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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명의 교수들이 8개월간 ‘업적’ 분석하는 이유
30명의 교수들이 8개월간 ‘업적’ 분석하는 이유
  • 조벽 /동국대·석좌교수
  • 승인 2008.06.02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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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벽의 ‘새롭게 만들어 가는 대학’ ]5. 질적 평가와 승진 심사

 

최근에 몇몇 대학에서 교수업적평가 기준을 대폭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96.6%라는 국내 교수들의 정년보장 심사 통과율을 미국 주요 주립대의 평균인 53%에 비교하면 평가가 좀 더 엄격해져야 한다는 의견에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평가가 모두가 원하는 ‘질적 평가’와 점점 거리가 멀어져가고 있는 게 걱정입니다.

 

해외 명문대에서는 교수의 업적을 질적으로 평가합니다. 연봉 인상을 책정하기 위해 학과장이 단독으로 처리하는 업적평가도 질적이며, 학과를 비롯해 단과대학과 대학본부에서도 참여하는 승진평가도 질적입니다. 대학마다 차이가 있고, 또 같은 대학에서도 각 학과마다 다르기에 여기서는 규모가 큰 학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승진평가 사례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9월에 새 학기가 시작하면 학과는 승진평가위원회 위원을 선발합니다. 평가의 일관성을 위해 위원들의 임기가 2~3년이어서 매해 일부 위원만 새롭게 선발합니다. 타과 교수가 위원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 그룹의 평가 대상자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매 2년마다 재계약을 하는 (테뉴어가 없는) 조교수들이며, 이들에게는 ‘승진’이 아니고 ‘재계약’ 여부를 따지는 평가가 되겠습니다. 두 번째 그룹은 조교수로서 마지막 해(terminal year)에 접어 든 교수들이며, 평가로 인해 부교수 승진과 함께 정년보장을 받게 되거나 학교를 떠나야 됩니다. 가장 민감하고 어려운 판단이 요구되는 그룹입니다. 세 번째 그룹은 정교수 직급으로 승진을 원하는 부교수들입니다. 이 역시 매우 민감한 경우입니다. 이미 함께 수년간 지내왔고, 또 승진 여부와 관계없이 앞으로 수년간 더 함께 지내야 하는 동료들입니다. 동료들 앞에서 자신의 모든 장점과 단점이 까발려지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위원들 또한 벌거벗은 동료를 보는 것이 매우 부담스럽습니다. 특히 승진을 못하고 10년, 15년씩이나 부교수 직에서 머물고 있는 동료를 대할 때는 한심스러움과 안쓰러움이 교차합니다.

10월이 되면 위원회는 승진 대상자들로부터 교육, 강의, 봉사 업적이 상세히 기록된 포트폴리오와 증빙 서류를 전달 받습니다. 면접은 서류에서 불확실하거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의 추가 설명을 듣기 위해서 합니다. 
교수는 연구 분야에 논문, 저서, 작품, 특허, 공연, 전시, 발표 등을 기록하고, 용역 받은 연구비 액수와 출처를 밝히고, 합동 연구일 경우 각 연구에 자신의 역할과 기여도를 상세히 기록해야 합니다. 

 

 
교육 분야에는 발령 후 가르친 모든 과목의 수강생 수와 강의평가 점수를 기록해야 합니다. 실험실을 설치하거나, 새로운 강좌를 개설하거나, 교과과정 디자인을 주도하는 등 일반 강의 외의 교육 활동을 기록합니다. 또한 동료교수나 교육 전문가에 의한 강의평가를 제출할 수 있고 대학원생 지도, 학부생 지도, 학생동아리 지도 등도 낱낱이 기입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교육철학과 우수한 교육을 위해 무엇을 시도했는가를 에세이 형태로 짧게 써야합니다.

봉사부분에는 학과, 대학, 학회와 사회 차원의 활동을 기록합니다. 우수한 활동의 증거로써 받은 상과 감사장, 그리고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위촉된 사실 등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어떻게 대학과 학문과 사회에 기여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간략하게 써야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간략하게’입니다. 자신의 업적을 다시 일일이 나열하는 게 아니라 요약해야 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듭니다.

심사 절차와 항목은 구체적이지만 승진 기준은 모호하기 짝이 없습니다. 최저 논문 수나 연구비 액수, 강의평가점수 어느 하나 명시된 것이 없습니다. 고작 작년에 승진된 교수의 업적보다 조금 더 좋아야 한다는 막연한 ‘後聞’ 외에 별다른 가이드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진심사위원들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판단합니다. 미국 대법원 판사였던 스튜어트 포터는 무엇이 ‘포르노’이며 ‘예술’인가를 판단해야 할 때 평가 잣대를 “명확히 규명하지는 못하겠지만, 보면 판단된다”라는 명언을 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승진 조건을 질적으로 규명하기는 어렵지만 교수업적 포트폴리오를 보면 대부분의 경우 업적의 질이 쉽게 구분됩니다.

