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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정’ 개념어 수용과정 짚었어야
‘공화정’ 개념어 수용과정 짚었어야
  • 교수신문
  • 승인 2008.06.09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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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회 전국역사학대회 ‘공화국과 역사만들기’ 참관기

지난 주말 서강대에서 개최된 제 51회 전국역사학대회 공동주제는 ‘공화국과 역사 만들기’였다. 왜 새삼스럽게 공화국을 화두로 삼았는가. 여기에는 정부 수립 60주년을 맞이해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해온 공화국이라는 政體를 다시 성찰하고, 신생공화국의 탄생과정을 재조명하려는 의도가 깃들어 있을 것이다.

흔히 공화국은 군주가 없는 국가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것은 로마적 전통에서 비롯한 것이고, 그 정치이론은 근대 여명기 마키아벨리를 거쳐 17, 18세기 영국 문필가들에 의해 재구성됐다. 이 정체가 공화주의 담론의 영향 아래 새롭게 부활한 것은 미국 독립 이후의 일이다.

군주를 상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화국은 우리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개념어다. 그럼에도 제헌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규정은 곧바로 친숙한 것으로 변했고, 공화정 또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불가사의하면서도 동시에 의미심장한 일이다.    

대회 첫날 발표는 주최측의 의도가 비교적 잘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17, 18세기 영국 공화주의 담론(조승래)과 미국 건국과정에서 공화정의 재현(정경희) 등을 통해 근대 공화주의이론의 원류를 추적하면서, 그와 동시에 19세기 말 중국에서 공화주의의 수용과 변용(배경한), 20세기 초 정체에 관한 국내 지식인들의 인식 변화(박찬승), 그리고 해방공간에서 건국 구상(이완범) 등의 문제를 탐사해 이 주제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공화정의 근대적 재현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 공화주의란 무엇인가. 조승래 교수에 따르면, 그것은 개인주의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시민 개인의 권리를 넘어 공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의 함양을 강조하는 정치 이데올로기다. 개인의 이해관계보다는 공동체의 일에 헌신함으로써 자아를 실현하고 정치적 인간으로서의 삶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교수는 공화국의 특징을 혼합정체, 시민군제, 토지균분제로 규정한 다음, 공민으로서의 삶이라는 공화주의 윤리와 참여를 통해 실현되는 적극적 자유론을 잘 요약해 설명한다.

한편, 정경희 교수의 ‘미국 헌법의 제정과 연방공화국의 건국’ 또한 근대에 로마적 전통인 공화정이 새롭게 부활하는 과정을 면밀하게 재구성함으로써 우리의 시야를 넓혀준다. 미국 건국과정에서 공화정의 재현은 독립전쟁에 동의한 13개 식민국가들의 관계 설정이라는 문제와 중첩되어 전개됐다. 정 교수는 독립된 국가들의 단순한 연합과 집중된 제국화, 이 둘 사이의 중도의 길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미국헌법에서 구체화됐다고 단언한다.   

조 교수가 언급했듯이, 공화정을 가리키는 라틴어 ‘les publica’는 ‘공공의 것’을 뜻한다. 크롬웰시대의 정치를 커먼웰스(Commonwealth)로 부르는 것도 같은 의미다. 국가는 공공의 것이기 때문에,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헌신을 그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설정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공화정의 로마적 전통은 그와 동시에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키케로의 표현에 따르면 그것은 ‘계급의 화합(concordia ordinum)’이다. 로마적 전통은 원로원-집정관으로 이어지는 제도를 통해 귀족의 정치적 이해를 반영하고, 민회-호민관으로 이어지는 제도에서 평민의 이해를 수렴했다. 그리고 이 두 제도가 서로 견제하면서도 병존하는 전통을 견지했다는 것이다.

나는 라틴어 ‘les publica’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共和’로 번역됐다는 사실을 매우 중시한다. 조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이 번역어는 인물의 이름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그 말을 최초로 번역해낸, 또 그 번역어를 초기에 사용하기 시작한 19세기 말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로마적 전통의 중요한 특징을 이해하고 있었을까. 그 해답을 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 건국과정에 관해서도 한 가지 의문이 있다. 미합중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새로운 정치를 실험한다기보다는 그들의 고전적 소양에 비추어 새로운 국가가 로마적 이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새로운 전통의 창시자라기보다는 복고주의자들이었다. 문제는 그 로마적 전통을 뉴잉글랜드에 재현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또 다른 근대 정치기제인 대의정치와 접목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로마적 전통이 근대 대의제도와 연결될 경우, 공공의 것에 대한 공민으로서의 직접 참여라는 공화정의 근본정신은 변할 수밖에 없다. 공화정과 대의정치는 근대 정치 기획에서 불가피하게 접목됐지만, 서로 상충되는 요소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수립 60주년, 역사학대회의 현실적 함의

공동주제 발표에서 한 토론자가 술회했듯이,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규정이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수용됐다는 놀라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나는 그것이 역설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연한 수용은 우리가 이 개념어를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이를 성찰할 기회마저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공화정이라는 개념어의 수용과정에 관한 내용이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 ‘국가 만들기’라는 주제는 이런 문제까지 탐구의 시야를 넓혔을 때 더 구체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정부 수립 이후 60년, 우리는 공화국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 오랫동안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 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배신, 좌절과 성취를 거름 삼아 여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지금 나는 시청앞 광장에서 연일 이어지는 촛불시위를 머리에 떠올린다. 공화정의 전통이 대의정치라는 근대적 기제와 접목되면서 점차 사라진 이른바 ‘공공의 덕’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지 않는다는 환상에 빠진다.

오랜 민주화운동의 전통과 쌍방향 의사소통의 전면화와 더불어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대안적 정치실험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이 만연해 민주주의가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경고음이 울린 지 이미 오래지만, 그럼에도 저 촛불의 물결 속에서 공민으로서의 직접참여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이번 역사학대회의 공동주제는 중요한 현실적 함의를 지닌다.  

이영석/광주대· 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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