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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물리학 깔끔하게 소개 … ‘선택’을 선택했어야 했다
경제물리학 깔끔하게 소개 … ‘선택’을 선택했어야 했다
  • 교수신문
  • 승인 2008.05.1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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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네트워크 이코노미』 이덕희 지음 | 동아시아 | 2008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가히 혁명적으로 세상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세상의 변화는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로빈슨 크루소들이 사는 세상이 아니라 서로 관계 맺고 그 속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살아가는 곳이라는 인식, 그것이 지금 변화에 대응해 요구되는 패러다임 변화의 첫 출발점이다. 물론 사회과학 분야에서 행위자들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분석 즉 네트워크 분석은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인류학, 정치학, 사회학 분야에서는 친족 간의 네트워크 역할, 권력구조에 대한 분석, 지배권 내의 결혼을 매개로한 관계망의 분석, 그리고 혈연-지연-학연으로 얽힌 사회연결망의 분석, 그리고 정보(혹은 의견, 소문 혹은 전염병) 등의 파급 등 흥미로운 주제들이 실증적으로 확인되고 모형을 통해 이론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학이라는 이름 하에서 네트워크에 대해 분석은 다른 사회과학들에 비해 한 걸음 뒤늦게 시작됐다. 구매결정, 직업선택 혹은 기업의 구인행동에서 네트워크가 갖는 역할에 대해 적지 않은 연구가 이뤄져왔고, 게임이론의 발전이 경제주체 간의 상호작용을 성공적으로 이론화했다고는 하지만, 누구를 만나서 게임을 하게 되는지, 전체 사회적 연결망의 구조가 게임의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더 채워져야 할 부분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뒤처짐은 한편으로는 경제학이 여전히 경제주체들 간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데 익숙하지 못하는 것을 반증해주는 사례일 수도 있고, 끊임없이 변화해나가는 구조를 파악하기에는 경제학의 균형분석틀이 너무 정적인 것에 치우쳐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론-현실경제의 간극, ‘네트워크’로 밝히다


『네트워크 이코노미』는 변화를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서 이해함으로써 경제이론과 현실의 간극을 줄이고자 하는 시도다. 이 책은 전통적 경제이론에서 주변적인 현상으로 인식되고, 그래서 예외적으로 다뤄지던 외부성의 문제나, 존재한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정작 본격적인 분석은 이뤄지지 않았던 규모수익체증의 문제를 네트워크 경제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외부성과 규모수익체증 현상을 설명하면서 여러 사례들이 곁들여지고 있고, 이러한 현상을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면 전통적인 경제이론에서의 수요공급모형과 시장조직이론이 어떻게 변모하게 되는지가 엄밀히 다루어지고 있다. 3부 응용편에서는 소비자선택 및 산업조직이론에서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고 있는 표준화 및 기술선택의 문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히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 클러스터의 형성 및 역할의 문제 등을 네트워크라는 시각을 가지고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를 잘 소개해주고 있다. 그리고 4부 네트워크 경제의 미래에서 전개되는 복잡계 이론에 대한 소개는 지금까지의 경제물리학에 대한 몇몇 소개서들 중 가장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   

네트워크 이론은 사회과학에서 풀고자 하는 근본문제 중 하나인 미시적 동기와 거시적 현상간의 관계에 대해서 다음 두 가지 편향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으로 간주되곤 한다. 네트워크 분석은 한편으로는 개별 행위자들의 행동이 그가 어떤 네트워크에 속해 있고, 또 네트워크 속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즉 네트워크의 구조적 제약이라는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분석의 기초로서의 개인을 넘어설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네트워크란 개인을 초월하는 절대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개인들의 연결망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문화/구조적 결정론을 벗어나 개인들의 행동에 주목하게 해준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네트워크 분석은 방법론적 개인주의와 구조주의의 중간지점에 머물면서, 미시와 거시를 연결 짓는 제3의 시각을 제공해준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출간이 갖고 있는 시의적절함, 그리고 이 책이 네트워크 경제 분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느끼는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우선 9장은 네트워크 경제가 가져오는 어두운 측면을 이야기한다. 네트워크의 원리로서의 수확체증의 원리는 양극화라는 현상을 필연화한다. 수확체증은 가진 자를 더 부유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네트워크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고용 및 소득의 양극화, 그리고 독점화 경향을 부추기게 되며, 지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의 폭등이나 지역불균형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시스템 전체의 불안정성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논의가 여기서 멈춰서 아쉽다. 네트워크 분석이 네트워크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의 네트워크 구조가 비효율성과 불안정성의 근원이 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 측면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그 해결책은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은 비단 필자뿐이 아닐 것이다.

산업조직론과 미시경제학 강의에 유용

네트워크 경제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네트워크에 관한 한 경제학은 사회과학에서 초보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초보자들의 기여가 의미가 있는 부분은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이다. 우선 네트워크가 현실의 경제, 즉 시장조직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그 안에서 주체로서의 소비자 및 기업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실증하고, 실증분석에 토대가 되는 이론적 모형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한 방향일 것이다. 『네트워크 이코노미』가 갖는 강점이 여기에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산업조직론 및 미시경제학을 강의할 때 아주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네트워크 구조를 분석할 때 경제학적 접근이 갖는 강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 것 같다. 우선 네트워크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이 갖는 강점이라면 물리적이고 자연적인 연결망이 아닌 ‘사회적’ 연결망을 분석함에 있어서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상대 파트너의 ‘선택’ 문제를 다룬다는 데 있다. 네트워크의 형성 및 진화는 노드들 간의 끊임없이 연결을 맺고 끊는 과정이라고 볼 때, 노드들 간의 연결을 둘러싼 ‘의사결정’ 과정 즉 선택의 문제는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고, 기존의 물리학과 여타 사회과학의 뛰어난 성과에 경제학적 접근이 추가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지점도 바로 여기이다. 이점이 『네트워크 이코노미』에서는 부분적으로만 다뤄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것이 이 책을 읽고 난 후 느껴지는 두 번째 아쉬움이다.  

한때 복잡계 이론이 혹은 네트워크 분석이 우리가 기존에 이해하지 못하던 현상들을 성공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이론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던 때가 있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거리응원 열기가 온 나라를 휩쓸었을 때, 어떤 제품이 유행처럼 번져나가 한 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을 때 우리는 그러한 현상이 언제 어떻게 가능한지를 궁금해 했다. 하지만 설명하고 싶은 너무나도 흥미로운 현상과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도구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게 느껴져 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는 어쩌면 사회적 연결망이라는 복잡한 구조를 분석할 만한 이론적 토대가 결여돼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이론적 토대가 잘 갖추어져 있더라도 그 이론이 접근이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복잡하고 심오하게 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라도 이 문제에 직면했을 때 느껴지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주제를 손에 쥐고 있지만 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를 때 느껴지는 막막함이었을 것이다. 『네트워크 이코노미』는 바로 이러한 흥미로운 현상과 이를 다룰 수 있는 분석틀 간의 간극을 메워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주고 있다. 


최정규 / 경북대·경제학

필자는 美 메사추세츠대에서 ‘협조적 행위의 진화에 관한 세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복잡계 워크샵』, 『지식의 통섭』 등의 저서와 『다윈의 대답』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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