장(1987~1989)을 역임하는 동안 서울을 방문, 한국 정부에 구속 문인의 석방을 촉구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는 9·11 사태 이후 미국 정부의 태도를 비판해 미국 내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2003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거짓 이미지와 뒤틀린 진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사상의 자유를 굳건히 수호해 왔다”는 평과 함께 ‘독일출판협회 평화상’을 수상했는데, 이 때 행한 연설문이 「문학은 자유다」이다.


● 주요 저서에는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비평 부문 수상작인 『사진에 관하여』(1977),질병을 온갖 은유로 신비화하려는 거짓 시도들 전체를 비판한 『은유로서의 질병』(1997),  ‘전미도서상’ 소설 부문 수상작 『인 아메리카』(1999), 사진 스펙타클을 다룬 『타인의 고통』(200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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