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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이 아닌 자기 숙명의 凝視
‘광장’이 아닌 자기 숙명의 凝視
  • 교수신문
  • 승인 2008.06.02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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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리뷰] 여름호 계간지들이 놓인 곳

이슈와 함성만으로 본다면 현실의 아스팔트는 ‘촛불문화제’에 자리를 내줬지만, 여름 계간지의 지면 곳곳은 ‘촛불문화제’를 비켜서 있는 모습이다. ‘쇠고기협상’이 나라 안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여름 계간지들의 시선은 ‘쇠고기협상’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게 잡지 기획의 시간차 거리감일 것이다. 오히려 이들 여름 계간지를 통해 아스팔트, 공중파, 거대 언론 곳곳에 나부끼는 ‘쇠고기협상’과 그 논쟁들이라는 ‘국민 드라마’ 대신 2008년 6월의 예정된 모습을 확인해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이다.

<문화과학>(통권54호)은 두 개의 특집을 꾸렸다. ‘국가와 정치’, ‘자본주의 국가를 넘어서-좌담’은 언제나, 역시 <문화과학>다운 목소리를 보여준다. 54호 발간사의 한 대목은 “말 그대로 현재를 살아가는 오늘의 자본주의 국가를 역사적으로 분석하고 그 자본주의 국가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 보자는 의도이다. 사실 색다른 주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폐기처분할 주제도 아니다”라고 적고 있다.

<역사비평>(통권83호)은 올해가 남북 정부 수립 60주년의 해라는 사실에 방점을 찍고 기획에 나섰다. ‘이승만과 제1공화국: 분단과 건국의 담론을 넘어’를 들고 나온 배경이다. <창작과비평>(통권140호)은 최근 한국소설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장르문학의 요소들에 주목하고 그 문학적 가능성과 문제점을 짚어낸다는 취지로 특집1 ‘장르문학과 한국문학’을 내놓았다. 특집 2 ‘김수영 시인 40주기에 부쳐’를 ‘발굴자료’에 의존해 세상에 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황해문화>(통권59호)의 문제의식은 지난 봄호를 계속 관통하고 있다. 특집 ‘글로벌 도시, 공간정치의 격전지’는 인천, 서울, 파리, 런던, 도쿄 등을 호명해냈다.

<문화과학> ‘국가와 정치’ 특집에는 이득재 대구가톨릭대 교수(러시아문학)의 「신자유주의 국가의 주체화 양식-교육과 문화를 중심으로」가 눈에 들어오지만, 글의 무게는 ‘좋은 문제제기’에 쏠려 있다. 오히려 흥미로운 것은 글의 도입부에 영화 ‘살인의 추억’(2003)과 ‘추격자’(2008)를 비교,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이 각각 탄생한 해에 똑같이 개봉된 두 영화와 그 추이를 밟아 이렇게 설명해낸 대목이다. “흥미로운 점이란 살인의 정도가 더 교묘해졌다든가 더 잔인해졌다는 것뿐이 아니다. 국가의 폭력이 사회적인 폭력으로 급격하게 전환되고 있다는 것이다. 폭력의 사회화라고 해도 좋다. 신자유주의적인 ‘작은 정부’라는 미명 하에 재정과 복지 축소 등 국가가 시민에 대한 배려를 거둬들이면서 생겨난 빈 구멍 사이로 사회적 폭력이 국가의 배려의 크기가 줄어든 만큼이나 밀려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흥미로운 점은 영화의 배경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역사비평>은 이 계절 값진 기획물을 내놓았다. ‘초점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어떻게 볼 것인가’가 특집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 박찬승 한양대 교수,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가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를 각각 근대초기, 식민지시대, 현대사 서술 부분으로 나눠 공들여 읽어냈다. 조금 길지만 홍석률 교수의 「대안 교과서의 난감한 역설」 부분 중 일부를 그대로 인용해보자. “박정희 대통령은 남북 대화 과정에서 더욱 치열해진 남북한 체제 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유신 체제를 선포하였다. 그러나 유신 체제기 체육관 대통령 선거는 ‘단수 후보’, ‘99% 이상 찬성’ 등 북한의 선거와 오히려 닮아가는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것이 바로 분단의 덫이라 할 수 있다. 탈냉전과 민주화 이후 대부분의 현행 교과서들은 이러한 덫에서 나름대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대안 교과서』는 여전히 북한과의 체제 경쟁, 정통성 경쟁에 집착하면서 이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안 교과서』는 한국 현대사를 ‘분단 시대론’과 ‘분단 체제론’에 입각해서 보는 것에 대해 거듭 비판한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역설적으로 오히려 분단의 완고한 규정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역사비평>이 마련한 특집은 이승만을 새롭게 읽어내는 데 지면을 할애했다.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의 글 「이승만의 한국 문제·동아시아·국제 관계 인식과 구상―악마화와 신화화, 건국 담론과 분단 담론의 대립을 넘어」가 기획특집의 의도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박 교수는 특히 이승만의 국제외교 역량을 분석, 탁월한 이승만의 외교력이 어째서 분단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究明해냈다.

<창작과비평> 특집2 ‘김수영 시인 40주기에 부쳐’는 김수영의 미발표 유고 ‘시, 일기’를 발굴해 소개했다. 해제는 김명인 인하대 교수(국문학), 평론은 황현산 고려대 교수(불문학)가 「김수영의 현대성 또는 현재성」으로 정리해냈다. 자유인의 초상이었던 김수영의 미발표 詩를 만나는 것은 설레이는 일이 될 것이다.

<황해문화>는 인천을 거점으로 발행되는 계간지다. 자신의 숙명을 피해갈 자는 아무도 없다. ‘인천’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는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동시에 이 질문은 ‘인천’을 넘어선다. “각각의 장소가 지닌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특색 있는 도시를 만드는 노력보다는 ‘명품’이라는 화두 아래 차이가 발견되지 않는 그렇고 그런 도시개발 패턴의 현주소 앞에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던” 이들은  “‘명품도시’를 슬로건으로 앞세운 채 시민의 소리에 아랑곳 않고 오로지 밀어붙이기 식으로 일관하는 인천시와 여러 지자체들을 향하여 글로벌 도시의 정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환기시키고 나아가 선진 사례들을 살펴봄으로써 현재 추진하고 있는 각종 사업들을 중간 점검할 수 있는 계기로 삼기 바라는 의도”에서 ‘글로벌 도시, 공간정치의 격전지’를 특집으로 묶었다. 다른 글들도 좋지만 특히 한광야 동국대 교수(건축학과)의 「글로벌 도시의 형성과 진화」, 김정후 런더대 튜터(도시계획과)의 「21세기 런던의 도시 르네상스」는 꼭 놓치지 말길.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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