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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수사학의 역사』(J.A.H. 게레로 外 지음, 강필운 옮김, 문학과지성사 刊)
[화제의 책]『수사학의 역사』(J.A.H. 게레로 外 지음, 강필운 옮김, 문학과지성사 刊)
  • 권희철 기자
  • 승인 2001.12.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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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24 16:00:06

무언가를 표현하려면 말을 해야 한다. 의사를 전달할 때도 그렇다. 이럴 때 우리는 ‘말하는 인간’(Homo loquens)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정반대의 진실 또한 일러준다. 말이 세계를 지탱하는 근간이라면, 말의 태생적인 애매함만큼 세계 또한 모호하게 그려지리라는 것. 말로는 사물을 정확히 지시할 수 없으며 해석만이 남는다는 것. 그러나 말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으니 ‘비극적 인간’의 숙명이다.

이 책의 옮긴이는 “이러한 딜레마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학문이 바로 수사학이다. 말을 하되 말을 잘하는 것, 그래서 말로써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기술, 이것이 수사학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수사학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다.

그런데 실제 수사학은 논리학의 반대인 것처럼 폄하돼 왔다. 언어 유희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사학이 그렇게 평판이 좋지 않은 것은 … 소피스트들의 업적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해석에 기인한다”고 저자들은 일러준다. 이렇듯 이 책은 수사학에 대한 그릇된 오해들을 지적하고 있다.

재미있는 대목 하나. 저자에 따르면 플라톤도 때때로 수사학의 학습과 사용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것이다. 수사학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들이 대체로 플라톤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놀랍다. 플라톤이 “수사학이 비난을 받는 이유는 언어의 사용에 있어서가 아니라 그 언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며 소피스트 수사학과 철학적 수사학을 대치시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책을 통해서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수사학이 꽃피웠던 시기는 물론 그 이후 시기의 수사학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16세기에는 종합적인 인문교육에서 수사학의 비중이 중요했으며 18세기에는 일반적인 교과과정으로 채택됐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수사학이 다시 부흥하고 있다는 게 대강의 줄거리이다.

권희철 기자 khc@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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