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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현실의 기대 간극 … 그들은 雨傘인가 憂山인가
환상과 현실의 기대 간극 … 그들은 雨傘인가 憂山인가
  • 김유정 기자
  • 승인 2008.05.19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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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구성원이 보는 대기업 재단

“교수들이 농담 삼아 ‘그동안 편히 지냈다’고 합니다. 성균관대가 변화의 선두에 서서 다른 대학을 이끄는 일은 분명 좋은 현상이지만, 신자유주의 교육개혁 방향이 과연 올바른지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예전엔 신임교수와 선배 교수가 만나서 교류하는 기회가 자주 있었어요. 지금은 교수 각자가 업무과중에 따른 스트레스가 많아서인지 그런 문화가 사라졌습니다.”

“매칭 시스템 도입으로 성과가 없으면 지원도 없습니다. 연구비 관리도 얼마나 꼼꼼한지 교재비를 받기 위해서는 복사한 자료가 있더라도 원서의 국제표준도서번호(ISBN)까지 적어내야 합니다.”
“최근 산학협력이 활발해지면서 기업은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인재를 키우고, 학생은 졸업 후 진로를 쉽게 결정할 수 있어 재단과 대학의 공생관계는 더 긴밀해질 것이다.”

성균관대가 삼성재단을 영입한지 12년째, 교수들은 삼성이 들어온 뒤 학교가 대내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BK21, 우수학생 유치 등 실적 면에서도 상당수준 발전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장점만 있을까. 성균관대를 비롯해 대기업이 설립·운영하거나 기업 재단을 영입한 대학 내 구성원은 “대기업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버려라. 당장 학교가 발전할 거라는 생각부터가 잘못이다”고 지적한다. 현실적인 문제 역시 적지 않다는 말이다.

교수 임용 비교적 투명…“본부 돌아가는 사정 몰라”

이들은 공통으로 “대기업 재단이 교원 임용 과정에 관여하지 않는다”며 환영한다. 인하대 ㅇ교수는 “재단이 교수 인사에 관여하지 않는다. 이 점은 매우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포스텍도 마찬가지다. 성균관대 ㅈ교수는 삼성재단을 영입하기 전 계파간 ‘총장 밀기’ 식의 주도권 싸움이 심각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삼성이 온 이후 총장 임명, 교수임용이 확실히 투명해졌다”며 “교수임용 기준으로 SCI 등 다소 획일적인 기준을 요구하긴 하지만 ‘기업인사 끼워 넣기’ 등의 구태는 없다”고 전했다.

반면 인사제도를 제외하고선 학교 운영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일부 보직교수만 재단 사정을 알 뿐이다. “본부 돌아가는 분위기를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포스텍의 한 교수는 “포스코 관계자나 재단 직원을 만나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기우 인하대 교수회장(법학부)은 “법인과 소통이 드문 편이다. 교수회에서 접근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성균관대 ㅂ교수의 비판은 좀 더 직설적이다. “총장 인사권은 그렇다고 해도 학장 인사권까지 재단에 넘겨준 주인공이 바로 교수들이다. 삼성이 혹시 학교 운영에서 손을 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알아서 조심하는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다.”

재단 지원, ‘건물 증축’ 집중…소프트웨어 강화 추세

울산대는 현대중공업그룹으로부터 건물 증축과 관련해 80%를 지원 받았다. 대기업 재단이 대학을 운영할 때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는 부분이 캠퍼스 환경 개선이다. 구성원 역시 “학교 건물이 늘어나고 강의시설이 개선될 때 재단의 ‘힘’을 느낀다”고 한다. 강석봉 울산대 교수협의회장(건축학부)은 “대기업 재단이 교직원 지원, 복지 차원에서 많은 혜택을 주지 않는다. 재단 지원은 주로 학교 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투자는 학교의 대외 이미지를 높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서정돈 성균관대 총장은 지난 2006년 <성대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이 아닌 성균관대만의 이미지를 확고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삼성의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쌍방으로 도움이 되도록 해 성균관대가 오히려 삼성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이미지로 바뀔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쌍방 도움론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일방론이 우세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이기우 인하대 교수회장이 “재단은 학교에 대한 지원과 환경개선을 통해 건학이념이 구현되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현재 (재단이) 이러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교직원 사회에 적용되는 ‘경쟁 시스템’

성균관대는 삼성재단 영입 이후 교직원 전문성 강화에 주력했다. 교직원 교육 프로그램 이수 의무화가 대표적이다. 교직원은 이제 리더십, 어학분야 등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삼성의 ‘경쟁 시스템’이 교수뿐만 아니라 교직원 사회에 그대로 적용됐다는 분석이다. 교무처의 한 직원은 “직원 인사평가가 철저하고 ‘당근과 채찍’ 전략으로 효율적 인력관리를 하고 있다. 서울 소재 ㅎ대와 비교할 때 ㅎ대 교직원 수가 성균관대보다 1.5배 많지만 행정 효율성을 놓고 보면 성균관대가 서울 소재 대학에서 가장 높다”고 말했다. 2006년 기준 성균관대 직원수는 416명, 교수수는 1천65명이었다.

직원 역량이 높아지자 보직교수와의 관계도 달라졌다. 기존에는 ‘처장이 시키면’ 하는 식이었지만 ‘직원도 처장을 맡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성균관대 교수도 “토요일에 논문심사를 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가 있어도 교직원이 근무하지 않아 일을 처리하지 못 했는데 삼성이 온 뒤 교직원 사회가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좋은 현상만은 아니다. 한 시간강사는 “재단의 대학 지배력이 점차 강건해지고 있다. 이제 교직원노조를 비롯해 학생회 등 자치세력은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다. 재단운영을 비판하는 이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성균관대는 지난 2000년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며 대학본부 점거농성을 벌인 학생 일부를 출교조치 했다. 이들은 아직 학교로 돌아오지 못 하고 있다. 지난 3월 병설 보건대생의 총학 투표권 인정을 요구하며 16시간 동안 보직교수 9명의 출입을 통제한 고려대 출교생 7명이 사건 일년 만에 전원 복학된 사례와 대조적이다. 

재단에 기대기 전에 내실부터 갖춰야
“이미 현대라는 기업이 학교 안에 있기 때문에 다른 기업과 협력관계를 맺기 쉽지 않다. 서울대는 여러 기업에서 지원 받고 있지만, 울산대는 다른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이끌어내는 일이 어렵다.” 한 울산대 교수의 말이다. 대기업 재단이 학교 발전에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권영순 울산대 전 산학협력단장(첨단소재공학부)은 “울산대는 울산지역의 유일한 4년제 대학이었기 때문에 안일하게 생각해 스스로 발전하지 못 한 측면이 있다”며 “학교가 먼저 발전한 이후에 재단에 지원해달라고 떳떳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포스텍의 ㅅ교수도 “재단에서 지원을 하면 연구 활동에 집중해 성과를 내는 일은 교수의 몫이다. 재단 전입금 자체로 재단은 대학 발전을 돕고 있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효율성, 특성화 분야에 대한 집중 육성, 브랜드 가치를 내세운 이들 대기업 재단의 대학 운영 점수가 매겨지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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