자신의 학문과 삶을 성찰하는 과정들

서류 분석과 면접이 끝나면 위원회는 다음 단계인 외부평가로 넘어갈 것인가를 결정합니다. 커트를 통과한 교수는 외부 심사위원 명단을 제출할 수 있으며 자신과의 관계를 밝혀야합니다. 자신과 직접 연관된 지도교수, 합동연구자, 스승 등은 포함시킬 수 없습니다. 위원회는 그 명단에서 임의로 3~4명을 선정하고, 또 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선정한 3~4명을 추가해서 외부 심사를 의례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외부 심사위원의 객관성과 익명성을 최대로 지켜줍니다. 외부 심사위원들은 주로 학문적으로 활발한 정교수 경력자들이지만 1~2명은 학계 인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외부 심사위원들에게 교수업적 포트폴리오와 교수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논문 3~4편을 보냅니다. 심사위원은 일반적으로 A4용지 2장 정도의 평을 서술한 끝에 “우리 대학이라면 승진시킬 것이다, 또는 아니다”를 매우 노골적으로 밝히기도 합니다. “아니다”가 하나라도 나오면 최종 결정에 큰 타격을 줍니다.

12월에 학과 승진심사위원회는 학과장에게 심사결과를 통보합니다. 학과장은 위원회의 판결과 자신의 의견을 따로 적어 학장에게 전달합니다. 각 학과 대표가 참여하는 단과대학 차원의 승진심사위원회는 학과위원회와 학과장의 판단을 토대로 승진 심사를 다시 합니다. 이때는 주로 단과대학에 소속된 여러 학과 사이의 형평성을 고려합니다.

2월에 학장의 결정과 단과대학차원의 위원회 판결이 대학본부로 전달됩니다. 교무부총장과 총장이 학과와 단대 차원의 일치된 판결을 뒤집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학본부의 판단은 학과와 단과대학 차원에서 견해 차이를 보일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4월이면 총장의 최종 결정이 이사회에서 공식화됩니다. 탈락된 교수는 심사 절차에 하자 있으면 항소위원회에 고발하고, 과장이나 학장의 판단에 사적 이유가 작용되었다고 의심되면 옴부즈맨에 고발할 수 있습니다만 흔하지 않습니다. 심사는 시작에서 끝까지 장장 8개월이 걸렸으며 학과, 대학과 외부에서 최소한 30명이 교수의 업적 포트폴리오를 면밀히 분석했기 때문입니다.  

질적 평가는 논리적으로 따질 땐 어렵습니다만 일단 해보면 별게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질적 평가는 최소 2가지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가능합니다. 첫째, 교수의 업적을 학문의 특성과 학과의 환경을 두루 고려해서 학문적으로 논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학문의 영역과 동떨어져 있는 본부에서는 논문 수를 셀 수 있어도 논문의 기여도는 알 수 없습니다. SCI가 있다지만 이건 끊임없는 이의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따라서 평가가 학문의 일선인 학과 차원에서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즉, 인사권이 어느 정도 학장과 학과장에게 부여되어야 합니다.

둘째, 정량적 기준이 아예 존재하지 말아야 합니다. 승진 기준이 수치화되는 순간 모든 품질에 대한 논의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아마 예상되는 교수들의 반박과 불복에 대비해 심사 기준을 객관적으로 따질 수 있는 점수로 기록해 놓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반박하지 못하도록 할 수는 있어도 속으로 들끓는 반발심과 불만까지 없애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은 교수 사회에 ‘신뢰’가 존재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본부가 학과의 판단을 믿지 못하고, 교수가 다른 교수의 의견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고 숫자로 측정되는 평가 항목만 따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요. 그렇다면 심히 걱정됩니다. 교수가 서로를 믿지 못한다면 어찌 사회가 대학을 믿겠습니까. 대학 자율화의 앞날이 걱정됩니다.

다행스럽게도 질적으로 평가하는 대학이 한 둘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서서히 신뢰를 쌓아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신뢰가 완벽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명문대는 완벽한 평가를 구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평가 잣대가 들이닥쳐도 조금도 흔들림 없는 자신만만한 교수가 많은 곳이 바로 명문대이기 때문입니다.                                         

 /동국대·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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