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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부, 위원회 없애도 ‘정책결정 시스템’은 마련해야”
“새정부, 위원회 없애도 ‘정책결정 시스템’은 마련해야”
  • 김유정 기자
  • 승인 2008.06.09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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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부 교육정책 추진 그룹은

“교육현장 의견을 듣지 않고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한다. 추진중인 교육정책은 검토를 거치지 않은 실험적인 것으로, 많은 곳에서 부작용이 염려된다.”
최근 110명의 교육학 전공 교수가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을 우려하는 성명을 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 청와대와 교육과학기술부 등 교육담당 주체들이 의제를 설정·추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책을 조율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사실상 이주호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비서관에게 교과부가 보조를 맞추는 기형적인 모양새다. ‘백년대계’인 교육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부처간 역할관계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민정부 ‘교개위’ 교육정책 추진 핵심그룹

역대 정부가 교육 관련 로드맵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중심이 된 곳은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다. 문민정부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를 비교할 때 위원회 권한과 역할은 각각 다르고 평가도 엇갈린다. 위원회는 그러나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굵직한 교육과제를 제안, 조율하고 현장 의견을 수렴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문민정부를 대표하는 교육정책인 1995년 ‘5·31 교육개혁안’의 기틀을 마련한 주인공도 교육개혁위원회다. 1994년 2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발족한 교육개혁위원회는 이석희 초대 위원장을 비롯해 25명으로 구성됐다. 교육개혁위원회는 국민제안 창구를 개설하는 등 교육현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맡았다.

5·31 교육개혁안 중 대학 관련 주요 내용은 △대학설립 인가제에서 준칙주의로 전환 △대학정원 및 학사운영 자율화 △대학평가 및 재정지원 연계 강화 등이다. 5·31 교육개혁안은 지금까지 정부 교육정책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   


국민의정부는 1998년 7월 새교육공동체위원회를 발족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새교위는 2년 뒤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로 전환됐다. 배무기 위원장, 임천순 선임위원(세종대 교수), 강순원 위원(한신대 교수) 등 29명으로 구성됐다.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가 추진한 주요 업무는 부처간 연계 및 조정 사항을 점검하거나 미추진 분야를 확인하고 정책개발을 위한 전문가 및 관계기관협의회를 개최한 것 등이다. ‘교육의질 향상을 위한 고교평준화 정책 개선 방안’(2002. 4), ‘대학경쟁력 강화방안’(2002. 6) 등 현장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위원회에 참여한 한 교수는 “끝에 가서 흐지부지되긴 했지만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는 교육과 인적자원 개발 사이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혁신위, 교육비전 2030 등 제안

교육혁신위원회는 참여정부의 교육개혁 방향을 정한다는 취지에 따라 2003년 7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탄생했다. 전성은 위원장과 22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교육혁신위원회는 산하에 각계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된 4개 전문위원회를 두고 위원장과 각 전문위원회 간사, 교육부 차관 등 9명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를 운영하는 등 거대한 조직이었다.

혁신위는 교육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교육인적자원부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대한민국 교육정책은 누가 결정하는가』(김태훈 저, 태영출판사, 2006)에서 교육부 부총리실 비서관 등을 역임한 저자는 “교육혁신위원회는 설립 초기 주무부처인 교육부와 상호 협력, 조율이 원활하지 못 해 교육정책 결정 과정에서 지도력 형성 미흡이라는 추진 체계상의 문제점을 노출했다”고 분석했다. 혁신위는 그러면서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등급제 도입, 수요자 중심 교육 전환과 홈스쿨링 제도화 등의 내용을 담은 ‘교육비전 2030’을 발표하는 등 참여정부를 대표하는 굵직한 정책을 입안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혁신위는 그러나 새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사실상 폐지됐다. 이명박 정부는 현재 교육 관련 자문기구를 설치하지 않은 상태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독립성을 가진 국가교육과정위원회를 만들어 교육정책을 과감하고 신속히 결정하겠다는 공약을 내놨지만 아직 실행하지 않고 있다.

새정부가 교육정책을 만들어가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자문위원회를 없앤데 대한 우려와 맥락을 같이 한다. 문민정부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를 거쳐 이름은 다르지만 15년 이상 존속한 교육자문위원회가 하루아침에 없어졌기 때문이다.
교육학 전공 교수들은 “새정부가 일관성을 갖고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교육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적절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육은 백년대계…로드맵 설정 우선해야”

이일용 중앙대 교수는 “정부에 종속된 들러리식 자문기구보다 위원 임기가 길면서 현안을 조율할 수 있는 심의·의결기구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조직 역학관계를 재조정해 의견을 듣고 합의하는 과정이 이뤄져야 한다. 독립된 기구가 없다면 힘 있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먹히거나 정치적 예속성을 띄고 몇몇의 의도가 정책으로 채택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초정권적 교육정책 기구는 변화적응도가 낮고 합의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교육과제의 연속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구 설치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생각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현 정권에서 가장 크게 우려되는 점은 절차를 밟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과거 정권이 한 일을 전부 부정하기 때문에 교육과 관련해서도 현 정권에서 문제를 끝내려고 한다. 그러나 교육정책은 무엇을 하든지 10년을 목표로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영수 충북대 교수는 “외국의 경우 교육정책을 추진할 때 꾸준히 연구를 지속하면서 여러 단계의 개혁 과정을 거치지만, 우리의 경우 신속하게 추진해야 하는 불가피성이 없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실현가능한 조건을 갖추기도 전에 정책을 추진하면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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